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송강호의 출세작이 영화 ‘넘버3’(1997년, 송능한 감독)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흔히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일컬어 ‘조폭영화’라거나 또는 이를 코믹터치로 그려내면 ‘조폭코미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넘버 3’는 어쩌면 이들 ‘조폭영화’의 원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일류를 자처하는 부류의 싸구려 삼류 행각과 거꾸로 삼류 인생들의 일류 훔치기 해프닝을 그린 사회풍자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폭들이 주를 이루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조폭영화’로 회자됐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다 풍자라는 게 다분히 비틀기와 유머를 동반하기 마련이어서 ‘조폭 코미디’라는 해괴한 표현까지 얻게 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불사파‘라는 조직의 보스인 조필 역을 맡았는데요, 조연급이었습니다만 말그대로 깜짝놀랄 ‘씬 스틸러’(Scene Stealer~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 못지 않게 주목받는 조연을 뜻함)로 우뚝 섰습니다. 어설픈 조직원 3명을 데리고 맹훈련을 한다면서 시간 날 때마다 말도 안되는 일장 연설을 해대는 연기가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던 거지요. 이른바 빅히트를 쳤습니다. 주연 배우인 한석규 최민식 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송강호의 대사들은 영화 종영 후에도 한동안 너나 할 것 없이 성대모사를 하는 진풍경을 낳았습니다.
‘불사파‘ 조직 보스인 조필 역을 맡아 열연한 송강호.
“니들 한국 복싱이 왜 잘 나가다가 요즘 왜 빌빌대는 줄 아냐? 다 헝그리정신이 없기 때문이야! 헝그리정신! 옛날엔 말이야 다 라면만 먹고 진짜 라면만 먹고도 참피언 먹었어. 홍수환! 홍수환 엄마가 참피언 먹었다. 다 라면,,,, 복싱뿐만이 아니야. 그 누구야? 현정화!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나 따버렸어”
부하들한테 이 대사로 열변을 토하다가 스스로 흥분해서 말을 막 더듬는가 하면, 아시안게임 육상에서 금메달 딴 임춘애를 현정화라고 우기는 등 당시 송강호의 막무가내 연기는 가히 ‘역대급’이었습니다.
'넘버 3'에서 조직폭력배 도강파 보스(안석환)를 구한 공로로 조직 내 '넘버 3'로 올라서게 된 태주 역의 한석규.
‘넘버3’는 표면적으로는 ‘조폭 코미디’의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만 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공권력의 부패를 통쾌하게 풍자한 영화로 평가받았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같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조직 내 서열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조폭들은 물론 이들과 관계된 인물들 중 어느 한 사람 허투루 묘사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얼키고설킨 인물들의 관계를 적절하게 배치해놓은 솜씨나 촌철살인 대사들의 현란한 구사 등은 송능한 감독의 시나리오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비평가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의 영화”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지요.
‘넘버 3’가 송능한 감독 데뷔작입니다만 그는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성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적잖은 영화들의 작업에 참여해왔습니다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2’(1986년, 김호선 감독)의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태백산맥’(1994년, 임권택 감독) ‘금홍아 금홍아’(1995년, 김유진 감독)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지요. 그가 폭력조직 양은이파 조양은의 영화 ‘보스’(1993년 유영진 감독)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대개 영화의 내러티브라는 게 주인공을 중심으로 ‘기- 승- 전- 결‘의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만 ’넘버3‘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비켜나 있었습니다. 어느 한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내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가운데 서로 얼키고설키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넘버 3'에서는 태주 역의 한석규 외에 최민식 송강호 이미연 박광정 안석환 등 출연배우 모두가 감칠맛 나는 대사의 덕을 톡톡히 봤다.
도강파의 뜨내기 깡패였던 태주(한석규)는 하극상 쿠데타에서 보스(안석환)를 피신시킨 공로로 조직의 ‘넘버3’가 됩니다. 이 때문에 재떨이를 무기로 사용하는 재철(박상면)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합니다.
