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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남부군`

기사입력 [2017-09-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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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다소간 현실화되면서 남부군이라는 소설(원작 이태)이 출판될 수 있었던 시절영화 남부군‘(1990, 정지영 감독)도 이런 시대적 배경의 토대 위에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전의 군사정권이 계속되었다면 절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일이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40~50대 이상의 세대들은 반공교육을 참으로 무섭게(?)받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군은 괴뢰군으로, 북한주민은 빨갱이로 인식하도록 공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매년 6월이 돌아오면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이라는 주제로 시뻘건 색깔을 덧칠한 포스터를 그리게 했고, 또 이것을 경진대회 형식으로 만들어 시상을 하곤 했습니다. 포스터 속의 북한군이나 북한 주민은 대부분 괴물이나 귀신처럼 묘사되었죠. 요즘의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얘길 하면 아마 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암튼 이런 시대를 지나오던 중, 빨치산(남부군)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얼마나 커다란 화제를 낳았겠습니까. 당시 진보층이나 의식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세상 달라진 게 실감난다고 했지만 보수가치를 지닌 기성세대들은 데모하던 놈들 때문에 마침내 말세가 왔다며 탄식을 금치 못하는, 양극화된 반향이 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6.25전쟁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의 종군기자 출신으로 남부군이 되었던 인물(이태)의 수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니,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빨치산 영화로 비쳤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 역시 이태(안성기)1인칭 시점으로 펼쳐집니다6.25 전쟁이 한창인 1950년 9월,전주지역의 취재를 위해 파견됐다가 조선노동당 유격대(남부군)에 전투요원으로 합류하게 된 이태는 국방군과 대치 중 큰 부상을 입습니다. 자신의 부상을 정성껏 간호하는 민자(최진실)에게 사랑을 느끼고 민자 역시 종군기자였던 이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부상에서 회복된 이태의 본대 복귀로 두 사람은 안타깝게 헤어집니다. 이후 이태는 남부군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여러 전투를 겪던 중, 같은 민족간의 전쟁을 비난하는 시인 김영(최민수)을 만나 인간적인 우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남부군의 전열은 약세를 거듭하고, 마침내 지리산 속 깊은 골짜기까지 후퇴하며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면서 남부군들은 하나둘씩 삶에 대한 집념도 내려놓게 됩니다.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전투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이태도 남부군의 대열에서 낙오하여 눈 속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나는 시천면 외공마을에서 토벌군에게 체포되었다. 16개월 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양측 후반에 남겨진 장비의 철거, 심지어 전사자의 발굴 및 반출에 관한 조문도 있었지만 남쪽 산악지대에서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이 마지막 장면의 내레이션에서 우리 민족의 비극을 다룬 영화 '남부군'의 완곡한 메시지가 가슴 아픈 여운을 안겨줍니다.

 

남부군'은 1990년 5월, 국내에서 가장 큰 상영관(2천석)인 대한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 개봉 첫날 극장 앞에는 입장권을 구매하려는 관객들의 줄이 남산한옥마을 입구까지 늘어섰을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 관객들이 많았다는 건데요, 사회문제와 이념문제 등에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라 당시 최고의 아이돌로 떠오른 최진실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가전제품 광고카피 하나로 국민여동생급 인기를 얻었던 최진실이었지만, 사실 영화에서는 이태(안성기)와 잠깐 동안 안타까운 사랑을 나누는 정도의 조연이었습니다. 물론 최진실은 이 영화로 난생 처음 신인여우상(청룡영화상)을 받았습니다.

남부군에 대한 관심은 비단 청소년 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서 골고루 높았습니다. 2천석의 대한극장에서 하루 5회,거의 매일 매진을 기록하며 상영되었습니다. 개봉 한 달 만에 가뿐하게 30만 명을 넘어섰지요. 이미 언급한 적 있습니다만 당시의 단관 상영시스템(지역 당 한 극장에서 상영)에서 10만 명이면 대박으로 평가하던 상황을 감안하면, ‘남부군의 관객동원은 실로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TV의 9시 뉴스에까지 소개됐겠습니까.

