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배우극장] `한국 최고의 각선미 여배우` 이보희

기사입력 [2018-05-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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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출신의 여배우 마리네 디트리히(1901~1992)는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각선미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1930~40년대 당시의 화폐가치로 200만 달러에 달하는 다리보험을 들었던 탓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리로 불리기도 했지요. 실제로 마리네 디트리히는 출연하는 영화들마다 늘씬한 각선미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각선미에 관한 한 그녀를 능가하는 여배우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마리네 디트리히는 각선미 뿐만 아니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여배우로도 영화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일 출신인 그녀는 1932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모로코’(폰 슈테른베르크 감독)를 비롯해 많은 영화들을 찍으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떠올랐는데,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나치를 반대하면서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는 아예 영화를 그만 두고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연합군의 전선을 돌다아니며 병사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 그녀가 불러 유명해진 노래가 릴리 마를렌’(Lili Marlen)이었습니다. 고향에 애인을 둔 채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슬픔을 그린 노래였는데, 이 노래는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에게 애창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녀의 나이 일흔일곱 살에 데이빗 보위와 함께 찍은 영화 저스트 어 지골로’(Just A Gigolo)에서 다시한번 세기의 각선미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비쳐진 그녀의 모습은 마치 40~50대의 농익은 여인 같았습니다. 거기에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200만불짜리 각선미가 옆트인 검은색 롱드레스 사이로 보였지요. 세기의 각선미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마리네 디트리히의 각선미에 견줄 만한 여배우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이보희입니다. 1959년생 돼지띠인 그녀는 한국나이로 육십에 들어섰습니다만 그녀 역시 지금도 마리네 디트리히 못잖은 각선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영화보다는 주로 TV드라마를 통해서, 또 어머니 등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터라 그녀의 아름다운 각선미를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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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이보희 인터뷰(스포츠코리아 사진 DB).

 

하지만 1980년대 암울한 한국 사회에서 보석처럼 빛난 영화 바보선언’(1983, 이장호 감독)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여주인공 이보희는 단박에 한국의 마리네 디트리히로 불렸습니다. 영화의 첫 등장이 실크 미니원피스 차림으로 육교를 나풀나풀 걸어 내려오는 장면이었는데, 바로 이때부터 이보희의 각선미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보희의 역할은 가짜 여대생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매춘으로 살아가는 창녀였는데, 거리의 부랑아인 동철(김명곤)과 자동차 정비공 육덕(이희성)이 여대생인 줄 알고 그녀를 납치했던 거지요. 그러나 금세 그녀가 창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이보희는 창녀촌에서 시골처녀를 탈출시키려던 동철과 육덕을 따라 나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각선미 뿐 아니라 청순미까지 한껏 드러낸 것이지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는데, 곱게 화장된 주검의 모습에서도 이보희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동철과 육덕이 그녀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들판을 가로질러가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겨주었지요.

이보희의 등장은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져 주었습니다. 이장호 감독은 망가지는 영화를 만들고 영화판을 떠나려고 했는데, 찍다보니까 당시 상황을 조롱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바보선언의 연출배경을 밝혔습니다만 결국 바보선언80년대 한국영화계의 보석같은 영화로 남게 되었고, 여주인공 이보희는 한국영화의 뉴 히로인으로 떠올랐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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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명사초청골프대회서 드라이브샷을 하고 있는 이보희.
 

이보희의 시대가 바야흐로 열리게 됐는데요, 특히 한국의 마리네 디트리히라는 닉네임에 걸맞는 영화 한 편으로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이장호 감독)였습니다.

영화의 포스터도 자극적이었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이보희가 소파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묘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었는데, 양 무릎 사이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모은 포즈가 상당히 뇌쇄적이었습니다. 그 사진 위에 씌어진 카피에서도 도발적 뉘앙스가 물씬 풍겼습니다. “향기가 나요! 당신의 영토, 나의 육감의 영역, 나는 당신을 침범할 수 있어요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이보희는 어린 시절의 성추행 기억과 상처의 후유증으로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파행적인 성관계에 빠져드는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각선미가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될 때마다 그녀는 에로틱 연기를 농염하게 펼쳐냈습니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임성민과 빗 속에서 펼치는 정사씬은 이보희의 에로틱 연기 중 결정판이라고 할 만큼 농염했습니다. 물론 노련한 이장호 감독의 연출에 바탕한 것이지만, 비에 흠뻑 젖은 원피스를 거의 벗어던지다시피 한 상태에서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보희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쾌감에 몸을 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쾌감을 거부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희비의 교차가 극명하게 표현된 겁니다


이런 장면이 버젓이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군사독재정부가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떼놓으려는 방법으로 내걸었던 ‘3S (Screen, Sports, Sex) 정책때문이었습니다. 영화상영의 규제 검열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에로틱 장면의 표현 수위가 대폭 낮아진 겁니다. 이 무렵이 한국영화계에 이른바 비디오용 에로영화가 범람하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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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복 패션쇼에 모델로 참가한 이보희.

 

말하자면 이보희의 이같은 에로틱 연기는 시대의 아픔에서 비롯된 아이러니였던 셈입니다. 이보희의 독보적인 에로틱 이미지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보희의 필모그라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 어우동’(1985, 이장호 감독)에서였습니다. 조선시대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사회제도의 모순과 권력의 부조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만 워낙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많아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지요.

 

특히 퇴폐적인 임금 성종과 계곡에서 주연을 갖던 중, 자신의 가슴에 술을 부어 왕으로 하여금 무릎꿇고 마시게 하는 장면은 외설 논란과 함께 당시의 공연윤리위원장이 교체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보희는 이렇게 연속적으로 무릎과 무륲 사이’(27만명 관객 동원)어우동’(48만명 관객 동원)의 기록적인 흥행 성공으로 충무로 영화계의 귀하신 몸으로 등극했습니다. 한국영화 여배우 계보에 ’80년대의 트로이카로 이미숙 원미경과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된 것 또한 이러한 활약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지요. 


한편 영화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이장호 감독의 페르소나‘(희랍어로는 가면을 뜻하지만 영화에서는 영화감독의 분신, 또는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소문이 부담스러웠을까요? 이후 이보희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 출연하고 난 뒤에는 종종 다른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달빛 사냥꾼’(1987, 신승수 감독)을 비롯해 접시꽃 당신’(1988, 박철수 감독), ‘깜동’(1988, 유영진 감독),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장길수 감독) 등이 그 영화들이었지요.

 

그리고 아메리카 아메리카의 미국 로케이션 촬영 중에 만난 미국 교포사업가와의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아예 연기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몇 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뒤에는, 다시 영화 장미의 나날’(1994, 곽지균 감독)을 시작으로 연기활동을 재개했지요.

 

하지만 장미의 나날이후부터는 거의 TV 드라마에만 출연하고 있습니다. ‘여인천하’(2001, SBS), ‘달려라 울엄마’(2003, KBS), ‘넌 어느 별에서 왔니’(2006, MBC) 등 공중파 방송사를 두루 옮겨다니면서 활발하게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배우로서의 몸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 그녀가 과연 언제쯤이나 마리네 디트리히처럼 멋진 각선미를 다시한번 드러낼 수 있을런지요?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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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식객:김치전쟁'(2010년, 백동훈 감독)의 시사회에 참석한 이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