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는 스물한 살이다. 미래다. 희망이다.
‘영원한 라이언킹’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타자라고 극찬할 정도다.
일찌감치 아버지 이종범의 후광도 말끔히 씻어냈다. 스스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프로 3년째, 당차게 최고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향한 꿈을 키우고 있다.
이정후는 2019시즌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최연소, 최소 경기 5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22일 고척돔에서 열린 KIA전 4회말 깨끗한 우전안타를 날려 아주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 최연소, 최소 경기 500안타의 순간이다. 키움 3번 이정후가 8월22일 고척돔에서 4회말 1사 2루에서 매서운 타격으로 우전 안타를 만들고 있다.
휘문고를 졸업한 뒤 넥센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던 2017년 179안타를 터뜨리더니 지난해 163안타로 살짝 주춤했다.
그러나 올해 193안타를 쳐 통산 안타 535개를 기록 중이다. 한 시즌 200안타 도전에 실패했고, 최다안타 1위를 두산 페르난데스에게 내줬어도 분명 빛나는 한 해였다. 타율은 3할3푼6리, 홈런 6개, 타점 68개, 득점 91개, 도루 13개를 각각 기록했다.
시즌 이후 열린 프리미어 21에선 8경기에 나가 타율 0.385(26타수 10안타) 4타점 5득점으로 맹활약하면서 베스트 11에 뽑혔고,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는 등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최고 외야수로 인정받았다.
이정후의 앞길은 탄탄대로다.
# 3년 연속 3할타 - 이정후는 ‘아주’ 무서운 타자다
이정후는 지난 9일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2019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2년 연속 수상자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해엔 병역 특례 훈련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검은 나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키움 동료인 박병호, 김하성과 함께 자리를 빛냈다.
“직접 오니 더욱 더 특별하다”며 할머니, 아버지 등 가족에게 영광을 드렸다. 이정후는 ‘바람의 아들’로 통했던 아버지 이종범을 넘어설 수 있는 환경이다. 아버지보다 4년이나 먼저 프로에 입단했고, 아버지 이상의 타격과 야구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벌써 2번이나 황금 장갑의 주인공이 됐으니 아버지가 1993·1994·1996·1997·2002·2003년 기록했던 총 6회 수상을 뛰어 넘는 것도 시간 문제일 뿐이다.
▲ 키움 이정후는 이제 스무살을 넘어섰다. 앞길이 창창하다. 지난 9일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정후는 아버지 영향을 받고 자랐다. 늘 야구가 곁에 있었다. 트로피 진열장엔 숱한 트로피와 메달이 걸려 있었다. 자극제가 됐음이 분명하다. 이정후가 새로운 ‘안타 제조기’로 자리매김하는데 집안 내력도 한몫했다.
누구나 이정후의 타격을 보면 “참 잘 친다”고 말한다. 일단 어떤 구질, 어느 코스의 공이든 잘 맞춘다.
“자신이 그려놓은 존으로 공이 들어오면 그냥 친다”고 말한다. 빠르고, 변화가 심한 공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정후는 적절하게 반응한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정후는 짧고, 빠르고, 간결하고,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린다. 그리고 공을 최대한 오래 본다. 중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확하다.
열아홉 새내기 때부터 매서운 방망이로 3할 타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다.
이정후는 좀체 삼진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올 시즌 140게임에 나가 574타석을 소화하는 동안 삼진 40개에 그쳤다. 타석 당 0.069개, 게임 당 0.29개. 3~4게임에서 1개의 삼진을 당할까 말까다.
이런 모습을 더욱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다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가는 이유는 공을 때리기 위해서다. 공을 맞춰 그라운드 안으로 보내야 안타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아진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몸에 배 있다.
이정후는 2017년 타율 3할2푼4리, 2018년 3할5푼5리, 올해 3할3푼6리로 3년 통산 3할3푼8리를 기록 중이다. 무서운 타자다.
# 2019년 8월 22일 고척돔 - 꿈 같은 신기록을 만들다
키움과 KIA전이 열렸다. 키움은 신재영, KIA는 양현종을 선발로 내세웠다. 키움 장정석 감독은 왼손 양현종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왼손타자 서건창을 1번, 이정후를 3번에 배치했다.
역시 양현종은 든든했다. 키움 타선을 효과적으로 처리했다. 위기 극복력이 돋보였다.
1회말부터 1번 서건창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맞았다. 실점 위기였다. 그러나 2번 김하성을 유격수 땅볼로 잡고, 3번 이정후는 2루수 직선타로 잡아낸 뒤 2루주자 서건창의 주루사까지 이끌어냈다.
이날 이정후는 통산 369번째 출전이었다. 전날까지 올 시즌 157개의 안타를 터뜨렸다. 1개만 더하면 통산 5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다. 첫 타석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제대로 때린 타구였지만 안치홍이 2루 쪽으로 약간 치우쳐 수비 위치를 잡았던 탓에 병살과 함께 물러나야 했다.
그 사이 KIA가 주도권을 잡았다. 2회부터 4회까지 매 이닝 1점씩 뽑았다. 3-0으로 앞서갔다.
▲ 이정후는 키움의 중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3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기록하면서 3할대 타율을 이어가고 있다.
키움은 4회말 다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1번 서건창이 다시 좌익선상 2루타로 나갔다. 2번 김하성은 삼진.
3번 이정후에게 기회가 왔다. 양현종도 물러서지 않았다. 볼 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째를 바깥쪽 낮은 곳으로 던졌다. 마음 먹은대로 가지 않았다. 조금 가운데 쪽으로 밀려들어오는 듯 했다.
이정후는 주저하지 않았다. 야무지게 방망이를 돌리면서 잡아 당겼다. 우익수 앞으로 빠져 나가는 안타. 2루 주자 서건창이 홈까지 파고들기엔 타구가 너무 빨랐다.
마침내 이정후가 개인 통산 500안타를 완성했다. 새 역사를 썼다. 21세 2일만에 역대 최연소 500안타였다. 369게임은 역대 최소 경기 500안타 신기록.종전 최연소 500안타는 이승엽의 몫이었다. 1998년 7월 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1세 10개월 14일 만에 달성했다. 최소 경기는 2002년 4월 26일 한화 데이비스가 대전 LG전에서 기록한 386경기.
그러나 이정후의 통산 500안타는 끝내 득점과 연결되지 못했다. 4번 박병호가 병살타로 고개를 떨군 탓이었다.
이날 키움은 8회까지 무득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0-5로 끌려가다 9회말 천신만고 끝에 5점을 얻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2회 연장 혈투를 펼쳤지만 5-5 무승부로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이정후는 아주 좋은 타자다. 실력으로 2017년 신인왕에 이어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이정후는 투수 유형을 가리지 않는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잠수함이든 두려움이 없다. 올 시즌 왼손 투수를 상대로 타율 3할6푼4리, 오른손 투수에게 3할2푼8리를 각각 기록했다. 언더핸드에겐 2할9푼8리로 조금 3할을 밑돌았을 뿐이다.
아웃카운트 역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어느 때나 3할 방망이를 뽐냈다. 무사 때 3할3푼6리, 1사 때 3할3푼7리, 2사 때 3할3푼5리를 각각 기록하면서 전천후임을 입증했다.
이정후에게 올해는 또 한 번 잊지 못할 해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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