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키움 2루수 김혜성(21)이 5월3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생애 첫 사이클링 히트를 터뜨렸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통산 26번째, 히어로즈 선수로는 2017년 서건창에 이어 두 번째, 돔 구장 개장 이후 처음이다.
▲ 키움 김혜성이 5월3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T전에서 생애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김혜성이 다음 날인 31일 KT전에 앞서 홍원기 수석코치가 건네 준,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3루타 공`을 들어 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동산고를 거쳐 2017년 넥센의 2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해 프로 4년째다. 김혜성은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21세 4개월 3일.
역대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의 주인공은 신종길이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2004년 9월12일 대전 두산전에서 20세 8개월 21일째 되던 날 대기록을 세웠다.
김혜성은 아직 확실한 주전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존재감을 알렸다. 미래를 향한 청신호였다.
김혜성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다음 날 고척 돔에서 “주변의 축하가 많았지만 특히 어머니가 기뻐하셨다”고 밝혔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에겐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었다.
김혜성은 31일 경기에 앞서 선수단 미팅 때 홍원기 수석코치가 직접 기록과 날짜를 쓴 ‘3루타 공’,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공을 받았다.
# 2020년 5월30일 고척 스카이돔, KT-키움전
KT는 쿠에바스, 키움은 최원태. 팽팽한 투수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발 카드가 맞붙었다.
3회까지 초반 승부는 KT가 앞서갔다. 3회초 무사 1루에서 8번 장성우가 좌중월 2점포를 날려 주도권을 잡았다. 키움은 3회말까지 3안타와 볼넷 1개를 얻었지만 0의 행진을 이어갔다.
4회말 우월 1점포 : 키움이 0-2로 뒤진 4회말 마침내 선두타자 5번 박동원이 포문을 열었다. 쿠에바스의 두들겨 좌중월 1점 아치를 그렸다.
그리고 1사 후 7번 김혜성이 타석에 나가 풀카운트의 접전 끝에 쿠에바스의 6구째 몸쪽 높은 직구(시속 145km)를 제대로 받아쳐 오른쪽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자신의 시즌 1호 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매끄러운 스윙으로 정확하게 빠른 공을 때렸다. 조짐이 좋았다.
5회말 1타점 좌전안타 : 2-2 동점이던 5회말 키움이 역전 기회를 잡았다.
선두타자 2번 김하성이 볼넷으로 나갔다. 3번 김웅빈은 우중간 안타로 화답했다. 무사 1, 2루. 쿠에바스가 흔들렸다. 4번 박병호를 3루수 플라이로 돌려 세웠지만 5번 박동원의 타석 때 패스트볼을 던져 1사 2, 3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박동원에게 2타점 좌월 2루타를 맞았다. 키움이 4-2로 전세를 뒤집었다.
KT 벤치에선 쿠에바스 대신 왼손 하준호를 내세웠고, 키움은 좌익수 선발 출전했던 김규민 대신 서건창이 나섰다. 하준호는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서건창에에 볼넷을 허용했다.
7번 김혜성에게 또 1사 1, 2루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준호가 초구에 바깥 높은 쪽으로 시속 143km의 직구를 던지자 제대로 밀어쳤다. 타구는 좌익수 앞으로 굴러갔고, 이 때 2루주자 박동원이 홈까지 내달렸다. 1타점 좌전 적시다.
KT 좌익수 김민혁의 홈 송구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이 서건창은 3루, 김혜성은 2루까지 각각 진루했다. 키움이 5-2로 1점 더 달아났다.
6회말 2타점 우익선상 2루타 : 키움은 5-2로 앞선 6회말 확실하게 승기를 잡는다. 11명의 타자가 일순하면서 김혜성의 2타점 2루타를 포함한 4안타와 볼넷 4개를 묶어 대거 7점을 추가했다.
키움은 6회말에도 선두타자 1번 이정후가 볼넷으로 나가면서 대량 득점의 시동을 걸었다. 특히 7-2로 앞서 1사 만루에서 7번 김혜성은 KT의 세 번째 투수 류희운에게 2타점 우익선상 2루타를 뽑아 상대의 추격 의지를 확실하게 꺾었다.
