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1일, 토요일 아침 서울 종로 3가의 피카디리극장에는 ‘천재선언’(이장호 감독)의 간판이 걸렸습니다. 극장가에서는 여름방학 성수기로 접어드는 시작점으로 보는 날이었지요. 대개 개봉 첫날의 극장 앞 풍경이라면 극장 앞 매표소에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는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만 피카디리 극장 앞은 그야말로 썰렁했습니다. 한여름인데도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더군다나 ‘천재선언’은 이장호 감독의 대표적 문제작인 ‘바보선언’(1983년)의 속편으로 알려진 영화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이 어떤 사람입니까. 70년대를 지나오면서 이른바 외화수입쿼터를 따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만들어내던 한국영화를, 그래서 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던 한국영화를 다시금 ‘볼 만한 영화’로 새롭게 인식시켰던 ‘별들의 고향’(1974년)을 시작으로 ‘바람불어 좋은 날’(1980년) ‘어둠의 자식들’(1981년) ‘바보선언’(1983년) ‘무릎과 무릎 사이’(1984년) ‘어우동’(1985년)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년) 등 내로라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낸 감독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영화 황금기로 불리던 1960년대 이른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끝나면서 ‘고무신 관객’이라 불리던 중년 여성들이 모두 TV로 돌아선 상황에서 ‘별들의 고향’으로 무려 47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영화사적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상영된 한국영화들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신기록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중년 여성관객들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별들의 고향’에는 청바지를 입은 젊은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점도 특이한 변화였습니다. 말하자면 ‘관객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별들의 고향’의 선전으로 한국영화 제작에, 또한 극장가에도 오랜 불황의 그늘이 서서히 걷혀지기 시작했지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 김호선 감독)을 비롯해서 ‘바보들의 행진’(1975년, 하길종 감독) ‘겨울여자’(1976년, 김호선 감독) 등 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들이 잇달아 나왔으니까요.
'바보선언'의 속편 격으로 알려진 '천재선언'에는 당시 177cm의 수퍼모델 출신 홍진경(가운데)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장호 감독이 한국 영화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데는 ‘별들의 고향’이나 ‘어우동’처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영화에 담아내는 리얼리즘 영화의 부활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별들의 고향’이 한국영화를 외면했던 관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견인차 노릇을 했지만,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멜로영화였다는 점에 눈을 뜬 겁니다. 최일남의 소설인 ‘우리들의 넝쿨’을 영화로 만든 ‘바람불어 좋은 날’이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청소년들의 모습, 달동네 판자촌의 비참한 현실 등을 영화에 담아내기 시작한 거지요. 유신 독재와 검열 등으로 인해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나 부패, 또는 가난의 묘사 등 한국영화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하던 사회고발 리얼리즘이 ‘바람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 등을 통해서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겁니다.
명감독이라 불리게 된 것도 이들 영화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적 영화 ‘바보선언’도 이 무렵에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원래 ‘바보선언’은 ‘어둠의 자식들’의 속편 격으로 기획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화공보부(현재의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시나리오를 사전검열하면서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수정을 요구했던 겁니다. 이 감독으로서는 황당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예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영화진흥 명목으로 1년에 한 편의 힌국영화를 만들도록 하는 강제조항이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하는 상황에 처했던 겁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 감독이 생각해낸 방법이 “영화를 망가뜨리자”였습니다. 어차피 만들어내야 한다면 엉망진창인 영화를 만들어 주겠다는 오기였지요. 그래서 시나리오도 없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현장에서 늘 즉흥적으로 연출해서 찍었습니다. ‘바보선언’의 주인공인 이보희 김명곤 이희성 등 세 배우들도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현장에 나왔다가 이 감독이 시키는대로 상황을 연기했습니다. 파티하는 장면을 찍는다면서 배우들을 목욕탕으로 끌어들여 노출신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 감독의 의도는 결코 영화를 잘 찍어보겠다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촬영된 필름들을 편집하던 편집기사(故 김희수)로부터 “독특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며 “영화를 포기하지 말고 마무리를 잘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망치는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상한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편집기사의 말에 이 감독은 그때부터 진지하게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60~70%정도의 촬영이 끝난 상태였지만 마무리 촬영을 통해서 답답한 현실에 가로막힌 세 청춘의 비루한 초상을 그린 영화로 완성했습니다.
