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저물어가던 12월 하순 어느날, 정우성은 ‘KBS 뉴스집중’이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얼마 후 개봉될 자신의 출연영화 ‘강철비’(2017년, 양우석 감독)의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출연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는 영화와 관련해서 정우성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요. 그리고 인터뷰를 정리하는 말미에는 “특별히 근래들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 있느냐?”는 으레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정우성은 곧바로 “KBS 정상화”라면서 “국민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빨리 찾길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이날 KBS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들은 KBS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노조원들이었던 터라 정우성의 이같은 답변에 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인터뷰를 대충 마무리하고 말았지요.
정우성은 이날 ‘KBS 뉴스집중‘ 출연을 위해서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 사옥에 들어서면서 10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노조원들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KBS 뉴스집중’ 인터뷰 후에는 KBS 본부 노조원들에게 셀카로 촬영한 파업지지 동영상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뉴스 출연을 위해 KBS 신관에 들어섰는데, 그 황량한 분위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면서 “파업을 전해 듣는 것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주인 잃은 책상들이 즐비했고,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는 마치 KBS의 지나간 수난의 역사와 고통을 차갑게 보여주는 듯 했고, 거칠게 울부짖는 소리처럼 저에게 다가왔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습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인내와 끈기를 갖고 이어간다면 차디찬 겨울공기를 뚫고 전국에 있는 시청자와 국민들의 마음에 전달돼 그들의 눈과 귀가 여러분에게도, KBS에게도 돌아오리라 생각한다”며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서 힘과 의식을 모아 월급을 포기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것은 정말 멋지고 응원받아야 할 일”이라면서 “여러분, 지치지 마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며 힘찬 응원을 보냈습니다.
정우성의 이 동영상을 파업현장에서 다함께 지켜본 KBS본부 노조원들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동영상 속에서 정우성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와!”하는 함성으로 환호했고, 몇몇 여성노조원들은 “정우성, 멋지다!”면서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정우성 SNS’에서만 무려 350만 이상의 조회재생을 기록했습니다. 팔로워와 네티즌들의 댓글에도 ‘개념배우 정우성’이라거나 ‘정우성 소신발언 짱!“ 등의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평소 정치 사회 문화적 이슈에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혀온 정우성.
사실 정우성의 소신발언은 이전부터 간간이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 2016년 겨울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당시 개봉된 영화 ‘아수라’(2016년, 김성수 감독)의 무대인사에서는 영화 속의 대사를 원용해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쳐서 큰 화제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서는 지난 정권들의 잘못을 꼬집는 가운데, “국민이 권력의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치적 발언이라는 프레임으로 자꾸 그 발언을 억제하는 분위기”라면서 “히틀러가 ’생각없는 국민이야말로 국가의 큰 자산‘이라고 했는데, 독재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자산이었겠느냐”며 평소의 소진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1996년 인터뷰 당시의 정우성.
정우성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멋진 배우’가 되어가는 배우입니다. 1973년생인 그는 올해로 마흔다섯 살입니다만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운 아우라를 풍깁니다. 아니, 어른스러운 매력을 뿜어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요.
처음 그가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것은 ‘구미호’(1994년, 박헌수 감독)였습니다. 우월한 마스크와 훤칠한 외모를 앞세워 모델활동을 해오던 중 난생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란 걸 하게 됐습니다. 고소영과 함께 주연을 맡아 펼친 그의 연기는 솔직히 ‘발연기’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다 ‘구미호’의 컴퓨터그래픽 효과도 기대 이하였던 터라 정우성은 ‘구미호’에 대한 혹평까지도 모두 홀로 떠안아야 했습니다.
자칫 ‘대어급 신인’의 출현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정우성의 ‘하드웨어’가 워낙 출중했던 터라 1년 후쯤에는 SBS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1995년)에서 이병헌의 동생으로 나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 수 있었습니다. 또 1년쯤 후에는 영화 ‘본 투 킬’(1996년, 장현수 감독)에서 당시 떠오르고 있던 심은하의 상대역으로 발탁되어 그녀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질주하는 모습을 관객의 뇌리에 각인시켜 놓았습니다. 폼나는 오토바이와 가죽점퍼, 그리고 말보로를 피우는 고독한 킬러의 모습이 정우성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영화는 식상한 이야기로 실패했습니다만 오롯이 정우성만 ‘떴’습니다.
'비트'(1997년, 김성수 감독) 촬영 당시의 정우성.
그리고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영화 ‘비트’(1997년, 김성수 감독)를 만나게 됩니다. 주간만화잡지 ‘영챔프’에 연재되던 허영만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하기에 앞서 주인공 역할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여기에서 정우성이 당당히 1위로 선정됐던 겁니다. 당연히 정우성이 주인공을 꿰찮습니다. 상대역은 3년 전에 함께 ‘구미호’를 말아먹은(?) 고소영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출연했던 유오성 임창정 등과 방황하는 청춘의 초상을 감성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구미호’시절의 발연기를 뛰어 넘어섰음도 물론이었습니다. 그리고 ‘본 투 킬’에서 이미 선보였던 오토바이 장면, 특히 캄캄한 어둠 속을 질주하면서 두 손을 놓고 “나에겐 꿈이 없었어”라고 독백하는 장면은 청소년팬들은 물론 20대 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오죽하면 기억에 남는 영화의 명장면에 ‘비트’의 이 장면이 꼽히겠습니까.
