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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극장] `세대를 초월한 국민배우 안성기`

기사입력 [2017-12-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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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일컬어 '국민배우라고 합니다. 요즘에야 어느 분야에서든지 발군의 활약을 펼치는 이들에게 곧잘 국민여동생이니 국민요정등의 호칭을 붙이는 게 흔해졌지만 한때 국민배우는 안성기의 독점적 호칭이었습니다.

단지 연기가 뛰어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배우로서의 자질은 물론 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인간미와 품성의 진솔함이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와 영화현장을 함께 겪어 본 영화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존경스러운 배우라고 칭송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1957황혼열차’(김기영 감독)에 아역배우로 출연한 것부터 따지면 그의 배우 경력은 올해(2017)60년째입니다. 한국에서 현역 배우 60년의 경력을 가진 배우는 아마 그가 유일할 듯 싶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스캔들이나 구설에 오른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일반인들도 살다보면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는 게 다반사인데, 연예계에서 배우로 살아온 사람이 어찌 소소한 일상사에서조차 아무런 잡음도 나지 않았는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거지요.

 

믿음을 주는 배우라는 뜻으로 알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특별한 원칙을 가졌던 건 아니고, 그저 부모님께서 평생 보여주셨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살았을 뿐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대중의 그런 호칭이나 시선들이, 실수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적지 않습니다.(웃음)”

 

몇 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국민배우로 불려온 것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의 웃음에는 넉넉함이 묻어납니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주름도 꽤 보이지만 땀 흘려 살아온 인생의 풍요로운 가을걷이를 느끼게 됩니다. 하기는 젊은 시절부터 그의 얼굴에는 유별나게 주름이 많았습니다. 환하게 웃을 때는 실제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일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름을 불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와 13편의 영화를 함께 찍어온 배창호 감독은 주름진 안성기의 얼굴에는 도시적인 우수와 지성인의 고뇌, 한편으로는 서민의 설움과 개구쟁이의 모습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하는 배우로서는 어쩌면 타고난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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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1990년, 정지영 감독)의 지리산 촬영현장에서.

  

그는 대학(외국어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습니다. ROTC장교를 지원해 베트남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베트남전의 종전으로 전공을 살릴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영화판을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화려했던 아역배우의 경험을 밑천으로 부친(당시 세경흥업 안화영 상무이사)이 제작에 관여한 병사와 아가씨들’(1978, 김기 감독)3공작’(1978, 설태호 감독)에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들은 흥행과 작품성에서 둘다 실패했습니다만 그에게는 영화적 열정을 지피는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작가와 감독에의 열망도 생겨났습니다. 몇 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몇몇 감독에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이장호 감독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됐습니다. 오늘날의 안성기를 태동시킨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그는 한국영화계의 변혁기를 이끌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을 만나서 만다라’(1980)안개마을’(1983)을 찍었고, 배창호 감독과는 마치 파트너십을 맺은 것처럼 꼬방동네 사람들’(1982)을 시작으로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을 연속해서 함께 작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1986)와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9) 등 그의 출연 영화들은 대부분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추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기획영화들이 만들어질 때, 그의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에서는 빨치산으로,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에서는 비리 경찰관으로, 또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1995)에서는 고뇌하는 영조대왕으로, 이명세 감독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는 킬러로, 그는 천의 얼굴로 스크린을 누비며 대중을 웃기고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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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1994년, 임권택 감독)에서 좌, 우익 양쪽을 비판하며 싸움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민족주의자 김범우 역의 안성기.