9-2로 점수차가 벌어지자 KT는 주전들을 교체했다. 3루수 황재균을 김민국, 2루수 박경수를 김병희, 포수 장성우를 강현우, 우익수 로하스를 송민섭으로 차례차례 바꿨다.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결국 3점을 더 뽑아 키움은 6회말까지 12-2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8회말 완벽한 우중간 3루타로 사이클링 히트 완성 : 키움은 12-3으로 앞서 가운데 8회말 공격에 나섰다. KT 마운드는 이강준이 지키고 있었다.
1사 후 7번 김혜성이 타석에 나갔다. 초구는 파울, 2구는 볼. 1-1에서 3루째 가운데 낮은 쪽으로 시속 142km의 직구가 들어왔다. 김혜성의 방망이가 반응했다. 약간 퍼올리는 듯한 스윙이었지만 제대로 맞았다. 우중간으로 높이 날아가던 공이 담장을 맞혔다. KT 중견수 배정대와 우익수 송민섭이 달려 왔지만 잡을 수 없었다. 배정대는 몸까지 날렸지만 헛수고였다.
담장을 맞고 튀어 나온 공을 송민섭이 잡아 중계 플레이에 나선 내야수에게 던져줄 때 김혜성은 이미 2루를 돌고 있었다. 3루까지 여유롭게 들어갔다.
마침내 우중간 3루타가 터져 생애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김혜성은 1사 1, 3루에 9번 박준태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홈까지 밟았다.
이날 김혜성은 5타수 4안타 4타점 3득점.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키움은 14-3으로 KT를 물리쳤다.
# 양준혁과 테임즈, 하나도 꿈인데 두 번 씩이나
사이클링 히트는 평생 한 번도 힘들다. 타자라면 꿈에 그리는 기록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
KBO리그에서 첫 사이클링 히트는 프로 원년인 1982년 6월12일 삼성 오대석이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삼미와의 경기에서 기록했다. 오대석은 공격력을 지닌 내야수로서 평가받았고, 원년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 삼성 양준혁(왼쪽)과 NC 테임즈는 KBO리그에서 2차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주인공들이다. 뛰어난 타격 능력과 함께 열정적인 베이스러닝으로 두 차례나 대기록을 달성했다.
사이클링 히트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타자는 역시 삼성 양준혁과 NC 테임즈다.
양준혁은 1996년 8월23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전에서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뒤 7년 뒤인 2003년 4월15일 수원 현대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2호 사이클링 히트를 터뜨렸다.
특히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는 1987년 롯데 정구선, 1992년 두산 임형석에 이어 역대 3번째 최소 타석에서 대기록을 달성해 탁월한 타격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했다.
▲ 삼성 양준혁(가운데)이 2003년 4월15일 생애 두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뒤 대구구장으로 돌아와 신필렬 사장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NC에서 폭발적인 힘을 과시한 뒤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한 테임즈는 2015년 4월9일 광주 KIA전에 이어 같은 해 8월11일 목동 넥센전에서 연거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 호타준족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테임즈 역시 개인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는 최소 타석에서 달성했다.
이밖에 역대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는 LG 이병규가 2013년 7월5일 목동 넥센전에서 38세 8개월 10일의 나이로 기록했다.
# 퓨처스 리그도 총 29차례 사이클링 히트, 상무 김재환도 2번
사이클링 히트는 2군 무대에서도 종종 터져 나왔다.
LG 이동우가 1995년 6월6일 구리 한화전에서 첫 퓨처스 리그 사이클링 히트를 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9일 이천구장에서 열린 NC전의 LG 강구성까지 총 29번 대기록이 나왔다.
1군에선 아직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지 못한 타자들이 2군 무대에서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LG 문선재는 2010년 4월16일 송도 SK전, 두산 김재환은 상무 시절이던 2010년 5월7일 벽제 경찰청전과 같은 해 7월27일 송도 SK전에서 두 차례, 한화 최주환도 상무 유니폼을 입고 있던 2011년 9월10일 송도구장에서 열린 SK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각각 기록했다.
롯데 민병헌은 경찰청 소속으로 2012년 5월24일 벽제 SK전, NC 권희동은 상무 시절이던 2016년 5월4일 익산 KT전, 키움 임병욱은 화성 유니폼을 입고 2016년 8월7일 익산 KT전, KIA 백용환은 2017년 8월30일 경산 삼성전에서 사이클링 히트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청호 전문기자 / 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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