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서 하정우를 찾아보면 “본명 김성훈, 1978년 3월 11일생, 대한민국의 배우,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이다”라고 나옵니다. 많은 이들에게 ‘한국의 대표적인 주연배우’로 알려진 그는 이처럼 연기 이외의 분야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영화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바로 ‘화가’로서의 하정우입니다. 지난 7월 11일부터 이달(8월) 말까지 서울 신문로의 표갤러리에서는 그의 열두번째 개인전 ‘VACATION'이 열리고 있습니다. 2010년 ’열정의 지평선‘이라는 주제로 처음 개인전을 열기 시작한 이래 북미, 유럽 등지에서의 초대전을 포함해 벌써 열두번째 전시회를 갖고 있는 겁니다.
전시회의 제목 ‘휴가’(VACATION)처럼 지난 겨울의 대박(1,400만명 관객)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과 관련되어 숨가쁘게 펼쳐진 스케줄을 모두 마치고 난 뒤, 하와이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흥을 캔버스로 옮겨낸 작품들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하정우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그림 작업이 작은 성장을 체험케 하는 행복이자 내 삶의 일부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 중에서는 취미 이상의 그림 솜씨를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 하정우처럼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겁니다. 흔히 연예인의 그림 솜씨, 혹은 전시회 등의 뉴스로 대중의 시선을 모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이 또한 대개는 약간의 과장과 미화를 동반하지요. 대중 역시 바쁜 연예활동 중에 틈을 내서 그런 예술적 성취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흔쾌히 박수를 보냅니다.
2008년 '제4회 대한민국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 '자연의 손길'을 기증하여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정우의 경우는, 화가로서의 그의 재능은 어느 정도일까요? 일찌감치 한국화단의 원로 김흥수 화백은 하정우의 그림에 대해 크게 칭찬한 바 있습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김 화백이 “누가 그린 그림인지 몰라도 주목할 만한 솜씨”라고 호평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 실제로 여러 미술평론가들도 하정우의 그림 솜씨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중 어느 평론가는 “화가가 될 사람이 배우가 되어 실망스럽다”고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그의 그림은 매 전시회마다 70~80% 정도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2013년 미국 뉴욕의 전시회에서는 전시작품 ‘완판’을 기록해서 현지 미술계에서도 커다란 화제가 되었지요.
하정우는 미술대학이나 학원 등에서 전문적으로 수학하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습니다. ‘화가가 될 사람’이라는 평가가 결코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지요. 평소 하정우는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뉴욕의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야의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놓곤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인물화는 바스키야의 인물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하정우의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 윤종빈 감독)로 남자 신인상을 수상한 하정우.
비단 ‘화가 하정우’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그의 출연 영화들을 통해서 하정우의 존재와 가치를 느껴온 대중으로서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작가, 영화제작자로서 부지런하게 삶을 펼쳐가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현재 그의 소속은 ‘아티스트 컴퍼니’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아티스트 컴퍼니’는 정우성과 이정재가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연예매니지먼트 기획사입니다. 여기에 하정우의 영화제작사 ‘퍼펙트 스톰’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 최고의 배우 삼총사가 한 식구로 뭉친 겁니다. 정우성이 매니지먼트 담당, 이정재가 사업 담당, 하정우가 영화 담당을 각각 맡기로 했답니다.
그동안 영화제작자로서 만들어온 ‘롤러코스터’(2013년, 하정우 감독)와 ‘싱글라이더’(2017년, 이주영 감독) 등의 영화들이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앞으로 ‘아티스트 컴퍼니’의 이름으로 제작에 나서게 된다면 엄청난 ‘캐스팅 파워’를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아티스트 컴퍼니’에는 이들 삼총사 외에도 고아라 고아성 배성우 김의성 박소담 이솜 염정아 이엘 신정근 등의 배우들이 소속돼 있습니다. 아티스트 컴퍼니의 소속 배우들로만 캐스팅을 꾸려도 얼마든지 남부럽지 않게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하정우의 스탠스는 한결 같습니다.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시절에 영화 ‘마들렌’(2003년, 박광춘 감독)에 출연한 게 그의 데뷔입니다. 단역 출연이었던 ‘마들렌’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고, 얼마 전의 ‘신과 함께2 - 인과 연’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 편의 ‘천만 영화’ 출연을 기록할 정도로 바야흐로 ‘하정우의 전성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서는 데뷔 시절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천만 영화’가 마치 배우들의 흥행 보증수표처럼 인식되는 현실에서 세 편의 천만 영화 기록을 지닌 배우는 송강호와 더불어 하정우, 둘 뿐입니다. 그런데 하정우에게서는 인기스타의 멋진 폼이나 대배우의 위용 같은 분위기를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언제나 그는 편안한 남자배우입니다. 실질적인 주연급 데뷔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 윤종빈 감독)의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부문 진출 당시, 칸 현지에서의 기자회견 때의 모습이나 연일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워가는 ‘신과 함께2- 인과 연’의 무대인사 때의 모습이나 한결 같습니다.