'본투킬'(1996년, 장현수 감독)에 심은하(사진 위쪽)와 함께 출연한 정우성.
정우성의 아우라에 대해서는 동료 배우들도 이구동성으로 ‘엄지척’이라고들 합니다.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던 현빈은 어느 인터뷰에서 “정우성씨는 나의 우상이다.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조인성은 “데뷔 전부터 ‘아스팔트 사나이’를 보면서 우성이형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가하면 여배우들 중 이미연, 한효주, 공효진 등은 한 목소리로 “우리나라 배우 중에 가장 잘생긴 배우는 단연 정우성”이라고 합니다. 또 한지민은 “어렸을 때 ‘비트’를 보고난 이후 정우성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고, 정우성과 함께 의류광고를 찍었던 한채아는 “촬영 전 날, 한 숨도 못잤다. 정우성 선배 몸 위에 눕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잠이 하나도 안오더라”고 실토했을 정도입니다.
홍콩과의 합작영화 `데이지`(2005년, 유위강 감독)에서 킬러 역을 맡은 정우성.
정우성의 이같은 아우라 때문이었을까요. ‘비트’에 이어 ‘청춘은 없다’(1998년, 김성수 감독)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습니다만 그 외의 작품들인 ‘모텔 선인장’(1997년, 박기용 감독) ‘러브’(1999년, 이장수 감독) ‘무사’(2001년, 김성수 감독) ‘똥개’(2003년, 곽경택 감독) 등에서는 사실상 정우성만 살아남고, 작품들은 실패하는 ‘징크스’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정우성의 존재감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빛났습니다. 그런데 나이들어가면서 그 아우라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강철비’에서는 북한 1인자를 수호하는 북한요원으로 나와 “북한요원이 그렇게 멋있어도 되느냐”는 팬들의 반응을 낳았고, 악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더 킹’(2017년, 한재림 감독)이나 감시자들(2013년, 조의석 감독)에서도 카리스마를 발산했으니까요. 심지어는 영화 속에서 악인들만 즐비하게 등장하는 ‘아수라’(1996년, 김성수 감독)에서도 죽어가는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비리형사로 나왔는데 정우성은 도대체 망가지질 않았습니다. 망가뜨리려고 하는데도 그의 영혼은 망가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지요.
아마도 그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다소 망가졌다고 보여지는 영화가 ‘똥개’였을 텐데, 어딘가 모자라고 어눌한 똥개 철민이 역에서조차 “숨길 수 없는 하드웨어 때문에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되었다”는 어느 비평가의 연기평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하드웨어는 자타공인하는 ‘핵무기’급이고, 일취월장하는 연기력, 소탈한 모습으로 절대 자만하는 법이 없는 인성과 품성, 게다가 정치 사회 문화적인 이슈에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소신까지,,, 도대체 정우성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 하나 있군요. 아직 그는 미혼입니다. 20여년의 배우생활을 해오는 동안 이런저런 연애담이야 심심치 않게 있어왔지만 정작 평생의 반려자는 아직 못 만났네요. 아무리 후광이 비치는 아우라의 소유자라고 해도 영혼의 교감을 나눌 자신의 ‘반쪽‘은 끊임없이 찾고 있지 않을까요.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년, 김지운 감독 김지운)의 제작보고회. 현상금 사냥꾼 `좋은놈` 도원 역의 정우성.
영화` 호우시절(2009년, 허진호 감독)의 제작보고회에서 아저씨 같아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제가 아저씨 같다면 이제부터 아저씨라는 의미를 `잘생겼다`, `멋있다`라는 의미로 바꾸어야겠다``며 환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정우성.
2009년 안성기, 박중훈 두 배우가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합법 다운로드 권장 캠페인인 ‘굿 다운로더 캠페인’에 참여한 정우성,
2010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장동건, 고소영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정우성. 장동건이 "자신보다 더 잘생긴 배우는 정우성이다"는 말을 증명하듯 신랑 장동건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식장으로 들어가는 정우성. 이날 정우성은 장동건의 부케를 받았다.
2010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하녀’(감독: 임상수) VIP 시사회에 참석한 정우성.
중국과의 합작영화 `검우강호`(2010년, 오우삼)에서 중화권을 대표하는 액션 스타 양자경(오른쪽)과 액션 히어로를 연기한 정우성의 스틸 컷.
2011년 인천대교에서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을 촬영하는 정우성.
2011년 여자친구 이지아 사태로 맘고생을 하고 있는 정우성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2012년 5월 6일 `나이트 레이스(Night Race)` 이벤트에 참여해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에서 야간 레이서를 펼치는 정우성.
2012년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정우성.
영화 `감시자들`(2013년, 조의석 감독)의 VIP 시사회에 참석해 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정우성.
2013년 스포츠코리아와의 인터뷰 당시.
2013년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4회 청룡영화상`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정우성.
영화 `신의 한수`(2014년, 조범구 감독) 출연 당시의 정우성.
영화 `마담 뺑덕`(2014년, 임필성 감독)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팬에게 사인하는 정우성.
2016년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제 37회 청룡영화상`시상식에 참석한 정우성.
2017년 영등포구 타임스퀘터에서 열린 영화 `더 킹`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정우성.
2017년 영화 `강철비` 시사회에 참석하는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