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지게 던진다. 예쁘다 던진다. 공을 때릴 줄 안다.’
‘아기 사자’ 양창섭에 대한 평가다. 겨우 2게임에 등판했지만 칭찬이 자자하다. 투구 밸런스가 안정적이다. 교과서적인 투구 동작을 갖췄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
이제 열아홉이다. 얼굴엔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다. 그러나 마운드에 서면 사뭇 다르다. 덕수고를 졸업하고 갓 프로에 들어온 새내기로서 일찌감치 ‘될 성 부른 떡잎’이란 대우받고 있다.
양창섭이 세 번째 등판을 앞두고 있다. 선발 로테이션에 따라 11일 대구 두산전에 나선다. 상대 선발은 베테랑 유희관이다. 어떤 투구 내용을 보일지 관심 집중이다.
▶ 삼성의 고졸 새내기 양창섭(오른쪽)이 3월28일 광주 KIA전에서 자신감 넘치는 피칭으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자 베테랑 포수 강민호가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 2018년 3월28일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 - 데뷔전 선발승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영원한 기억하고픈 그라운드다.
삼성 김한수 감독은 디펜딩 챔피언 KIA와의 경기를 고졸 새내기 양창섭의 데뷔전으로 결정한다.
오후 6시29분, 정종수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한다. KIA 선발 이민우가 삼성 톱타자 박해민에게 첫 공을 던진다. 양창섭은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삼성 타선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막내’ 양창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첫 득점을 뽑았다. 1회초 1번 박해민이 중전안타와 도루 등으로 만든 1사 3루에서 3번 구자욱이 우전 적시타를 날려 선취점을 올렸다.
양창섭은 1-0으로 앞선 1회말 투구를 시작한다. 첫 상대는 1번 이명기. 살짝 긴장한 탓일까. 초구 볼, 2구 스트라이크, 3구는 파울.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볼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 타자인 2번 버나디나에겐 풀카운트 승부 끝에 6구째 2루 땅볼을 유도했고, 3번 안치홍은 초구에 중견수 플라이로 잡았다. 첫 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낸다. 삼성 타선은 2회초 다시 1점을 추가했다. 지원이 든든하다. 좋은 징조다.
양창섭은 자신감을 얻었다. 포수 강민호의 사인에 따라 씩씩하게 던진다. 공 끝이 살아 있다. 제구도 흔들리지 않는다.
2-0으로 앞선 6회초 1사 후 5번 강민호가 우월 1점 아치를 그려 양창섭의 데뷔 첫 승을 예고했다.
결국 양창섭은 6회 말까지 마운드를 지키면서 총 90개의 공을 던진다. 안타 4개, 볼넷과 몸에 맞는 공 각각 1개를 내주지만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삼진 2개를 곁들였다. 만족스런 피칭이었다.
삼성은 이날 강민호의 홈런 등 장단 14안타를 몰아치면서 6점을 뽑았다. 선발 양창섭에 이어 7회부터 등판한 최충연, 한기주(8회), 심창민(9회)도 차례차례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고 승부를 마무리한다. 삼성은 6-0으로 완승.
선발 투수 양창섭은 프로 통산 26번째 데뷔전 선발승이자 역대 6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을 기록했다.
▶ 삼성 고졸 신인 양창섭이 3월28일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전에 선발로 나가 역투하고 있다. 4선발로 자리매김한 양창섭은 이날 선발승을 올려 역대 고졸 신인 6번째 데뷔전 선발승을 기록했다.
그날 이후, 양창섭에게 축하와 격려가 쏟아진다.
삼성 김한수 삼성 감독 = 데뷔전에서 볼 끝이 좋았다. 제구력도 갖춰 유리한 볼카운트를 이끌었다. 투구 폼 자체가 무리 없이 깔끔하다. 정말 잘 던졌다.
삼성 윤성환 = 양창섭은 공의 회전이 굉장히 좋다. 데뷔전에선 오히려 스프링캠프 때보다 회전이 조금 떨어져 보였다. 고졸 신인이 선발로서 첫 경기에서 그런 피칭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 2018년 4월 4일 창원 마산구장 - 첫 홈런을 맞고 패하다
첫 홈런을 맞았다. 졌다. 언젠가 당한 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데뷔전 선발승의 기운을 엎고 마산구장에서 NC를 만난다. 오늘 상대는 이재학이다. 평소 ‘오늘은 어제의 경기를 잊으라’는 오치아이 투수 코치의 말대로 지난 시간을 훌훌 털어내고 마운드에 오른다. 원래 긴장을 잘 하지 않는 타입이라 무덤덤하게 공을 던진다.
출발이 괜찮다. 1번 박민우와 2번 김성욱을 연속 2루 땅볼로 처리하고, 3번 나성범까지 좌익수 플라이로 잡는다.