  

출연 영화를 선택하는 그의 기준은 나무를 보는 게 아니고 숲을 보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빛나더라도 작품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부족하다 싶으면 고사합니다. 얼핏 까다로운 배우로 여겨질 법도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그의 원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안성기 스스로도 밝혔습니다만 2000년대 이후에는 그래서 조연도 기꺼이 맡아왔습니다. 역시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을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확고부동한 주연의 위치에서 조연의 위치로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2001년 중국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영화 무사’(2001, 김성수 감독)에서 주연을 맡은 정우성 주진모 등 후배들과 함께 조연배우로 두달 넘게 생활하면서, 후배 배우들을 챙기는 것은 물론 젊은 스태프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오락반장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의 이같은 노력과 헌신으로 중국 사막에서의 쉽지 않은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조연으로 열연한 안성기는 그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난생 처음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어 무대 앞으로 걸어나가는 그에게는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몇몇 후배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당시 조연상 수상 소감 역시 두고두고 영화계에서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연상을 받고 보니까 그동안 몰랐던, 오랫동안 조연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배우들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계속 현장을 지키는 배우로 살아갈 겁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부르면 언제든 현장으로 달라가겠습니다.”

 

그후, 그는 취화선’(2002,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킬리만자로’(2001, 오승욱 감독), ‘실미도’(2003, 강우석 감독), ‘형사’(2005, 이명세 감독), ‘화려한 휴가’(2007, 김지훈 감독), ‘신기전’(2008, 김유진 감독) 등을 통해서 개성넘친 조연 캐릭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저예산영화 페어 러브’(2010, 신연식 감독)에는 노개런티로 출연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출연료를 제작비에 투자하는 형식이었습니다만 그는 가난한 촬영팀의 형편이 안쓰러워 오히려 회식을 몇 차례나 마련해 주었습니다. 물론 라디오스타’(2005, 이준익 감독)처럼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옷의 주인공으로 나와 주연상(청룡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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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1990년, 배창호 감독)에서 승려 조신 역으로 출연을 앞두고 삭발하는 안성기.

  

그에게 유별난 기록 중의 하나는 60년의 연기 인생 중 단 한 번도 TV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몇 달 걸려 120분짜리 영화 한 편 만드는 것과 달리 일주일에 60분짜리 두 개씩 만들어야 하는 방송 시스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얼마나 충분한 준비를 거쳐서 현장에 나서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그만큼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합니다. 평생 배우로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 배우의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를 갖추고 현장에 가는 게 당연하다는 거지요.

흥미로운 기록 하나는, 그가 맥심커피(동서식품)의 광고모델을 35년째 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 제품의 광고모델을 이처럼 오래한 기록은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맥심커피광고 모델을 시작할 때 담당 실무자는 임원을 거쳐 벌써 오래전에 정년 퇴직했습니다. 수많은 스타들이 동서식품의 광고모델로 등장했다가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는 가운데, 그만이 유일하게 변함없이 커피는 맥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 홍보대사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소중한 이력입니다. 국민배우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유니세프 홍보대사는 국내에 유니세프 위원회가 설립되기 전인 1992년부터 친선대사를 맡기 시작했으니, 벌써 25년째입니다. 유니세프 외에도 그는 오늘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의 이곳저곳에 홍보대사나 친선대사, 또는 온갖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국민배우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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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캐릭터와 메이크업으로 시선을 끌었던 영화 '헤어드레서'(1995년, 최진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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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포츠코리아와의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한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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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2005년, 이명세 감독)에 출연할 당시. 왼쪽부터 강동원, 하지원,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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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홍보대사를 25년째 맡아오고 있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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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스크린 축소 반대 시위에 최민식(오른쪽)과 함께 나선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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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합작영화로 관심을 모았던 '묵공'(2007년, 장지량 감독)에 출연해 유덕화(위의 사진 오른쪽)와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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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28회 청룡영화상에 앞서 가진 핸드 프린팅 행사에 참석한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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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상암동DMC 한국영화박물관 개관 기념 영화인 핸드프링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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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사회 안성기 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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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합법 다운로드 권장 '굿 다운로드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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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부산국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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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충북 보은 공설운동장 영화 '페이스 메이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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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두산 대 롯데 경기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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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12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윤은혜, 안성기, 가수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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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1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 참석한 안성기가 기자들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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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영화 '화장' 삼청동 현장 스포츠코리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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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 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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