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영화 ‘도둑들’(2012년, 최동훈 감독)과 ‘신세계’(2013년, 박훈정 감독), ‘관상’(2013년, 한재림 감독)의 연이은 빅히트로 인기 절정을 누리던 이정재가 SBS TV의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습니다. 방송사마다 제작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는데, 이정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가슴 아픈 가족사’를 처음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속성 상, 흥미 위주의 신변잡기 등을 소재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으로 예상했던 방송에서 이정재의 ‘폭탄고백’이 터져나온 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TV에 시선을 주던 시청자들은 채널 고정과 함께 이정재의 고백에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되었지요. 외모로만 보면 영락없는 부잣집 도령으로 고생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을 법한 그의 입에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입문하게 된 사연, 심지어는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겪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 등 예상 밖의 이야기들이 한도끝도 없이 흘러나왔던 겁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폐증을 앓고 있는 친형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정재의 눈가에 이슬이 맺힐 때는 시청자들의 가슴 또한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할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몇 차례 낙마하면서 가산을 탕진, 이정재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유복한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 때도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등록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해 학교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벌을 서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알려진 것처럼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패션디자이너 하용수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 대뷔 초기의 여드름 얼굴의 이정재.
훤칠한 키에 잘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특유의 ‘살인 미소’까지 더해져 이정재는 금세 모델계의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연예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패션 디자이너 하용수의 든든한 후원도 한몫 했습니다만 1993년 무렵 출연한 롯데 초콜릿(크런키) CF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형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SBS TV의 하이틴 드라마 ‘공룡선생’(1993년)에 조연급으로 출연했다가 방송관계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KBS TV드라마 ‘느낌’(1994년)에는 주연으로 출연하게 됐습니다. 여기에다 1980년대의 한국 영화계를 주도했던 배창호 감독도 자신이 직접 제작과 감독을 겸한 영화 ‘젊은 남자’(1994년)에 이정재를 전격 발탁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요.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이 ‘젊은 남자’를 통해 탄탄한 근육질의 몸짱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제법 연기력도 갖춘 배우로 업그레이드 되는 전기를 맞았습니다.
‘젊은 남자’의 상승세는 이정재의 오늘날을 있게 한 SBS TV드라마 ‘모래시계“(1995년)와의 조우를 가져왔습니다.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헌신과 사랑을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으로 등장, 깊은 눈빛을 바탕으로 한 과묵한 표정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평균 시청율이 50%을 넘을 만큼 국민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모래시계”에서 이정재의 인기는 실제 주인공이었던 최민수 박상원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었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사랑, 그리고 그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바친다는 백재희의 캐릭터는 한동안 여성팬들의 이상형이 되다시피했습니다. 극중 백재희가 보여주던 검도무술에도 대중의 관심이 급증, 한때 전국의 검도훈련장에는 수련생들로 북적이는 진풍경이 빚어졌습니다.
1999년 20회 청룡영화제에서 '태양은 없다'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
이같은 반향은 이정재로 하여금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래시계’의 백재희와 유사한 캐릭터에 빠져 살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모래시계’ 이후 방위복무의 공백기를 제외하고 출연한 작품들에서 그에게 요구된 역할들이 대부분 카리스마를 발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불새’(1997년, 김영빈 감독)를 비롯해 ‘태양은 없다’(1998년, 김성수 감독), ‘정사’(1998년, 이재용 감독), ‘이재수의 난’(1999년, 박광수 감독), 그리고 SBS TV드라마 '백야 3.98‘(1998년) 등에서 이정재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느라 무진 애를 썼습니다. 실제로 ’태양은 없다‘와 ’정사‘ 같은 작품에서는 커다란 성취를 이뤘습니다. ’태양은 없다‘에서의 열연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카리스마’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분위기도 드러냈습니다. 영화 ‘불새’나 ‘이재수의 난’, TV드라마 ‘백야 3.98’ 등에서는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완연했습니다. 이정재의 배우인생 중 ‘슬럼프’라고 불리는 시절도 바로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정재 스스로도 뭔가 새로운(Something different) 작품과 캐릭터에 도전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그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던 거지요.
