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남자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있지요.
개인의 신체조건이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면제 판정’의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병역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별 특성을 감안하여 현역병으로 복무하기도 하고, 의무경찰,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사 등 보충역으로써 병역의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대체복무라는 이름의 병역특례제도가 있었습니다.
신체검사를 통해 3등급 판정(방위병)을 받은 경우, 또는 전투경찰(지금의 의무경찰)을 지원해서 복무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1969년 1월, 김신조 등의 청와대 피습사건(1.21 사태)과 베트남전 참전 확대 등으로 인해 생겨난 제도였지요. 현역병 전역 후, 이른바 ‘예비군’과 ‘민방위대’라는 이름의 병역제도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이들 중 방위병은 군 면제자를 일컫는 ‘신의 아들’과 더불어 ‘장군의 아들’이라는 우스개 비유를 들을 만큼 ‘편안한 복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대개 방위병은 지역의 향토사단이나 경찰관서, 군구청, 혹은 읍면동사무소 등에 배치되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근무했으니까요.
이 시절, 어느 동네에서든 어설픈 군복차림의 청년이 군입대명령서나 예비군 훈련통지서, 또는 주민 전출입신고서 등을 들고 돌아다니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더러는 동네 청년들과 어울려 골목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지요. 당시 방위병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대개 이런 기억들입니다.
이 제도는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을 계기로, 보다 정확하게는 객관적인 지표 상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능가한 것으로 평가된 그해 12월 31일자로 폐지되었습니다. 더 이상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된 거지요.
영화 ‘마지막 방위’(1997년, 김태규 감독)는 이같은 방위병 제도가 사라지고 난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방위병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였지요. 그리고 방위병의 어설픈 이미지를 생각할 때, 코미디영화일 거라는 짐작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방위'의 주인공에는 당시 가수와 배우로 인기를 누리던 김민종을 비롯해 허준호, 이형철, 박광정, 권용운 등이 캐스팅되었다.
실제로 방위병이 사라진 뒤 2~3년쯤밖에 안된 시점이라 대중에게 ‘방위’라는 호칭은 여전히 친숙(?)한 이름이었지요. 그리고 더욱 친근감을 안겨준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방위병들의 화려한 캐스팅 때문이었습니다.
김민종을 비롯해 허준호 이형철 박광정 등 다섯명의 방위병들과 독고영재 명계남 등의 조연에 이르기까지 ‘호화 캐스팅’이란 소릴 들을만 했습니다. 여기에다 ‘마지막 방위’의 촬영 대부분이 필리핀 해외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스케일 또한 만만찮은 영화로 인식됐지요.
당시 김민종은 KBS TV드라마 ‘머나먼 나라’를 통해 보여준 김희선과의 ‘연기 케미’로 호평을 받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더 블루’ ‘귀천도애’ 등의 히트앨범을 통해 가수로서도 최고의 줏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름하여 만능엔터테이너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을 때였지요.
허준호와 독고영재도 영화 ‘테러리스트’(1995년, 김영빈 감독)과 MBC TV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의 열연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면서 정상급 배우로 올라선 상태였습니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집안의 배경을 앞세워 6개월짜리 날라리 방위로 입대한 유행철역의 김민종(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보이는 방위).
그런가하면 ‘마지막 방위’의 기획과 제작자로 나선 김현택 대표는 ‘남부군’(1990년, 정지영 감독) ‘결혼이야기’(1992년, 김의석 감독) 등 90년대 굵직한 한국영화들의 제작현장을 거쳐오면서 프로듀서로서의 내공을 쌓아온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김민종과 이경영의 매니지먼트까지 책임지면서 ‘귀천도’(1996년, 이경영 감독)를 제작하면서 제작자 입문에도 성공했지요.
그뿐 아닙니다. ‘마지막 방위’의 시나리오는 박정우 작가가 썼습니다. 박정우 작가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년, 장길수 감독)을 시작으로 훗날 ‘주유소 습격사건’(1999년) ‘신라의 달밤’(2001년) ‘광복절 특사’(2002년) 등 김상진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며, 마침내 지금은 본인이 직접 ‘연가시’(2012년) ‘판도라‘(2016년)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역량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방위’의 외형적 조건은 이렇듯 화려했습니다. 필리핀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게 된 것은 영화의 내용이 필리핀에서 납치된 한국인 근로자 20여명을 구출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방위’의 영화적 재미를 끌어내려는 장치도 여기에 있었지요. 필리핀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근로자들을 구출하는 작전에 특수부대원이 아닌,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방위병’들이 투입된다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997년 당시 출반한 '귀천도애'와 '더 블루' 등의 앨범이 히트하면서 가수로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김민종.
