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저물어가던 12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거리의 게시판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영화포스터가 붙었습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김성호감독)이라는 영화였습니다.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 중에서 친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최민수.
그동안 TV드라마에서는 ‘무사 백동수’(2011년) ‘신의’(2012년 이상 SBS)를 비롯해 ‘해피엔딩’(2012년, jtbc), ‘칼과 꽃’(2013년, KBS), ‘오만과 편견’(2014년, MBC) 등을 통해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왔지만 영화포스터에서 그의 이름을 만나게 된 건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대중에게 기억되는 최민수의 마지막 영화는 ‘홀리데이’(2006년, 양윤호 감독)였을 겁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를 남겼던 탈주범 지강헌 일당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최민수는 인질을 사로잡고 있던 이강헌 일당을 검거하려는 경찰로 나왔는데, 공감을 전혀 주지 못하는 악질 형사의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혹평을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매스컴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매우 혹독했습니다. 얼마나 악평에 시달렸으면 이 영화의 양윤호 감독이나 최민수, 그리고 지강헌 역을 맡았던 이성재 등의 배우들이 한동안 영화현장으로 돌아오질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8년 만에 최민수의 이름이 영화포스터에 씌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화제목 만큼이나 그 영화의 분위기 또한 웬지 최민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빠와 집을 되찾기 위해 개를 훔치려는 열 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도둑질을 그린, 미국의 여류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가족용 코미디 영화로 만든 작품이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최민수는 미스테리 캐릭터인 노숙자 역을 맡아 주인공인 어린이들과 연기호흡을 맞췄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아무런 이유없이 가슴에 뭔가 꽂히는 게 있었다”고 밝힌 최민수는 영화 속 노숙자 캐릭터에 어울리는 빈티지 의상들을 직접 준비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촬영이 모두 끝난 뒤의 영화 시사회에서 그는 “노숙자를 연기했다기 보다 석달간 노숙자로 행복하게 살았다. 실제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여기에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잘 몰랐던 최민수도 있을 거다”라면서 노숙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8년여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최민수의 모습에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터프가이’의 이미지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파격변신이라는 말이 어울렸습니다. 대중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이미지였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대중의 기대를 배반한 변신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겨울 꿈은 날지 않는다' (1991년)의 최민수.
그렇습니다. 최민수는 터프가이의 이미지로 대변되어온 배우였습니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스토리까지 순탄한 과정이라고는 별로 없었기에, 그에게 반항아적인 기질이라든지 터프가이의 이미지가 덧씌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부친은 한국영화계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故 최무룡, 어머니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 故 강효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돌 되기도 전에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와 스캔들에 휩싸인 아버지와 또 그 일을 계기로 이혼한 어머니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손에 의해 자라야 했습니다. 그런데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할머니집에 들르는 경우라고는 설날 등 1년에 한 두 차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그는 무척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배우를 부모로 두었으나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집안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나 보낼 수 있다는 사립초등학교인 리라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늘 조용한 아이로 지냈습니다. 아마 그가 리라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리라 졸업생들도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동북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의 본색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학우들과의 이런저런 시비도 제법 겪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학우들 사이에서는 공부보다는 ‘노래 잘하는 최민수‘로 각인되었습니다.
영화 '테러리스트'(1995년)의 최민수 스틸 컷
최민수가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한 것은 어쩌면 운명같은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배우였던 부모의 DNA 영향도 있겠지만 최민수 스스로가 타고난 ‘광대’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연극 ‘방황하는 날들’(1985년)의 무대에 처음 배우로 선 뒤, 곧바로 박봉성의 인기만화를 영화화하는 ‘신의 아들’(1986년, 지영호 감독)에 주인공 최강타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최민수는 데뷔작인 ‘신의 아들’의 제작발표회장(1986년 여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연회장)에 가장 늦게 나타나 영화관계자들의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다. 제작발표회 시간에 늦은 건 아니었는데, 제작발표회장 안으로 들어서질 못하고 연회장 밖에서 배회하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그렇게 요란하게 영화 데뷔하는 게 쑥스러웠다”고 했습니다만 그 후의 행보를 보면 그 얘기가 믿겨지질 않습니다.
‘신의 아들’ 이후 그는 KBS TV드라마 ‘꼬치미’(1987SUS)에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연이어 여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로서의 필모그라피를 차곡차곡 쌓아나갔습니다.
1998-99년 최민수 인터뷰(스포츠코리아 사진DB)
그에게 ‘카리스마’가 넘친다느니, ‘터프가이’의 이미지가 강하다느니 하는 수식어들은 어느날 갑자기 붙은 게 아닙니다.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하나둘씩 쌓여온 이미지를 통해서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에게 맡겨진 캐릭터들이 한결같이 반항아적인 기질과 거친 인생을 표현해야 하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중에서도 ‘터프가이‘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작품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테러리스트‘(1995년, 김영빈 감독)와 ’유령‘(1999년, 민병천 감독)이고, TV드라마에서는 ’모래시계‘(1995년, SBS)와 ’백야 3.98‘(1998년, SBS)입니다.
영화 ’테러리스트‘는 이현세의 인기만화 ’카론의 새벽‘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여기에서 최민수는 폭력조직을 응징하는 ’정의의 테러리스트‘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또 ’유령‘에서는 강대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한국정부에 불만을 품은 핵잠수함의 부함장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의지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최민수 일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TV드라마 ‘모래시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때 ‘귀가시계‘라고까지 불리며 평균 시청율 46%(최고 시청율 64.5%)을 기록하면서 온 나라와 국민들을 흥분시킨 이 드라마에서 최민수는 조직폭력배 태수라는 인물을 강렬하게 그려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태수의 명장면 중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라는 대사나 마지막 장면에서 “나 지금 떨고 있니?”등의 대사는 한때 장안의 유행어가 됐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 1순위로 조폭을 꼽았겠습니까.
2006년 KBS '해피선데이'의 MC 최민수.
어느듯 최민수도 5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캐나다 교포인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 그의 모습에서는 이제 ‘터프가이’의 이미지 보다는 듬직한 가장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가끔씩 PD 폭행사건이라든지 노인 폭행사건 등의 스캔들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던 때에 보여지던 거친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성숙미가 한겹두겹 그를 둘러쌓아가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에피소드는, 2014년 연말의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면서 연기상 수상을 거부했던 일입니다. 당시 MBC가 세월호 사건의 보도조작 및 은폐 의혹을 받고 있었음을 지적한 거지요. 이제는 ‘개념 배우‘의 면모도 보여주는 최민수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06년 KBS '콘서트 7080'에서 가수 데뷔 무대를 가진 최민수.
영화 '조폭마누라3'(2006년)의 최민수.
2006년 디자이너 하용수 패션쇼의 메인 모델로 나선 최민수.
2008년 SBS '김정은의 뮤직쇼'에 출연한 최민수.
2009년 '노래는 불러야 노래' 콘서트에 출연한 최민수.
2013년 '최민수의 첫번째 토크콘서트'에서 열창하는 최민수.
2013년 KBS '칼과 꽃' 제작발표회에서 윙크하는 최민수.
2017년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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