2회와 3회엔 조금 흔들린다. 2회말 1사 후 5번 모창민에게 볼넷을 내준데 이어 6번 박석민에게 중전안타를 맞아 1, 2루의 위기를 맞는다. 7번 권희동은 2루 직선타구 아웃, 이 때 2루주자 모창민이 주루사하는 바람에 고비를 넘긴다. 3회말 1사 후에도 9번 정범모에게 좌전안타를 내준 뒤 계속된 2사 2루에서 2번 김성욱에게 볼넷을 허용해 2사 1, 2루였지만 3번 나성범을 중견수 플라이로 돌려 세우면서 이닝을 마감한다. 투구수가 점점 늘었지만 4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간다.
▶ 삼성 투수 양창섭(왼쪽)과 포수 강민호가 4월4일 마산 NC전에서 위기를 맞자 서로 상의하고 있다. 강민호는 새내기 양창섭에게 늘 든든한 리드로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1-0으로 앞선 5회 말 큰 것 한방을 맞는다.
5회말 1사 후 9번 정범모에게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에서 4구째 중월 2루타를 맞고, 1번 박민우에겐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역전 우월 2점포를 내준다. 마산구장의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비거리 105m. 양창섭은 다음 타자 2번 김성욱과 3번 나성범을 차분하게 처리하면서 이닝을 마무리한다. 전세가 1-2로 뒤집힌다.
양창섭은 5이닝 동안 21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총 85개의 공을 던졌다. 홈런 1개를 포함한 5안타와 볼넷 2개를 내줬다. 삼진 3개. 2실점했다. 직구 최고 시속은 143km, 데뷔전보다 살짝 떨어졌다. 스트라이크 존의 아래쪽에서 변하는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섞어 던지면서 위기를 넘겼다. 적극적인 몸쪽 승부도 피하지 않았다.
김한수 감독은 ‘양창섭의 한계가 왔다’고 판단했다. 한편으론 1-2에서 아직 승부를 포기할 상황이 아닌 만큼 투수 교체의 결단을 내렸다. 양창섭은 선발 투수로서 임무를 다했다. 6회부터 마운드를 김승현에게 물려줬다.
삼성은 승부를 다시 뒤집지 못했다. 8회 말 권오준이 첫 상대였던 2번 김성욱에게 좌월 1점 홈런을 맞는 등 2점을 더 내주는 바람에 1-4로 패했다.
양창섭은 첫 홈런을 맞고, 첫 패전의 멍에를 썼다. 그래도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괴물’ 류현진처럼 이어진 양창섭의 10.1이닝 무실점 행진
양창섭은 프로 데뷔전에서 6이닝 무실점 선발승을 올렸다. 고졸 신인으론 2006년 류현진 이후 12년 만이다. 역대 두 번째다.
양창섭은 두둑한 배짱을 지녔다. 어려워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마운드에선 무표정하다. 이제 2게임에서 1승1패와 평균자책점 1.64. 아직 갈 길이 멀다. 스프링캠프에선 ‘가장 좋은 공을 던진다’는 평가도 받았으니 차분하게 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 류현진은 200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한화에 입단했다. 고졸 새내기로 첫 등판이었던 4월12일 잠실 LG전에서 고졸 신인 최초의 무실점 선발승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거로 된 지금과 다른 앳된 모습으로 역동적인 피칭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천고를 졸업한 뒤 한화에 입단한 류현진은 2006년 4월 12일 잠실구장에서 LG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7.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역대 처음으로 고졸 신인이 선발 데뷔전에서 무실점으로 승리하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류현진은 그해 4월 18일 삼성전에 등판해 6.2이닝 동안 삼진 7개를 곁들이며 5안타 1실점했다. 한화가 삼성을 5-1로 물리쳤다. 류현진은 데뷔 이후 2연승을 기록했다. 무실점 행진은 14이닝에서 마감했다.
류현진은 입단 첫 해 30게임에 나가 18승6패와 평균자책점 2.23을 남겼다. 다승 1위, 평균자책점 1위, 탈삼진 1위(204개)를 싹쓸이하면서 정규 시즌 MVP와 신인왕을 거머쥔데 이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다.
최초 고졸 신인 선발승의 주인공은 롯데 김태형이다. 1991년 4월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 선발로 나가 완투승을 올렸다. 왼손 투수 김태형은 영리한 피칭을 하는 새내기란 평가였다. 그 해 11승을 올려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11년이 흐른 2002년 4월 9일 KIA 김진우가 고졸 신인 투수의 선발승 소식을 전했다.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전에서 무4사구 선발승을 올리면서 기염을 토하더니 3연승을 이어갔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해를 거듭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고교를 막 졸업한 ‘열아홉 청춘’들이 곧바로 주전을 꿰차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다.
그러나 올 시즌 ‘사자우리의 희망’을 떠오른 양창섭을 비롯해 kt의 신형 거포로 자리매김할 조짐을 보인 강백호, 롯데 핫코너의 새 주인이 된 한동희, 두산의 기대주 곽빈 등 열아홉 새내기들이 주목받고 있다.
‘열아홉 희망가’는 새로운 활력소임이 분명하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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