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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극장] `화제를 몰고다니는 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장미희`

기사입력 [2017-12-2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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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42회 대종상 시상식'에 참석한 장미희.

 

한국의 여배우 중에서 장미희 만큼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 사람이 또 있을까요. 1976년 영화 성춘향전’(박태원 감독)으로 데뷔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참으로 많은 사건과 루머를 뛰어 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X양 사건등의 소문은 실체 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그녀를 꽤 힘들게 했지요.그러나 웬만한 사람이라면 나가떨어져도 열두번도 더 나가떨어질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한번도 나가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의 입과 발없는 말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좋은 기운으로 태어나 세상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을 일컬어 풍운아라고 하지요. 어쩌면 장미희에게는 그러한 풍운아적 기질이 내면 깊숙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식에서 순백의 드레스로 성장하고 나타난 장미희가 레드카펫을 걸어나올 때,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아우라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57년생인 그녀의 나이는 환갑이었습니다만 어디에서도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여배우로서의 자기관리가 그만큼 뛰어난 것이죠. 그녀는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조직위원장인 정지영 감독을 옆에서 보좌하는 부조직위원장으로서 뜨거운 태양 아래를 동분서주하며 영화제 현장을 지켰습니다. 한때 잡음이 일었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조직을 2016년부터 정비, 새로이 영화제의 토대를 마련한 정지영 감독이 그녀의 도움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소란을 인정과 화합으로 이끌어낸 정지영 감독님의 덕장 면모를 보면서 나 또한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울컥했다면서 새로운 출발의 가치를 알고 저에게 주어진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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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영화 '겨울여자'에서 신성일과 열연, 해방 이후 최고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우는데 일조했다.

 

장미희는 1978성춘향전의 여주인공 오디션에서 2600:1의 경쟁을 뚫고 춘향 역에 선발됐습니다. 당시 오디션에서는 16살의 아역배우 출신 강주희가 가장 춘향 역에 적합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만 심사에 참여했던 배우와 몇몇 영화담당 기자들이 장미희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선발되었습니다. 당시의 성춘향전12번째의 춘향전 영화였습니다. 그전까지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어서 실패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춘향의 캐릭터도 언제나 청순과 절개를 앞세운 고전적인 이미지였습니다만 성춘향전에서는 장미희의 현대적인 이미지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상대역인 이몽룡에는 당시 청춘스타로 각광받던 이덕화가 맡았지요. 방자 역에는 장욱제, 향단 역에는 개그우먼 출신의 최미나가 맡는 등 캐스팅 라인업도 제법 영화팬의 관심을 끌 만했습니다. 

 

성춘향전은 추석 대목을 겨냥해 서울 중심가의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 당시 영화의 포스터에는 우리들의 로미오와 쥬리엩!’이라는 큼지막한 카피가 씌어 있었습니다. 포스터 상단에는 우리 고유의 仲秋節(중추절)에 永遠 不滅(영원불멸)의 우리 영화를 700만 시민의 빗발같은 開封督促(개봉독촉)에 秋夕 公開(추석공개)라고 써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미희에 대해서는 ‘76년의 靑春(청춘) 장미희 데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197698, ‘추석특선푸로라며 개봉된 성춘향전17천여 명의 관객동원이라는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춘향전의 영화 중 첫 번째 흥행 실패작이 된 겁니다. 영화흥행은 실패하고, 여주인공 장미희만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장미희는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알린 영화 겨울여자’(1977, 김호선 감독)TBC드라마 해녀 당실이’(1976년에 출연했습니다. 이중 겨울여자는 해방 이후 최고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58만명입니다. 당시 서울 인구가 700만 명 정도, 이걸 영화 관람가능한 성인 인구로 따져보면 거의 10명 중 한 명은 겨울여자를 극장에서 관람했다는 말입니다. ‘겨울여자의 엄청난 성공은 장미희를 정윤희 유지인과 더불어 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장미희는 겨울여자이후에는 별들의 고향 2’(1978, 하길종 감독)를 비롯해 느미’(1979, 김기영 감독), ‘야시’(1979, 박남수 감독), ‘나팔수’(1979, 박종호 감독) 등의 영화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에 매이게 됐습니다.