망가뜨리겠다던 영화가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는 영화로, 실험적인 연출이라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듣는 영화로 둔갑한 겁니다. 완성본을 본 제작사(화천공사)와 지방배급업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바람에 개봉도 못하고 창고에 쳐박힌 지 1년여만에 가까스로 세상에 나온 영화가 국내외에서 두루 호평받는 ‘대반전’이 일어났으니까요.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당시 단성사의 임시 땜방으로 일주일만 상영할 요량으로 개봉됐지만 개봉 첫날부터 대학생 관객들이 몰려들어 매진행렬을 이뤘습니다. 일주일 상영하려던 계획은 계속 연장상영을 이어갔고, 급기야 한 달넘게 상영됐습니다.
훗날 이 감독은 ‘바보선언’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내가 만든 영화라기 보다는 전두환 정권이 만든 영화”라고 설명하면서 “저항이나 반항의식 같은 에너지가 모두 그 정권이 준 셈”이라고 밝혔습니다.
'천재선언'의 촬영현장.
이 ‘바보선언’이 단성사에서 그처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지 12년만에 그 속편 격이라며 내놓은 게 ‘천재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은 서울 종로 3가에서 서로 마주보고 위치해 있는데, 12년 전의 단성사 앞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피카디리 극장 앞에 펼쳐진 겁니다. 물론 영화 개봉 이틀 전에 한국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는 점도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사고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바보선언’에 출연했던 김명곤이 다시 나왔고, 당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가 출연했고, 신세대 모델로 주목받던 홍진경까지 가세했는데 ‘폭망’하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바보선언’과 흡사했지만 그 시절에 가졌던 이 감독의 영화적 에너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 감독도 인정했습니다. “어느 틈엔가 영화 제작의 주류에서 비켜나 있던 상황에서 ‘바보선언’때의 진지한 저항의식도 결여된 채로 영화를 만든다고 덤빈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고 말입니다. 결국 ‘천재선언’은 개봉 3주만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관객 수는 ‘바보선언’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천재선언'에서 왕년의 영화감독 안상기로 출연했던 안성기.
‘천재선언’의 결과가 가장 아쉬웠던 사람은 아무래도 처음 영화에 출연했던 홍진경일 겁니다. 177cm의 훤칠한 키의 홍진경은 15세의 나이로 슈퍼모델에 입상한 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베네통의 전속모델을 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중이었으니까요. ‘천재선언’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도 마치 ‘뽀빠이’의 올리브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꽤 어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보선언’의 이장호 감독에게 픽업됐으니 이보희와 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요. 그래서 촬영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진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기왕에 배우로 나섰으니까 대종상에서 신인연기상도 받고 싶구요”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으니까요.
결국 홍진경은 ‘천재선언’ 이후에는, 영화보다는 방송쪽으로 진출해서 활동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감독은 영화현장을 떠나 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천재선언’이후 18년만에 기독교영화 ‘시선’(2013년)을 발표해서 시선을 모았습니다. 그는 ‘시선’에 대해서 “영화라기 보다는 신앙을 통해서 깨달은 ‘이타적인 삶’을 얘기하는 일기 같은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홍진경은 '천재선언'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연기를 펼쳤으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천재선언'의 주요 출연진. 왼쪽부터 故 김일우, 홍진경, 김명곤, 안성기.
'천재선언'의 영화감독 안상기(오른쪽 끝)가 제작회의를 주도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
이장호 감독(가운데, 크로스백 멘)이 영화감독 안상기(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장면 촬영을 지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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