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희
지금은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이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입니다. 스릴러 장르에서 다양한 변주를 통해 독보적인 영상미학의 세계를 구축한 박 감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가 스물아홉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데는 서강대(철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입문한 영화 ‘깜동’(1988년, 유영진 감독)과 ‘비오는 날 수채화’(1990년, 곽재용 감독) 등의 현장에서 시나리오 각색 능력과 연출부로서의 눈썰미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시적(詩的)인 제목의 시나리오 역시 박 감독 자신이 직접 썼습니다. 그리고 캐스팅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소녀시대’ ‘마지막 콘서트’ 등의 히트가요로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이승철과 왕방울만한 큰 눈과 늘씬한 키로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있던 CF모델 나현희가 일찌감치 남녀 주인공으로 결정됐습니다. 데뷔하는 감독에게 이러한 ‘운발’은 엄청난 것이었죠.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하게 된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이승철(왼쪽)과 나현희.
조직 보스의 애인 은주(나현희)와 조직의 자금을 빼돌려 도피행각을 벌이는 무훈(이승철).
이승철 나현희
나현희
나현희
이승철
사실 여기에는 이승철의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10대 소녀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당시 이승철은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대중가수가 방송무대에 서지 못하면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건 시간문제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승철의 입장에서는 박 감독의 영화출연 제의가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던 거죠. 방송활동을 쉬는 대신 영화출연으로 팬들에게, 또 대중에게도 여전히 ‘진행형 이승철‘을 확인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박 감독의 입장에서도 이승철이라는 인기가수를 데뷔작의 주인공으로 기용하는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박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의 음악에 대해서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화음악을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박광현과 신재홍에게 맡겼을 정도였으니까요. 말하자면 두 사람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실제로 ‘달은 해가 꾸는 꿈’에서는 이승철과 나현희의 듀엣곡 ‘그대가 나에게’ 등 7곡이 배경음악으로 나옵니다. 이 곡들은 영화 OST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제법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클럽가수로 등장하는 나현희가 부르는 ‘이별은 시작되었는데’와 ‘사랑했던 순간’ 등은 훗날 나현희의 가수겸업 활동때 주요 레퍼토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소녀시대' '마지막 콘서트' 등의 히트곡으로 소녀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승철.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촬영현장에는 늘 이승철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활동이 중단되자 영화출연을 돌파구로 삼았던 이승철.
조직폭력세계에서 보스(이기열)에게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는 무훈(이승철)은 어느날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은주(나현희)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은주는 보스의 여자. 보스의 잦은 폭력에 힘들어하는 은주에게 연민을 느낀 무훈은 조직의 자금을 빼돌려 은주와 탈출을 시도하던 중 붙들리고 맙니다. 무훈은 돈을 갖고 탈출하고, 은주는 사창가로 팔려갑니다. 그후 1년여 동안 은주를 찾아 헤매던 중, 이복형인 사진작가 하영(송승환)의 스튜디오에서 은주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수소문 끝에 은주를 구출해낸 무훈은 하영의 스튜디오에서 기묘한 동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영도 청순한 은주에게서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은주의 재능과 미모를 발견하고 모델일을 권유합니다. 은주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하영 덕분에 모델로서의 입지를 착실히 쌓아갑니다. 이 무렵, 무훈은 집요하게 추적해오던 조직으로부터 은주를 담보로 협박하는 ‘딜’을 제안받습니다. 조직의 배신자를 살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은주를 위해 살인도 불사하려는 무훈, 그러나 그 살인 대상은 자신을 도와준 선배였습니다. 살인을 포기하고 도망치려는 순간 경찰의 총에 맞아 부상한 무훈은 조직의 보스를 찾아가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무훈 역시 피범벅 만신창이 상태가 됩니다.
발걸음을 제대로 뗄 수조차 없는 무훈은 공중전화 박스에 주저앉아 하영에게 전화를 겁니다. 공중전화 박스 너머 TV수상기에서는 은주가 나오는 패션쇼가 비쳐집니다. TV 속의 은주를 바라보며 무훈은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숨을 거둡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하영은 무훈을 생각하면서 이미 스타로 우뚝선 은주 주연의 영화를 보면서 회한에 잠깁니다.
집요하게 추적해오는 조직을 피해 다녀야 했던 무훈(이승철).
이승철과 나현희는 영화의 주제가를 함께 불렀고, 이 영화 OST음반의 성공으로 나현희도 영화종영 후 가수겸업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전세계 영화계에 ‘느와르’의 바람을 일으킨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은 듯, ‘달은 해가 꾸는 꿈’ 역시 액션느와르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습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 이상으로 선혈이 낭자한 붉은 톤의 화면에서는 비장미가 넘쳐났습니다. 훗날 박찬욱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각인된 강렬하고도 스타일리쉬한 비주얼 메시지가 이때부터 ‘싹‘을 보였다고나 할까요. 물론 첫 영화이니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헐겁거나 화면 연결이 덜거덕거리는 부분도 꽤 있었습니다.
또 이승철과 나현희 둘다 성우의 목소리로 더빙된 음성으로 영화에 나온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하기에는 불안해서 그랬겠지만 특히 스물네살의 이승철 목소리를 더빙한 성우의 음성은 너무 노숙한 이미지여서 소녀팬들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개봉일인 1992년 2월 29일 아침, 서울 충무로의 명보극장 앞에는 10대 소녀팬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선 이들의 줄은 명보극장 앞 광장을 돌아 뒤편 골목길까지 끝이 없었습니다. 이날 이승철의 무대인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후 2시쯤 이승철을 태운 차량이 극장 앞에 섰을 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이승철의 얼굴을 보기 위해 소녀팬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명보극장의 강화유리벽이 무너졌을 정도였습니다.
이날의 극장 앞 풍경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의 흥행 대박을 예감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일요일 오후까지 계속됐습니다. 명보극장 관계자들은 물론 영화제작 관계자들 모두가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 때가 되자, 극장 앞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하루 5회 상영했는데, 4회 6시 무렵부터 극장 안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던 겁니다. 주말 이틀 동안 난리를 치던 극장 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주중 내내 극장은 ‘파리를 날렸습니다’. 말하자면 극장 앞에 몰려든 인파는 영화관객이라기 보다 이승철의 무대인사와 팬 사인회에 찾아온 이승철의 소녀팬들이었던 겁니다.
결국 ‘달은 해가 꾸는 꿈’은 ‘3.1절 특선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2주만에 극장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명성과 함께 지난 2014년에는 이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해서 재개봉하는 이벤트도 있었습니다만 당시 박 감독은 이 영화 이후 1997년 ’3인조‘를 연출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 영화감독의 직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소릴 듣는 박찬욱 감독에게도 이런 초년 시절이 있었다는 게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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