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안개속에서 2분 더`

기사입력 [2017-11-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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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극장가에는 갑작스레 홍콩영화의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홍콩영화라고 하면 흔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는 황당무계한 무협액션영화들이 대분이었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쯤 볼 수도 있겠지만 홍콩영화=황당무계의 등식을 인지하고 난 뒤엔 웬만해서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게 홍콩영화였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영화를 남다르게 좋아하는 영화광들조차도 이제 외팔이라면 신물이 난다며 외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홍콩영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른바 홍콩 느와르로 불리는, 칼 대신 권총을 잡은 현대식 무협영화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홍콩영화계 스스로 황당무계한 무협액션으로는 더 이상 관객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선보이게 된 겁니다. ’느와르‘(Noir)라는 프랑스어는 영어의 Black 과 같은 뜻입니다. 어두운 암흑가의 폭력을 다루는 영화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거죠. 즉 홍콩의 중국 반환(1997)을 앞둔 당대의 허무한 분위기를 암흑가의 이야기로 버무려내면서, 촬영 테크닉과 연출 방식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갖춘 서구의 도시영화처럼 포장된 영화들이었습니다. 홍콩의 뉴웨이브 시대를 주도한 서극, 오우삼, 두기봉 감독들이 바로 이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홍콩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식민지로 영국의 법률 아래 놓여있던 홍콩의 역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치 사회적 상황은 홍콩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북한은 물론 대만이나 남한 등까지 모두 독재정권의 시대여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상대적으로 홍콩에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홍콩 느와르 영화들로는 영웅본색을 비롯해 첩혈쌍웅’ ‘천장지구’ ‘열혈남아‘ ’지존무상등이 있습니다. 특히 영웅본색의 주인공 주윤발의 이미지를 흉내내는 건 당시 영화를 보고나온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대유행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40대 이상의 독자들 중에는 성냥개비 입에 물고 폼 잡던기억 갖고 있는 분들이 적잖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권불십년(權不十年)’, 혹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었습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처럼 홍콩 느와르의 바람은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속된 말로 잘 나간다고 마구잡이로 영화를 만들어냈던 게 가장 큰 패착이었습니다. 비슷비슷한 스토리의 영화들에 당시 잘 나가던 배우들이 1년이면 2~3, 주윤발이나 유덕화 같은 인기스타의 경우에는 5~6편에 겹치기로 출연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날림으로 제작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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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2분 더'의 주요 출연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홍달 역의 양가휘, 켄트 역의 강석현, 마크 역의 정철야, 충 역의 이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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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충(이자웅, 오른쪽)은 아버지의 양녀 소호(글로리아 입, 왼쪽에서 두번째)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늘 소호를 보호해주는 홍달(양가휘, 왼쪽).

 

한국-홍콩 합작영화로 알려진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 포덕희 감독)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러한 홍콩 느와르영화의 쇠락에 기대어(?)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60~70년대 한국영화계의 상징적인 배우였던 신성일(강신성일)이 제작사(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하여 한국영화 제작에 야심차게 나섰으나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기획'한 영화였습니다. 홍콩 느와르 시대를 풍미하던 배우들과 도신-정전자소오강호등의 촬영감독인 포덕희를 감독으로 기용하는 파격적인합작 시스템이라면 성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연인‘(1992, 장 자끄 아노 감독)으로 잘 알려진 양가휘, 그리고 당시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던 홍콩의 여배우 글로리아 입 등을 캐스팅했다는 사실은 국내 영화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물론 이들이야 홍콩 느와르 영화의 쇠락이 가속화되는 걸 지켜보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의미로 안개 속에서 2분 더에 참여하게 됐던 거죠. 어찌 생각하면 홍콩 배우들의 니즈와 신성일의 니즈가 서로 잘 맞아떨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영화를 잘 만들어내기만 하면 대박 기획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신성일은 이 작품에 자신의 아들인 강석현을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그런데 강석현은 이 영화 이전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 출연하여 다소 미흡한 연기력으로 아쉬움을 남겼던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열과 성을 다해 영화를 만들어야 할 제작자가 단지 아버지로서 아들을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 형국으로 몰고 간 셈이 됐습니다.

