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용호의 기획과 아이디어로 촬영제작된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영화포스터.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는 해외촬영 바람이 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치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기획영화’가 한국영화 제작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철저하게 기획된 해외촬영에도 나서게 된 겁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파리 애마’(1988년)나 ‘짚시 애마’(1989년) 등 몇몇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그저 ‘이국적인 볼거리’를 가미하기 위해 해외촬영을 다녀왔다면 ‘깊고 푸른 밤’(1986년, 배창호 감독)과 ‘아메리카 아메리카’(1989년, 장길수 감독) 등의 흥행성공 이후에는 영화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촬영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대기업의 자본이 충무로 한국영화계에 유입되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해외촬영을 시도하는 영화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소재도 다양해지고, 영화의 스케일 또한 커졌습니다. 해외촬영지도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물 위를 걷는 여자’(1990년, 박철수 감독)는 프랑스로,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년, 장길수 감독)는 미국, ‘사의 찬미’(1991년, 김호선 감독)는 일본, ‘베를린 리포트’(1991년, 박광수 감독)는 통독 이후의 베를린과 파리,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년, 장길수 감독)은 스웨덴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또 ‘명자 아끼코, 쏘냐’(1991년, 이장호 감독)는 일본 북해도와 사할린에서 촬영되었고, ‘맨발에서 벤츠까지(1991년, 이성수 감독)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베리아 현지 촬영을 감행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맨발에서 벤츠까지’는 베스트셀러 소설 ‘인간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홍신 작가의 소설 ‘야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야심’은 원래 현대그룹의 사보에 연재되던 소설이었습니다. 야심만만한 한 청년의 사랑과 성공을 다룬 이야기였는데, 제작사(예필름)의 고규섭 대표(2017년 작고)가 중앙고등학교 동문 관계인 정몽준 회장의 도움으로 사보에 연재 중이던 소설을 영화화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사와 촬영팀은 비단 소설의 영화화 계약뿐 아니라 시베리아 촬영 때도 현대측의 적잖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베리아의 주요 촬영지가 러시아 동북부에 위치한 스베틀라야의 현대상선 벌목지였는데, 홍학표 박은영 등 배우들과 제작스태프들이 한 달여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베리아의 기후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촬영하는 동안 어려움을 적잖이 겪었습니다. 아침에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가 싶다가도 오후 되면 비바람이 몰아치는 식이었습니다. 제작스태프들이 이구동성으로 “왜 시베리아가 유배지였는지 실감난다”고 했을 정도로 날씨 변수가 많았습니다만 현대상선측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무사히 촬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스베틀라야의 벌목지 촬영에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엑스트라 배우들의 동원이 문제였습니다. 홍학표 박은영 유퉁 장세진 등 한국에서 건너간 주요 배우들이야 상관없지만 벌목지 현장의 노동자 역할을 맡아줄 엑스트라 배우들은 현지의 실제 노동자들 중에서 급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흑룡강과 연변 등지에서 돈 벌기 위해 시베리아 벌목장으로 취업해온 조선족 노동자들은 촬영팀의 이같은 상황을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몇몇 노동자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촬영현장을 지켜보기도 했지요. 이러한 엑스트라 출연은 촬영 스태프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한두번씩 노동자 역할로 출연했는데, 이중에서도 동시녹음을 맡았던 김범수 기사는 노동자들을 감독하는 관리반장역을 맡아 전문배우 못잖은 연기력을 과시했습니다. 촬영현장의 이성수 감독 등 스태프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촬영현장의 취재기자로 동행했던 필자 역시 조선족 노동자들의 십장 역할을 맡아 여러차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홍학표로부터 연기지도를 받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여주인공 아름 역의 박은영.
TV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박은영은 '맨발에서 벤츠까지'에서의 열연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로도 평가받았다.
1990년대 초반 MBC TV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 안방극장에서만큼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박석 역의 홍학표.
박은영은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촬영현장에서도 영화 속의 아름처럼 상큼 발랄한 모습으로 촬영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맨발에서 벤츠까지'에서의 홍학표와 박은영의 멜로라인은 처음의 예상보다 훨씬 잘 살아이났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대그룹에 입사한 신입사원 박석(홍학표)은 사원 연수회에서 장차 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밝힙니다. 저돌적인 박석은 같은 기획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 아름(박은영)의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취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실망하고 산간오지 현장근무를 자원해서 본사를 떠납니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게 된 박석은 그곳에서 자행되는 비리를 발견하고 회사에 보고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잡음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회사 임원들에 의해 박석은 시베리아 지사로 전출됩니다.