영화 '두번째 사랑'(2007년, 김진아 감독) 포스터(사진 위)와 불법체류자 지하 역으로 출연한 하정우(아래)
‘겸양의 자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타고난 그의 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 같지만 진지하고, 선 굵은 카리스마를 풍기는가 싶은데 어느 틈에 장난기 가득한 유머의 귀여운 사내로 변신합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가려 하면 범접하기 어려운 경계심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이내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특유의 환한 웃음을 던집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모습의 신비함이 그의 ‘아우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자상합니다. 촬영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로부터 전해지는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이미 영화계에 정평이 나 있습니다. 물론 촬영현장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동료들이니까요.
하지만 극장의 시사회장이나 영화제 행사 등에서 만나는 팬들과의 만남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인내와 ‘배려심’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그는 최대한 팬들과의 교류를 즐기려고 합니다. 의무감을 넘어선 겁니다.
어쩌다가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일반인들과도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혹시 지나치다 싶은 취객의 농담까지도 웃어넘기는 ‘대인배’의 풍모에서 그의 ‘아우라’가 진득하게 빛을 발합니다.
2008년 '춘사 영화예술상' 홍보대사로 위촉된 하정우와 엄지원.
영화를 통해 보여준 그의 모습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연거푸 흥행대박 영화로 남게 될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는 ‘강림차사’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냈습니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였으나 그의 연기로 해석된 강림차사는 영화팬의 사랑을 한껏 받았습니다.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추격자’(2008년, 나홍진 감독)입니다.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캐릭터를 섬뜩하게 표현해냈지요. 이 영화로 인해 하정우의 오늘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팬들 뿐 아니라 영화관계자들로부터도 비상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요.
살인마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난 다음에는 영화 ‘멋진 하루’(2008년, 이윤기 감독)에서 여자친구에게 빌린 돈 350만원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찌질한 남자친구’로 변신했습니다. 그런데 참 잘 어울렸습니다.
그 다음엔 미국입양아 출신의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 ‘밥’(국가대표, 2009년)으로 나와 영화팬들의 폭풍 눈물을 자아냈고, 아내를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 사내(김구남) 역(2010년, 황해)을 맡아 진짜 조선족인 줄 착각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하정우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습니다. 제목만 들어도 화려합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쟁시대’(2012년, 윤종빈 감독) ‘베를린’(2013년, 류승완 감독) ‘’더 테러 라이브‘(2013년, 김병우 감독) ’군도 -민란의 시대‘(2014년, 윤종빈 감독) ’암살‘(2015년, 최동훈 감독) ’아가씨‘(2016년, 박찬욱 감독) ’터널‘(2016년, 김성훈 감독) 등 어느 작품 하나 대중의 사랑을 받지 않은 영화가 없습니다.
2008년 '춘사 영화예술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하정우.
전세계 모든 영화배우의 꿈인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도 그는 벌써 다섯 번이나 섰습니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감독)가 주목할 만한 부문에 초청된 된 이후, ‘숨’(2006년, 김기덕 감독)의 경쟁부문 진출, ‘추격자’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황해’의 주목할 만한 부문 초청, 그리고 ‘아가씨’의 경쟁부문 진출 등이 그것입니다.
단지 그는 아직 연출작으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롤러코스터’와 ‘허삼관’ 두 작품 모두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했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자기의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는 연출가로서의 실패를 통해 “보다 더 지독하게 영화에 접근하게 됐다”며 그 실패를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여깁니다. “좋은 영화인이 되는 것”이 소망이라는 그의 얘기처럼, 하정우의 진화는 그래서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11년 스포츠코리아 하정우 인터뷰.
첫번째 연출 영화 '롤러코스터'(2013년)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하정우 감독.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2014년, 감독 윤종빈)'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하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