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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기사입력 [2017-09-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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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람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입니다. 초혼은 전통적인 장례에서 죽은 사람의 옷을 흔들면서 죽은 사람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의식이죠.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정지영 감독)는 김소월의 시 초혼의 첫 구절에서 제목을 가져왔을 뿐, 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매년 10, 노벨상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자전적 소설인 파계‘ ’미인‘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등에서 영화의 기본 골격을 가져왔습니다. 어린 사미승과 비구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도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간적인 번뇌를 다루었습니다. 어린 사미승역에는 고 최진영이, 또 비구니역에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금용이 처음 주연들을 맡아 삭발을 마다하지 않고 혼신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두 사람은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그해 청룡영화상에서 나란히 신인남녀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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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에서 주지스님 법연으로 묵직한 연기를 보여준 장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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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주지스님을 정성껏 돌보는 사미승 침해(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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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승 침해(최진영)은 어린 시절부터 산사에서 생활해왔던 터라 속세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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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남녀 주인공인 최진영과 김금용. 두 사람은 그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남녀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웬지 26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고 최진영의 운명을 예감케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의 역할인 사미승 침해는 어릴 때부터 산사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속세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삶 속에서 아픔을 겪고 산사를 찾아온 묘흔(김금용)을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니 마음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묘흔에 대한 그리움으로 파계를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큰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하지만 결국은 세상을 향해 떠나는 길을 택합니다. 이러한 침해의 캐릭터가 스스로 세상을 등져야 했던 고 최진영의 비극적인 실제 삶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고 느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사미승 침해(최진영)는 주지 법연(장인환)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멀리서 얼핏 본 비구니 묘흔(김금용)을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느날 새벽 산 속 암자에서 대면하게 된 이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뜨거운 그리움을 간직하게 됩니다. 하지만 속세를 떠나 구도의 길에 들어선 묘흔으로서는 갈 수 없는 길, 묘흔은 수행으로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자신 내면의 그리움을 억누르지 못하자 손가락을 자릅니다. 침해도 법연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괴로워합니다. 반면에 떠돌이 수행승려인 무불(전무송)산천을 구들 삼고, 이슬을 이불 삼아속세에서 깨달음을 얻으라고 조언합니다.

묘흔 역시 법연으로부터는 꿈 속의 허망한 꽃을 어찌 잡으려 하느냐, 놓아버려라며 집착을 버리라는 독려를 받고, 무불로부터는 떠나고 싶으냐, 무엇이든 부딪쳐라며 번뇌를 피하지 말고 온몸으로 부딪치라는 가르침을 듣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결국 침해는 속세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홀로 산사를 나와 멀리 산 아래 마을을 한없이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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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제작자인 강신성일(오른쪽)도 큰 스님 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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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삭발식 장면. 좌로부터 최진영, 김금용, 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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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촬영감독 고 유영길(왼쪽)과 촬영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는 정지영 감독(오른쪽).

 

전작 남부군으로 한국영화의 소재와 영역을 확장시킨 일등공신 정지영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구원과 참사랑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고 불교의 세계로 찾아들어갔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의 길만이 요구되는 종교적 상황일지라도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번민은 어떤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면 인간의 구원과 참사랑은 얻을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겁니다.

정지영 감독은 자신의 연출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 기성 배우 아닌 새 얼굴들로 캐스팅 라인업을 짰습니다. 정지영 감독에게 주인공 사미승역에 고 최진영을 추천했던 사람은 그의 누나 고 최진실이었습니다. 전작 남부군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고 최진실의 재능을 실감했던 정 감독으로서는 그녀의 추천에 전폭적인 신뢰를 가졌던 겁니다. 그녀의 남동생이라는 친소관계 때문에 캐스팅했던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정 감독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음도 영화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제작자인 성일시네마트의 대표 신성일(강신성일)도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영화적인 결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의 신데렐라 여배우인 고 최진실이 짬만 나면 촬영현장을 찾아와 남동생 뿐 아니라 제작 스태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장면에 감동을 받았던 겁니다. 평소에도 고 최진실-최진영 남매는 늘 붙어 있다시피하면서 각별한 우애를 보여왔습니다만 처음으로 남동생이 주연을 맡아 촬영하고 있으니, 어찌 자주 찾아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둘은 서로에게 좋은 연기 파트너였고, 일생동안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눈 남매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비극적인 운명마저도 같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초, 필자는 우연히 고 최진영을 사우나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고 최진실 사망 후 처음 만난 것이니 꽤 오랜만이었죠. 당시 그는 조카들(최진실의 아이들인 환희, 준희)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얼마전 연극(한 여름밤의 꿈) 무대에도 섰다고 말하면서 곧 새 소속사와 계약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해 볼 계획이라며 비교적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욕탕에 들어앉아 모처럼 옛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로부터 한 달쯤 후에 그의 비보를 전해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전 사우나에서 그렇게 누나 죽음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자기 계획들을 또박또박 밝히던 그였는데,,, 고 최진실이 마흔 한 살인 2008년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그도 누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누나처럼 마흔 한 살의 나이에 누나를 따라 하늘나라로 간 셈이었습니다.

두 남매가 묻혀있는 경기도 가평의 갑산공원에는 두 남매의 묘 비석이 나란히 마주보는 형국으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고 최진영의 비석에는 그가 가수겸업 활동 시절 크게 히트시켰던 곡 영원의 노랫말이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나 언제라도 저 하늘이 날 부를 때/ 한없이 사랑했던 추억만을 가져갈게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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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우애는 각별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촬영현장에는 늘 고 최진실이 찾아와 동생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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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을 앞두고 불공을 드리는 정지영 감독과 강신성일 고 최진영 김금용(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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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인공 비구니 묘흔 역으로 발탁된 김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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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신인배우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 김금용과 고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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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 속세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홀로 산사를 나서는 침해(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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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삭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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