방위병으로 복무 중인 삼촌(박광정)을 휴가보내려고 한 청소년 해커가 국방부 사이트에 접속, ‘특별휴가’란 항목을 보고 삼촌과 몇몇 방위병들의 군번을 입력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이 ‘특별휴가’는 필리핀 인질 구출작전의 암호명이었던 겁니다.
이바람에 동사무소에서 예비군 훈련통지서나 돌리던 방위병들이 특수부대원으로 오인되어 졸지에 필리핀 오지에 파견되는 처지에 놓입니다.
부잣집 외아들로 집안의 배경을 앞세워 6개월 방위로 입대한 망나니 오렌지족(김민종), 겁 많고 소극적인 성격의 평범한 동사무소 방위(허준호), 해병대라도 갔을 것 같은 전투방위(이형철), 공처가로 살아가는 무능력의 대명사(박광정), 폭력조직의 보스를 꿈꾸지만 뒷골목의 3류건달(권용운) 등이 낙하산으로 투하되어 납치된 인질들을 구출하라는 특수부대원의 임무를 떠안게 된 겁니다.
더군다나 세 명은 필리핀 정글에 떨어지고, 두 명은 해변의 원주민 마을에 떨어져 나무창살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요. 이렇게 흩어져서 생고생을 하는 게 영화의 전반부 내용이고, 우여곡절 끝에 다섯 명이 다시 한데 모여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질들 구출하러 가자”며 액션활극을 펼치는 게 후반부의 내용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전투경험은 커녕 훈련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오합지졸 방위병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과정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액션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엉성해보이는 방위병들이 쏟아지는 총알과 포연 속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인질들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는 엔딩에 이르러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습니다..
졸지에 특수부대원으로 오인되어 필리핀 오지에 떨어져 악전고투를 벌이게 된 방위병들. 원주민들 앞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는 박광정과 김민종(사진 위).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권용운, 이형철, 허준호(사진 아래, 왼쪽부터).
극장에서 영화 ‘마지막 방위’를 관람한 관객들의 감상평도 “재미있다”는 쪽이 많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배우들의 코믹 에피소드들은 심심찮게 웃음을 터뜨리게 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정글에서의 악전고투 장면이나 박진감 넘치는 전투액션 장면 등의 카메라 워크도 박수를 받을만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1997년 여름방학시즌, 서울 을지로의 명보극장에서 개봉됐는데, 기대와는 달리 관객이 뜸했던 겁니다. 주연배우들의 면면도 괜찮았고, 영화의 내용 역시 코미디 액션을 무리없이 풀어냈고, 마케팅전략도 그리 잘못되지 않았음에도 관객의 발길이 극장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여기에는 다분히 ‘대진표’의 불운이 작용했습니다. 1997년 극장가의 여름시즌은 그야말로 ‘핫’했습니다. 1백만 명이 넘는 관객동원으로 1997년 흥행랭킹 1위를 기록한 할리우드 영화 ‘주라기 공원2’을 비롯해 ‘콘 에어’(97만 명), ‘제 5원소’(85만 명), ‘페이스오프’(72만 명), ‘맨 인 블랙’(67만 명) 등 흥행 톱 10의 영화들이 모두 이때 개봉됐습니다.
당구장에서 시간 죽이는 무위도식 방위병 박광정. 당구장에서의 촬영장면, 사진 가운데 안경쓴 사람이 김태규 감독.
여기에다가 한국영화들도 코미디 영화로 분류된 ‘넘버 3’와 ‘할렐루야’까지 이 여름 시즌에 극장 간판을 내걸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넘버 3’와 ‘할렐루야’는 둘 다 30만 명 내외의 관객동원을 기록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거뜬히 흥행성공의 과실을 따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방위’의 중과부적이 되고 만 셈이었습니다.
‘마지막 방위’의 관객동원 기록은 3만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가 ‘마지막 방위’의 마지막 장면, 헬리콥터로 귀환하는 도중 주인공 일행 다섯 명이 강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스턴트 연기자 2명이 숨지는 사고까지 있었던 터라 안타까움이 훨씬 컸습니다.
그런가하면 필리핀 현지 촬영 도중 제작비가 부족해 스태프들의 숙박비와 촬영장비 임대료 등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해 김태규 감독과 프로듀서가 한동안 ‘볼모’로 잡혀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지요.
이를 두고 영화계 일각에서는 영화 제목 때문이라는 풍문도 돌았습니다. ‘마지막’이 라는 말이 좋지 않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마지막 방위’가 고임표 편집감독한테는 여의도 방송가에서 드라마 편집일을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영화편집에 입문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임표 편집감독은 그후 100여편의 영화편집을 해왔으며, 대종상(2000년)과 춘사영화대상(2010년)에서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까요. (이창세 영화기획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