  

하지만 홍콩의 배우들은 촬영기간 내내 최선을 다했습니다. 양가휘는 영웅본색3’(1990)북경 예스마담’(1991) 등에도 출연했지만 그보다는 연인에서 여주인공 제인 마치와의 소름돋는 에로티시즘 연기’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글로리아 입 역시 공작왕아수라전기’ ‘미라클등의 영화와 가수로서의 겸업 활약을 통해,요즘식으로 얘기하면 홍콩의 국민여배우로 인기 절정을 누리던 스타답게 성실하게 촬영에 임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당시 영화전문잡지 로드쇼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외국여배우부문의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성룡 다음으로 한국을 많이 방문한 홍콩연예인으로 기록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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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 영화 뿐만 아니라 '연인'(1992년, 장 자끄 아노 감독)을 통해서도 국내 팬들에게 친숙했던 양가휘.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학중인 켄트(강석현)와 마크(정철야)는 신학기가 시작되는 날,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소호(글로리아 입)를 만나게 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켄트는 운명적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마크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맙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됩니다.

어느날 켄트와 마크가 길거리 싸움에 휘말려 퇴학처분을 받게 되자 소호는 오빠처럼 따르는 양부의 심복 홍달(양가휘)에게 두 친구의 취직을 부탁합니다. 그런데 소호의 양부는 암흑가의 대부,홍달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조직에 합류시킵니다. 그러자 평소 소호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양부의 친아들 충(이자웅)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두 사람을 없앨 음모를 꾸밉니다. 충의 계략으로 켄트와 마크는 위기에 빠지고, 소호 또한 본색을 드러낸 충에게 겁간당할 상황에 처합니다. 위기일발의 순간, 홍달이 나타나 소호를 구하고 켄트와 마크도 조직의 위협으로부터 빼냅니다. 잠시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는 네 사람, 하지만 이내 충이 조직원들을 동원해 홍달의 연인 샐리(오가려)를 납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샐리를 구하려는 홍달은 충의 조직으로 뛰어 들어가고, 켄트도 마크와 소호의 행복을 빌면서 홍달을 돕기 위해 그를 따라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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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역의 정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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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글로리아 입. '안개 속에서 2분 더'에서도 인기스타답게 최선을 다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2분 더'는 양가휘, 글로리아 입, 이자웅 등의 홍콩배우들과 포덕희 감독 등 홍콩 느와르영화의 주역들이 총출동한 데 비해 아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 마디로 밋밋했습니다.쇠락의 길에 들어선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요? 켄트(강석현)와 마크(정철야)가 소호(글로리아 입)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삼각 로맨스는 너무 뻔하고, 홍달(양가휘)과 충(이자웅) 중심으로 펼쳐진 갱 액션도 진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어느 신문의 컬럼에서 홍콩느와르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베낀 아류라면서 홍콩 느와르의 힘을 빌어보겠다는 얄팍한 상술은 결국 홍콩영화의 싸구려 액션과 한국영화의 싸구려 멜로를 합쳐놓은 조잡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고 혹평을 했겠습니까.

실제로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년 가을 국내에서 개봉되었으나 참혹하게 실패했습니다. 영화전문잡지 로드쇼의 외국여배우 인기순위 1위에 선정된 글로리아 입의 주연 영화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음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역시 영화는 웰메이드 필름이어야 관객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 셈이었지요.

그래도 안개 속에서 2분 더는 연출을 맡았던 포덕희 감독에게는 미래를 열어주는 발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촬영감독 출신인 포덕희(피터 파우) 감독은, 나중에 미국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와호장룡(2000)의 촬영감독을 맡아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으니까요.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나무 숲의 낭창거리는 가지 위에 가볍게 올라서서 대결을 펼치는 장면들을 기억하시는지요. 바로 이런 장면들을 포덕희감독이 찍었습니다. 그는 그 후 촬영감독으로 사탄의 인형-처키의 신부‘(1998) ’무극‘(2005거침없이 쏴라 슛뎀업‘(2007) ’포비든 킹덤‘(2008) 등의 영화를 찍으면서 제버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쌓았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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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달(양가휘, 가운데)은 충의 계략에 빠진 켄트(강석현, 왼쪽)와 마크(정철야, 오른쪽)을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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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2분 더'의 악역(충)으로 열연한 이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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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휘는 홍콩 느와르 시대를 풍미한 배우로도 유명하지만  아내와의 아름다운 부부애로도 중화권 팬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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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서 미흡한 연기력으로 아쉬움을 남겼던 강석현은 절치부심,

'안개 속에서 2분 더'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 싶어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또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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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전문잡지 '로드쇼'의 인기설문조사에서 외국여배우 1위에 선정됐던 글로리아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