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통과의례와도 같은 방황과 반항 등의 모습을 담아내는 성장영화를 흔히 ‘청춘영화’라고 일컫습니다.
젊은이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남아있는 제임스 딘의 미국영화 ‘이유없는 반항’(1951년)을 대표적인 청춘영화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에서는 故강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1964년, 김기덕 감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청춘영화에는 으레 청춘스타가 등장합니다. 또래 젊은이들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지요. 외모에서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기고, 표정과 말투에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습니다. 제임스 딘이 그랬고, 故강신성일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이들 청춘스타는 하나같이 반항아의 이미지를 한껏 발산합니다.
기성세대의 고정관념과 질서에 대한 저항의 몸짓에 다름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딪치는 세상은 꿈적도 안하는 콘크리트벽과도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좌절과 시련의 고통을 겪게 되지요. 감내하기 힘든 이 시간들은 과연 언제쯤이나 끝날 것인가. 영화 속의 청춘스타, 주인공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청춘관객들은 같이 눈물 짓습니다.
영화 ‘비트’(1997년, 김성수 감독) 역시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우정과 모험 등을 담아낸 청춘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청춘스타 정우성이 주인공으로 나왔습니다.
걸출한 청춘스타 정우성과 고소영은 영화데뷔작 '구미호'에서의 어설픈 연기 논란을 만회하고 싶은 바람에서 '비트'에서 다시 만나 연기하모니를 펼쳤다.
청춘영화 성공등식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셈이었지요. 당시 정우성은 SBS TV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1995년)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업고 영화 ‘본 투 킬’(1996년, 장현수 감독) 등을 통해 승승장구할 때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탁월한 ‘하드웨어‘로 기대를 모았으나 영화데뷔작 ‘구미호’(1994년, 박헌수 감독)에서의 ‘아쉬었던 연기’를 만회하고 싶었던 정우성의 바람이 얼마간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었습니다.
‘비트’는 정우성의 출연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작단계에서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기만화가 허영만의 원작만화라는 점도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 되었습니다. 정우성의 ‘가치’를 일깨워준 TV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 역시 허영만 작가의 원작이었으니까요.
하기는 허영만 작가도 ‘비트’의 영화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TV드라마로 만들어진 ‘아스팔트 사나이’를 보면서 주인공 정우성의 광팬이 되었으니까요. 오죽하면 ‘비트’의 영화화 판권을 계약하면서 김성수 감독에게 ‘아스팔트 사나이’의 정우성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 ‘비트’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겠습니까.
김성수 감독 또한 일찌감치 정우성이라는 걸출한 신인배우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연기력 논란을 낳았지만 김 감독은 ‘구미호’에 등장하는 정우성의 ‘아우라’에 눈이 버쩍 띄었던 겁니다.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그들도 우리처럼’(1990년)과 ‘베를린 리포트’(1991년) 등을 통해서 선 굵은 ‘남성 캐릭터’에 주목해오던 김 감독의 입장에서는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등장이 내심 반가웠던 거지요.
그래서 김 감독은 감독 데뷔작인 ‘런어웨이’(1995년)에 이어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정우성에게 시나리오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정우성으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김 감독으로서는 ‘런어웨이’가 이병헌과 김은정 등 남녀 주인공에게 모두 신인연기상을 안겨주었던 터라 정우성 캐스팅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자신했는데, 예상 밖의 거절에 적잖이 섭섭해 했습니다. 자연히 김 감독의 차기작은 잠정 보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연출 작품을 ‘비트’로 바꿔 영화화가 본격화되자 다시한번 정우성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던 것이었습니다.
'구미호'에서의 고액 개런티 논란, 노출신 촬영 거부 등으로 비난 받았던 고소영은 "다시는 영화 안한다"는 선언까지 했으나 정우성의 권유로 '비트'에 출연,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지난 201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특별전으로 마련된 ‘스타, 배우, 아티스트 정우성’ 행사에 참석한 정우성이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감독님이 보내주신 시나리오를 보니까 한국에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거절했는데, 얼마 후 다시 ‘비트’ 시나리오를 주셨어요. 어? 나 같은 배우가 거절했는데도 시나리오를 또 주시네. 무슨 뜻이지, 잠시 생각했지만,,,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지다니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무조건 하겠다고 했지요”
김 감독은 ‘비트’의 주인공 ‘민‘이라는 캐릭터를 정우성과 동일시 했습니다.
사실 원작만화에서 도입부와 캐릭터의 일부를 가져오기는 했습니다만 각색 시나리오(심산 작가)는 거의 재창조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민의 캐릭터에는 평소 김 감독이 유심히 살펴온 정우성의 실제 모습이 많이 투영됐습니다.
