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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홀리데이 인 서울`

기사입력 [2018-07-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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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권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한국영화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릴 목적으로 코리안 뉴웨이브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습니다

3S(Sports, Sex, Screen)정책과 검열 등으로 쇠락한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내용과 스타일, 주제 등에서 확연히 달라진 80년대 이후 90년대 한국영화들에 대한 표현이었지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리얼리즘 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1985)이나 곽지균 감독의 겨울나그네’(1986)는 신파 일변도의 멜로영화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영화를 외면하던 영화팬들을 극장으로 다시 끌어 들였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는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으로 국제무대에서 호평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국제화를 이끌었지요. 또 사회비판적인 리얼리즘 영화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묵직한 주제의 영화들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실증해 보였습니다.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를 비롯해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그들도 우리처럼’(1990),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1994),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 송능한 감독의 넘버3’(1997) 등이 그랬지요


그런가하면 영화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시장조사로 관객의 기호에 부응하는 맞춤형 영화, 일명 기획영화들도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입시 등 학업에 대한 고민과 우정을 그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강우석 감독)이나 젊은 세대들의 결혼과 성에 대한 풍속도를 그린 결혼이야기’(1992, 김의석 감독) 등이 대표적인 영화였지요.

과거 유신과 군사정줜 시절에는 영화화의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빨치산의 자전적 수기(이태 작)를 영화화한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이나 월남전의 상처를 다룬 하얀전쟁’(1992) 등은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소재 한계를 넓히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오늘 기억을 소환하려는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1997, 김의석 감독)도 다분히 코리안 뉴웨이브의 기조를 띠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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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장동건은 택시운전수역을 맡아 전화교환수 역의 최진실과 호흡을 맞췄다.

 

90년대의 대표적인 경찰 풍자 영화인 투캅스시리즈의 강우석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고,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 영화 손톱의 김성홍 감독이 기획자로, ‘결혼 이야기로 한국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김의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코리안 뉴웨이브의 파도가 섬씽 뉴’(Sometjhinf New)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지요. 그리고 스타급 감독들이 의기투합하는 영화답게 출연배우들의 면면 또한 화려했습니다.

가수 겸 배우로 인기를 얻고 있던 김민종, 신성일 이후 최고의 미남배우라는 평가를 듣고 있던 장동건,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당대 최고의 요정 최진실, 그리고 손톱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과시했던 모델 출신의 진희경 등이 캐스팅되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주목을 받았던 데는 당시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선풍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과 비슷한 분위기, 즉 도시의 고독과 공허를 영화에 담으려는 의도를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완성된 영화에서도 내러티브(이야기) 보다는 화면 하나하나의 에 더많은 공을 들이는 미장센에 집중했던 게 거의 흡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젊은 층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중경삼림’(1994년 개봉)의 미장센을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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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인 서울'의 편의점 안에서의 촬영장면. 장동건과 김민종은 영화 속에서 전혀 남 모르는 관계로 설정되었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영화 완성 후, 첫 번째 가진 언론관계자들의 시사회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왕가위를 카피했다는 비난에서부터 왕가위 영화의 매력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자신감의 소산이라는 옹호성 발언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김의석 감독은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멜로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면서 관객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줄거리 전개 역시 캐릭터 중심으로 흘러가도록 구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홀리데이 인 서울은 안정적인 구도의 카메라를 배제하고 역동적이며 파격적인 앵글의 촬영으로 마치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들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영화제목은 홀리데이 인 서울이었습니다만 실제의 촬영은 제주의 호텔에서 진행됐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서울의 여러 호텔들과 협의했으나 난항을 거듭하던 중, 때마침 제주에서 새로 지은 호텔(홀리데이 인 플라자 크라운 호텔)에서 홀리데이 인이라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전폭적인 촬영협조를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호텔 내부에서의 촬영은 제주에서, 호텔 외부와 서울 시내의 촬영은 서울에서 진행하는 방법으로 3개월여의 촬영을 끝냈습니다. 제주에서 영화 전체의 70%를 촬영했으니 상당한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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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과 김민종은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강조하는 영상과 이미지 구축으로 인해 뛰어난 연기력을 평가받았다.

  

홀리데이 인 서울호텔의 벨보이(김민종)는 정기적으로 애인과 함께 호텔을 찾아오는 뇌쇄적인 다리 모델(진희경)의 각선미에 빠져듭니다. 언제나 901호에 투숙하는 그녀의 다리를 보면 서 그는 그녀의 성격, 취미, 좋아하는 음식, 심지어는 섹스 스타일까지도 예측합니다.

더러 그는 그녀의 아침식사를 위해 룸서비스를 하는데, 그녀의 얼굴이 아침에는 늘 상큼하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는 그녀의 부탁으로 구두를 수선하게 되거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와 마주치는 날이면 최고조에 오르는 기분을 느낍니다.

어느날 그녀의 애인이 뺑소니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보게 됩니다. 앞으로는 그 모델을 볼 수 없게 될 것을 낙담하던 날, 그녀가 호텔에 찾아옵니다. 언제나처럼 901호에 투숙하는 그녀. 그는 그녀를 예의주시합니다. 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던 그녀는 자살을 기도합니다만 다음날 아침, 방으로 찾아온 그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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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인 서울호텔의 벨보이(김민종)는 정기적으로 애인과 함께 호텔을 찾아오는 뇌쇄적인 다리 모델(진희경).


이 호텔에 또 하나의 커플이 등장합니다. 택시운전수(장동건)와 호텔의 전화교환수(최진실)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목소리와 흡사한 유부남을 짝사랑하면서 애를 끓이던 그녀는 우연히 그의 택시에 탔다가 그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관계를 이어가는 두 사람. 어느날 유부남에게 폭행당하는 그녀를 목격하게 된 그는 유부남을 무릎 꿇려 그녀에게 사과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화를 냅니다. 그녀의 환상이 깨진 탓입니다. 그런 그녀를 태우고 그는 목적지 없이 도심의 밤을 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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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수(장동건)와 호텔의 전화교환수(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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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운전수 역의 장동건(사진 위)과 호텔 벨보이 역의 김민종(사진 아래)

  

대략의 내용에서 보듯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는 기승전결식의 드라마 구조가 보이질 않습니다. 캐릭터들만 파편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덕분에 연기력으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김민종과 장동건의 연기는 그들의 필모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영화로 평가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작심한 듯 영상과 이미지로만 영화의 대부분을 채웠습니다. 그런 까닭에 영화에서는 이유없이 허무감에 사로잡히고 고독과 우수가 짙게 드리워지곤 합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지요. 말하자면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우울하고 공허한 느낌을 만들어냈던 겁니다


홀리데이 인 서울이 개봉 후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 매니아들로부터 왕가위 아류라는 비난을 거세게 받았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의 애초 의도와 사뭇 다른 결과와 직면했던 겁니다. ‘결혼 이야기코리안 뉴웨이브의 새로운 기수로 떠올랐던 김의석 감독의 위상도 적잖은 타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여파 때문에 김 감독은 그 후에는 결혼 이야기와 같은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2년쯤 지난 후에 오랜 영화동지인 안동규 대표(영화세상)의 권유로 야심차게 북경반점’(1999)을 만들었으나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후 김 감독은 실질적인 연출활동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3년여를 재직하면서 영화행정가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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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수 역의 장동건(사진 위)과 호텔 벨보이 역의 김민종(사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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