 

남부군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청룡영화상의 감독상을, 안성기는 남우주연상, 최민수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웃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최민수의 남우조연상 수상 장면입니다. 여타의 시상식과 달리 청룡영화상은 시상식 당일 오후에 심사위원들이 수상자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그만 최민수가 과거의 경우(시상식 전날 통보)만 생각하고 시상식에 나타나질 않은 겁니다. 자신이 수상자인 줄 전혀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오후 4시쯤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매니저가 부랴부랴 최민수의 집으로 달려가서 겨우 시간에 맞춰 시상식장 무대에 세운 겁니다. 번듯한 턱시도나 의상은 커녕 면도도 제대로 못한 채 트로피를 받아들고 겸연쩍게 수상소감을 말했죠. “어제 아무런 연락도 없길래 상 받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 다음엔 멋있게 차려입겠습니다

이날 최민수의 남우조연상 수상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남부군에는 유난히 2세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 최민수 외에 이혜영(부친 이만희 감독), 독고영재(부친 독고성), 허기호(부친 허장강), 조형기(부친 조항) 등이 모두 자신의 일처럼 최민수의 수상을 기뻐했던 겁니다. 정지역 감독도 의도적으로 캐스팅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며 웃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영화가 오늘날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활약중인 임창정의 데뷔작이라는 점입니다. 임창정이 열여섯살 고등학생으로 영화배우 지망생이던 시절, 처음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영화입니다. ‘남부군에서의 역할은 빨치산 소년병이었습니다. 출연 분량은 얼마 안됩니다만 임창정은 1989년 추운 겨울,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서의 촬영현장을 마치 제작부 막내 스태프처럼 꿋꿋하게 지켰습니다. 촬영현장에서의 숙소는 늘 주인공인 안성기와 같은 방을 썼습니다. 임창정이 제작부 스태프에게 부탁해서 이뤄진 것인데요, 제작부 입장에서도 안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는 효과도 있으니까 늘 안성기와 같은 방을 쓰도록 한 겁니다.

당시 촬영현장을 취재하러 간 필자도 하룻밤을 안성기 임창정과 같은 방을 썼는데요, 이날 밤 임창정의 집요(?)한 질문공세 때문에 적잖이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하기는 이제 막 입문한 배우지망생으로서는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가 되는지,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대학은 어떻게 진학해야 하는지 등등 그 열정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이제 그만 잠 좀 자자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등으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임창정에게 가끔 이 시절 추억을 떠올려 얘기하면, 그는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안성기 형처럼 연기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어요라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임창정은 싹수 있던 배우였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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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촬영현장에는 늘 취재진이 북적댔다. 당시의 상황에서 '남부군'의 영화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만큼 핫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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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 안성기의 한겨울 눈속 행군. 실제상황을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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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남녀 주인공인 이혜영과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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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은 영화 산 속에서의 촬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과 덕유산 등지에서 1989년 겨울내내 촬영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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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주인공(이태)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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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태) 안성기는 1989년 겨울, 꼬박 3개월여를 지리간과 덕유산

자락에서 촬영을 위해 실제 빨치산처럼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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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속 촬영현장에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겨울내복을 두둑히 준비했다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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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안성기)의 부상을 정성껏 치료해준 민자역의 최진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가전제품의 광고로 일약 인기스타로 올라선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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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영화화를 기획하고 연출한 정지영 감독(왼쪽)이 안성기 등의 배우들과 촬영장면을 의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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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퇴각 장면. 안성기 옆에 앉아있는 소년병의 모습. 이날 촬영에는 찍히지 않았으나 이같은 소년병으로 임창정이 처음 영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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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촬영을 맡았던 유영길 촬영감독(왼쪽)과 정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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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정지영 감독과 주연 안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