정우성 역시 ‘민’의 캐릭터에서 자신의 정서와 환경이 많이 비슷하다고 여겨 ‘민’의 캐릭터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대개 그 또래의 남자라면 어느 정도의 허세가 있기 마련인데, ‘민‘은 훨씬 솔직한 캐릭터였다는 겁니다. 영화 속 ’민‘의 대사 중에서 “난, 꿈이 없어”라거나 “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오래 살겠다“는 등의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비트'의 감초 역할인 '환규'로 열연한 임창정. 해외음악 저작권 논란을 거친 뒤, '비트'의 비디오와 DVD판에서는 그의 노래 '슬픈 연가'가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됐다.
타고난 싸움실력으로 학교를 평정한 민(정우성), 폭력조직에 들어가 성공하겠다는 태수(유오성), 그리고 민이 전학간 학교의 폭력서클 보스였으나 민과의 싸움에서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진 인연으로 단짝친구가 된 환규(임창정).
고등학교 시절을 싸움과 혼돈으로 보내던 세 사람. 그러던 중 민은 환규를 따라나간 노예팅에서 로미(고소영)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룻밤 동안 촬영된 당구장 액션 장면을 찍던 도중 정우성은 허리 부상을 입었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촬영을 마쳤다. 나중에 이 촬영에피소드는 제작스태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영화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는 이들 네 명의 청춘스토리가 ‘비트’의 골격을 이룹니다.
이중에서도 순수한 파이터 캐릭터의 ‘민’이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 친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 등은 전형적인 느와르 무비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만큼 촬영과정도 쉽지 않았지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촬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서울 잠실 신천의 유흥가 골목에서는 도둑촬영을 감행하기도 했지요.
유흥가 골목에서의 촬영인지라 촬영협조를 받을 주체도 마땅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많은 행인들을 통제하고 촬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숨긴 채, 정우성과 유오성 등 배우들을 인파 속으로 들여보내 찍었습니다.
촬영현장은 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싸움 등 액션장면이 많다보니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김 감독과 제작스태프들 역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지요.
특히 서울 돈암동의 한 당구장에서 진행된 난투극 장면의 촬영은 정우성과 정두홍 무술감독 등 스턴트맨들 모두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당구장의 영업이 끝난 새벽시간에 찍어야 하는 데다 NG를 줄이기 위해 여러차례의 리허설을 갖는 바람에 당구장의 시설물도 꽤많이 파손됐습니다. 당구 큐대 20~30개가 부러지고, 당구장 창문 유리창도 여러장 깨졌지요. 물론 모두 변상했습니다.
당구장 액션 장면을 지휘하는 정두홍 무술감독(사진 오른쪽 검은 옷)조차 정우성의 부상투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당구장 촬영의 강도가 얼마나 셌으면, 정우성이 촬영 도중 잠깐만 쉬고 오겠다며 몇 차례씩이나 밖으로 나갔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정우성이 이날 촬영 중 허리를 다쳤습니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촬영에 임했고, 촬영 중간에 잠깐씩 바깥으로 나가서 허리를 움켜쥐고 통증을 달래곤 돌아왔던 것이었습니다.
정우성의 당구장 촬영현장 에피소드는 ‘비트’ 제작스태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해 영화계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정우성은 분명 걸출한 청춘스타였습니다만 촬영현장에서는 이처럼 철저하게 영화작업에 몰두하는 ‘배우’로써의 존재를 입증해 보였던 겁니다.
‘비트’는 정우성에게 영화배우의 정체성을 각인시켜준 작품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정우성은 영화 속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오토바이를 질주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훗날 “괜히 찍었나 싶었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오토바이 배달하는 청년이 그 장면을 흉내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는 것이었지요.
여주인공 고소영에게도 ‘비트’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구미호’에서 고액 개런티와 노출신 촬영 거부 등 때문에 비난이 쏟아지자 “다시는 영화 안한다”고 선언까지 했던 고소영으로서는 정우성의 권유로 출연한 ‘비트’를 통해 구겨진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당구장 액션장면을 촬영하면서 디렉팅에 열중하는 김성수 감독.(파란 모자)
‘비트’는 관객들의 지지에 힘입어 흥행면에서도 커다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4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해 한국영화 흥행 4위를 기록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비트’는 음악 저작권 문제에서 중대한 흠결을 남겼습니다. 비틀즈의 ‘렛 잇 비’(Let it be)를 저작권 협상 없이 그냥 영화에 썼던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영화계에는 음악 저작권과 관련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었던 터라 ‘괜찮은 음악이다’ 싶으면 그냥 마구 사용했거든요.
그런데 하필이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즈의 음악을 쓰는 바람에 저작권 대행사인 EMI의 항의를 받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뒤, 뒤늦게 적지 않은 금액의 사용료를 지불했습니다.
이 때문에 극장에서 상영될 때의 영화음악들은 2차 부가시장인 비디오판, DVD판에서 대부분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임창정이 부른 ‘슬픈 연가’(환규의 테마) 등 창작곡들로 급히 채워졌습니다.
‘비트’의 저작권 파문 이후 한국영화계에서 음악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비트'와 SBS TV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의 원작자인 허영만 작가(오른쪽)가 당구장 촬영현장을 찾아와 정우성과 포즈를 취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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