시베리아 벌목현장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던 중 박석은 사고로 부상을 입습니다. 박석의 부상 소식을 전해들은 아름은 한달음에 시베리아로 달려옵니다. 사실은 아름도 박석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시베리아에서의 해후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후 시베리아 천연가스 수송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하고, 본사의 긍정 평가에 따라 본사 기획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름이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도 밝혀집니다. 모멸감에 사로잡히는 박석과 순수한 사랑과 진심을 전하려고 애쓰는 아름,,, 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입니다.
촬영현장에서 박은영에게 촬영장면을 설명하면서 직접 실연해보이고 있는 이성수 감독(빨간 점퍼).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홍학표와 박은영은 당시 영화보다는 주로 TV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던 탤런트였습니다. 홍학표는 당시 시청율 고공비행중인 MBC TV ‘우리들의 천국’의 주역으로 안방극장에서 만큼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박은영은 KBS TV의 대표적인 청춘드라마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시즌2)에서 새내기로 막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해외촬영까지 계획된 ‘큰 영화’라면 정상급 배우의 캐스팅이 예상되던 당시 영화계의 관행에 비추어보면 다분히 아쉬운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연출을 맡은 이성수 감독이 데뷔작이라는 ’핸디캡‘이 작용했습니다. 정상급으로 꼽히는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검증 안된’ 신인감독의 영화에 선뜻 출연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성수 감독은 캐스팅 관련해서 많은 배우들을 만났습니다. 정중하게 출연을 요청하는 것 뿐 아니라 읍소에 가까운 부탁도 하고, 이런저런 네트웍을 동원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습니다. 제작사와 함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결국은 ‘청춘드라마’라는 영화 컨셉에 맞춰 TV의 청춘드라마에서 인기 얻고 있는 두 탤런트를 전격 캐스팅하기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제작 과정은 매우 순탄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현대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베리아 현지 촬영도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고, 이성수 감독과 신옥현 촬영감독, 임재영 조명감독을 비롯해 현장을 지켰던 모든 제작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신명난 현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는 특히 주인공 홍학표의 역할이 컸습니다.
잠깐 홍학표와 관련해서 옛 추억을 들춰볼까 합니다. 키 171cm의 홍학표는 그다지 잘생긴, 이름하여 꽃미남 배우의 계열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방극장에서 최진실과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얼굴과 더불어 선량한 이미지의 풋풋한 개성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도 바른 품행과 성격이 매우 원만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그와 잠시라도 속엣 얘길 나눠본 사람들은 “명랑 쾌활한 남자”라고 평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촬영현장, 특히 다분히 힘들었던 시베리아 벌목지의 촬영현장에서도 홍학표는 ‘오락반장’이었습니다. 촬영팀 전체에 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에너지원’이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할 때, 시베리아에서의 촬영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스태프들 대부분에게 ‘즐거웠던 현장’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천국’의 주역으로, 또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주인공으로도 캐스팅될 수 있었던 거겠죠. 당시 홍학표의 나이는 서른 문턱을 막 넘을 때였습니다. 1961년생인 그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이자 동갑인 배우가 최민식입니다. 상상이 잘 안될 겁니다. 홍학표와 막역한 선후배로 알려진 이경규도 나이는 그보다 고작 한 살 위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장점을 많이 지닌 배우 홍학표를 요즘에는 별로 만날 수 없다는 겁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점차 연기활동을 줄이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몇 년만에 한번씩 TV드라마에 잠깐 얼굴을 비치는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맨발에서 벤츠까지’는 1991년 12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로 개봉됐습니다. 영화포스터도 눈길을 끌었지요. 보통의 영화포스터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캡쳐하거나 디자인하여 만들지만 ‘맨발에서 벤츠까지’의 경우에는 김용호 사진작가에게 촬영을 의뢰, 영화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제작됐습니다. 이 포스터가 국내에서 가장 큰 대한극장(2천석)의 간판에 걸렸고, 또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라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었으니 흥행성공이 기대됐습니다만 개봉 3주만에 극장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영화흥행은 아무도 모른다’는 극장가의 속설을 실감케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s.com)
홍학표와 박은영의 연기호흡이 잘 맞아, 촬영현장의 분위기도 늘 밝았다.
촬영 당시 홍학표의 나이가 서른이었으나 워낙 동안이어서 박은영과의 멜로 연기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장차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밝히는 신입사원 박석(홍학표)의 연수회 장면.
'맨발에서 벤츠까지'가 감독 데뷔작이어서 캐스팅 등으로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야했던 이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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