 

장미희는 이전의 청순가련형이나 섹시한 외모를 앞세우는 여배우들과 달랐습니다. ‘겨울 여자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차가운 도시 여자의 이미지를 구축해냈던 겁니다. 이때부터 장미희의 전성기도 시작됐습니다. 그녀의 활약을 보여주는 지표 중의 하나가 소득세 납부 상황입니다. 1980년도 종합소득세 신고 납부액에서 장미희는 소득 3850만원을 신고하고 세금 17백여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정윤희가 소득 1430만원에 세금 4백여만원을 낸 것과 비교하면 제법 큰 차이입니다. 그만큼 장미희의 활약이 왕성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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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화 '불의 나라'에서 노출연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장미희.

 

그런데 198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부터 장미희의 행보가 다소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TV출연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신군부 집권세력에 의해 TV출연이 금지됐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는 생뚱맞은 소식도 흘러나왔고, 얼마 후엔 그 유학지가 프랑스에서 다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그녀가 한국을 비운(?) 사이에 그녀를 둘러싸고 다양한 소문들이 춤을 췄습니다. 80년대 권력층의 대표적인 스캔들로 불리는 ‘X양 사건역시 그런 와중에서 더욱 확산되었지요.

 

그러나 장미희는 보란 듯이 적도의 꽃’(1983, 배창호 감독)깊고 푸른 밤’(1985, 배창호 감독)으로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건재의 수준을 아예 뛰어 넘었습니다. ‘적도의 꽃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깊고 푸른 밤을 통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여배우의 카리스마를 강렬하게 발산했습니다. 두 편의 영화 성공을 함께 한 배창호 감독과 연이어 호흡을 맞춰 찍은 황진이’(1989)의 흥행실패가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 또한 더 이상 장미희에게는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춘향전에서 이몽룡으로 만났던 이덕화와 14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불의 나라’(1989, 장길수 감독)‘존재증명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여자를 함께 했던 김호선 감독과 다시 만나 사의 찬미‘(1991)를 찍었고, 그해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장미희의 뚝심은 2007년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학력위조 논란도 뛰어넘었습니다. 장미희는 당시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는데, 동국대 불교학과와 미국 호손대 교육학 전공 등의 학력으로 알려졌던 것이 모두 위조되었다는 논란에 직면한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학력 위조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동국대 불교학과에는 적을 둔 적도 없었으며, 미국 호손대학은 미인가 대학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도 장충여고 졸업이 아니라 협성여상 졸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 또한 학력 위조 논란의 주인공이 교수로 강단에 설 자격이 있느냐는 쪽으로 비등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녀는 내가 처음 출강할 때, 명지대 사회교육원은 학위가 필요한 교육기관이 아니었고, 또한 내가 가르치는 영역이 내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KBS 2TV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출연해 미워할 수 없는 고은아역을 천연덕스럽게 펼쳐내면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렇게 학력논란 파문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영화와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KBS 2TV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출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동근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60대 로맨스를 연기한다는데, 이번엔 또 어떤 변신으로 대중 앞에 나서게 될지 기대를 모읍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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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영화 '사의 찬미'에서 김호선 감독(왼쪽)을 '겨울 여자' 이후 14년만에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춰,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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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스포츠코리아와의 인터뷰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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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 '2회 고양국제어린이 영화제 위원장'으로 취임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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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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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44회 대종상 시상식' 참석 당시, 노란 드레스로 시선을 모았던 장미희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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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제11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도 장미희의 패션 감각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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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 최고의 영화인 36명 선정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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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유방암 기금 마련' 행사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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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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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장미희는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열연을 인정받아 인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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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SK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의 경기에 앞서 시구에 나선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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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S 컬렉션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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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신세계백화점 ‘보그 패션 나잇 아웃’ 행사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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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패션지 `보그`창간 15주년 기념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 15인 특집 화보의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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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MBC 일일 연속극 `오자룡이 간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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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까르띠에 파리 누벨바그 컬렉션 런칭 행사`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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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한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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