5년 후, 태주는 조직의 조직의 최대과업인 호텔 인수건을 맡았으나 깡패같은 마동팔검사(최민식) 때문에 진행에 차질을 빚습니다. 마검사를 회유하는데도 실패합니다.
태주의 호스테스 출신 아내 현지(이미연)는 여류시인을 꿈꾸다가 얼치기 시인 랭보(박광정)와 엉겹결에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편 5년 전, 도강파 보스 제거에 실패했던 조필(송강호)은 자신을 신봉하는 부하 셋을 데리고 불사파를 조직하여 깊은 산 속에서 지옥훈련을 하면서 복수의 칼을 갑니다.
그런가하면 태주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깡패검사 마동팔은 ‘죄를 지은 놈이 나쁜 놈이지, 죄에는 죄가 없다‘는 독특한 신념으로 태주를 만날 때마다 속을 뒤집어놓습니다. 항상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그는 툭하면 깡패들과 맞짱 떠서 폭력으로 제압하는데, 어느날 태주에게 “맞짱 떠서 네가 깡패를 그만 두든지, 내가 검사를 그만 두든지 내기하자”고 제안했다가 둘다 피떡이 되는 상태를 맞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재철이는 도강파와의 제휴를 위해 한국에 온 일본 야쿠자들과 “독도가 누구네 땅이냐?”를 놓고 시비 끝에 재떨이를 무기로 ‘재떨이 폭력’ 소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넘버3'의 주인공 태주 역의 한석규는 특유의 코믹 연기로 영화의 맛을 살려냈다.
얼핏 살펴본 시놉시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어느 한 명도 빛나지 않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치밀하게 깔아두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다 이 캐릭터들에게 맡겨진 대사들은 어쩌면 그렇게 감칠맛 나던지요. ‘넘버3’에 등장한 배우들은 모두 큰 ‘덕’을 봤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입체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할만 한 대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송강호 만큼이나 태주 아내(현지) 역의 이미연 역시 ‘넘버3’를 통해 연기 인생에 전환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미연은 1980년대 말 혜성처럼 영화계에 나타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 강우석 감독)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 김성홍 감독) 등의 하이틴 영화를 통해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성인 연기자로써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눈꽃’(1993년, 박철수 감독)이나 ‘살어리랏다’(1993년, 윤삼육 감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년, 오병철 감독) 등에 출연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넘버 3’를 만난 겁니다. ‘넘버 3’ 이후 이미연은 연기인생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으니까요. ‘주노명 베이커리’(1999년, 박헌수 감독)를 비롯해 ‘여고괴담’(1998년, 박기형 감독) ‘내 마음의 풍금’(1999년, 이영재 감독) ‘인디언 썸머’(2001년, 노효정 감독) ‘중독’(2002년, 박영훈 감독) 등의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습니다.
'넘버 3'의 촬영현장. 영화 속에서 부상입은 한석규가 얼굴 상처를 분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걸작 수준의 평가를 들었던 ‘넘버 3’가 개봉 극장의 흥행에서는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28만명의 관객 동원 기록을 남겼는데요, 1997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7위였습니다. 하지만 극장에서의 상영 후, 비디오시장에서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습니다. 극장 개봉후 일정기간 후에 출시되는 비디오 ’홀드 백 ‘기간이 끝난 1998년도 전국의 비디오가게는 ’넘버3‘의 대여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2000년대 들어서 ‘조폭코미디’ 영화들의 범람을 가져왔을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송 감독은 ‘넘버 3’ 이후 두 번째 영화로 ‘세기말’(1999년)을 내놓았습니다만 관객의 기대에는 못미쳤습니다. 물론 이 영화 역시 비평가들로부터는 호평을 꽤나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송 감독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이민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만 그후 지금까지 새로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넘버 3'의 촬영현장에서 제작스태프들을 지휘하고 있는 송능한 감독(선글라스와 모자). 감독 데뷔작인 '넘버 3'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감독'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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