영화 `태풍`(2005년, 곽경택 감독)에 출연한 이정재와 장동건 스틸 컷.
‘지성이면 감천’이라고들 하지요. 이정재에게도 들어맞는 말이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이렇다할 성취를 이루지 못하던 그는 ‘모래시계’에 버금가는 영화와 만나게 됐습니다. ‘도둑들’(2012년, 최동훈 감독)이었습니다. 한국판 ‘오션 일레븐스‘로 불리면서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에서 이정재는 비열한 금고털이 뽀빠이역을 맡아 “이 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김윤석 전지현 김혜수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1천3백만명의 관객동원기록을 세웠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정재도 ’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됐지요.
탄력을 받은 걸까요. 이정재는 ‘도둑들’ 이후 무서운 상승세로 제2의 전성기‘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신세계‘(2013년, 박훈정 감독)에서는 암흑가조직원의 신분을 감추고 경찰에 잠입한 ’언더커버‘로 나와 탁월한 내면연기를 펼쳤습니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극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고조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폭력적인 수위도 만만찮은 이 영화에서 여성팬들은 ’언더커버’로서의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던 이정재에게 ’살인 미소‘라면서 환호를 보내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어진 ‘관상’(2013년, 한재림 감독)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는 송강호와 ‘맞짱’을 떴는데,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송강호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 분량임데도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훨씬 더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관상’의 주인공이 수양대군인가”는 논란이 일기도 했고, 어느 비평가는 “이정재의 수양대군은 역대 한국영화에서 나타난 수양대군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캐릭터”라고도 했습니다. 또 당시 인터넷에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아이돌그룹 엑소의 ‘으르렁’에 맞춰 편집한 동영상이 한동안 돌기도 했습니다.
영화 `도둑들`(2012년, 최동훈 감독)에 출연한 이정재의 스틸 컷(사진_퍼스트 룩)
‘도둑들’로 ‘천만 배우’의 이름을 얻은 이정재는 ‘암살’(2015년, 최동훈 감독)로 또한번 ‘천만 배우’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도둑들’에서처럼 전지현과 다시한번 연기 하모니를 빚어냈고, 성공했습니다. 변절하는 독립군 염석진 역을 맡았는데, 두 얼굴을 그려내기 위해 무려 15kg이나 감량한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미국영화 ‘성난 황소’(1980년, 마틴 스콜시즈 감독)에서 복서로 출연하면서 20kg이상의 몸무게를 줄였다가 불렸다가 했던 로버트 드 니로와 비교하는 등으로 한동안 매스컴에 오르내렸지요.
특히 촬영 기간 중에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는 동료배우 하정우의 시샘어린 증언이 있었을 정도로 이정재는 촬영기간 내내 절제된 생활을 견지했습니다. 슬럼프를 겪어본, 인내와 절제가 배우의 덕목임을 체득한 그의 연기에 대한 집념이 엿보이는 대목이지요. .
이정재는 정우성과 ‘아티스트 컴퍼니’라는 매니지먼트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습니다. 사업 파트너인 거지요. 그에 앞서 두 사람은 이미 연예가에 소문난 절친관계입니다. 73년생 동갑으로 영화 ‘태양은 없다’를 같이 찍으면서 배짱이 맞아 친구가 됐으니까 제법 오래된 우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두 사람은 아직껏 서로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재씨, 우성씨라고 서로를 부릅니다.
그런데 웬지 모르게 이정재가 정우성에 비해 좀더 젊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아마도 여전히 소년의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13년 스포츠코리아 이정재 인터뷰.
2013년 영화 `관상`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팬들에게 사인하는 이정재.
2014년 `제 50회 LF백상예술대상`에 팔 부상으로 깁스한 모습으로 참석하는 이정재.
2014년 `제35회 청룡영화상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석한 이정재.
2015년 영화 `암살`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이정재.
2015년 영화 `암살`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이정재.
2015년 청룡영화상에 참석하는 이정재.
2016년 스포츠코리아 이정재 인터뷰.
2017년 영화 `신과 함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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