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감독과 선수, 구단 관계자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연패가 길어지니 그러려니 했다.
끝내 한용덕 감독이 지휘봉을 놓고 떠났다. 지난 7일 14연패를 당한 뒤였다. 2012년 10월 3일부터 2013년 4월 14일까지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 불명예를 맛본 뒤 두 번째.
이젠 끝나려나. 최원호 감독 대행이 9일 부산 롯데전부터 연패를 끊어내려 애썼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패패패패. 18연패까지 갔다.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삼미 슈퍼스타즈가 당했던 역대 최다 연패와 1998년 지바 롯데가 세운 일본 프로야구 최다의 연패와도 타이. 끔찍했다. 어찌해야 할까.
마침내 한화가 지긋지긋하던 18연패에서 벗어났다. 14일 대전구장에서 두산과 힘겨운 승부 끝에 7-6으로 이겼다. 5월 23일 이후 20여일 만이다. 13일에 시작된 경기였지만 오락가락하는 폭우 탓에 서스펜디드로 열린 게임에서 귀중한 승리를 따냈다.
▲ 한화가 1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열린 두산전 9회말 2사 2, 3루에서 5번 노태형의 좌전 끝내기 안타로 18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노태형이 끝내기 안타를 터뜨린 뒤 두 팔을 치켜들고 기뻐하고 있다.(왼쪽) 벤치에서 뛰쳐 나온 동료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다.
‘무명’ 노태형이 6-6 동점이던 9회말 2사 2, 3루에서 천금보다 귀한 끝내기 좌전 안타를 만들어 낸 덕이었다.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은 노태형의 안타로 두산을 7-6으로 꺾었다.
모두 기뻤다.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가운데 담장 너머, 멀리 보문산 전망대에서 대형 깃발을 흔들면서 연패 탈출을 기원했던 열성 팬들은 물론 랜선 응원을 하던 팬들도 함께 환호했다.
# 2020년 6월 13~14일 이글스 파크, ‘서스펜디드의 행운’ 연패는 끝났다
한화는 연패 탈출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이것저것 가릴 것이 없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수라도 써야 할 판국이었다. 하루 이틀 등판을 앞당겨 에이스를 투입해도 누가 뭐라 하랴.
그러나 최원호 감독 대행은 무리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13일 대전 두산전의 선발로 한승주를 내세웠다. 올 시즌 첫 1군 등판. 퓨처스 리그 4게임에서 2승 1패와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 중이었다. 누구를 선발로 내세워도 불안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산 선발은 유희관.
선발 싸움부터 기울어진 언덕. 대전 지방엔 장마 전선 탓에 비가 오락가락했다. 행여 비가 행운을 가져 오려나. 요행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한승주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박건우에게 좌전안타를 맞는 등 1회에만 2안타와 볼넷 2개, 희생 플라이 1개로 2점을 내줬다.
그나마 1회말 1사 1루에서 터진 3번 김태균의 시즌 1호 동점 홈런 덕에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승주는 2-2에서 2회초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2사 후 1번 박건우에게 좌월 1점포를 내주며 한계를 드러냈다. 한화 벤치에선 최원호 감독 대행이 투수 교체를 지시했다. 한승주 대신 이현호가 마운드로 나가 2번 페르난데스를 상대했다.
비는 오락가락.
페르난데스도 바뀐 투수 이현호를 상대로 우중월 1점 아치를 그렸다. 연속 타자 홈런으로 두산이 다시 4-2로 앞서 나갔다.
한화는 불안했다. 그래도 2회말 1사 후 7번 노시환이 중월 1점포를 날려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어찌어찌 3회초 두산 공격까지 마무리하고, 한화의 3회말 공격을 시작했다. 선두 타자 2번 정은원이 타석에 나갔다.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에서 4구째 볼이 들어왔다. 하지만 비가 더욱 거세지자 오훈규 주심은 오후 7시 10분부터 40분까지 경기를 중단시켰다.
기다렸다. 빗발이 가늘어지지 않았다. 오훈규 주심은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 올 시즌 첫 서스펜디드 게임을 선언했다. 13일 경기가 14일로 넘어가 오후 2시부터 대전구장에서 한화의 3회말 공격부터 재개된다.
▲ 13일 한화-두산전은 비 때문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14일 한화가 3-4로 뒤진 3회말 공격부터 재개됐다. 한화 선수들이 서스펜디드 게임에서 앞서 외야에서 몸을 푼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한화에겐 행운의 징조였다.
두산은 서스펜디드로 이어진 경기에서 3회말 수비부터 홍건희를, 한화는 4회초부터 김범수를 각각 내세웠다.
한화는 3-4로 뒤진 4회말 2사 2루에서 8번 최재훈의 우중간 적시타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7회말 정은원의 우중간 2루타 등 안타 2개와 4사구 3개를 묶어 2점을 보태면서 6-5로 전세를 뒤집었다.
승리의 기운이 한화 쪽으로 흘렀다. 최원호 감독 대행은 8회말 마무리 정우람을 투입하는 강수를 던졌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정우람이 1점을 내줘 6-6 동점.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6-6 동점에서 9회말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 1번 이용규가 김강률로부터 볼넷을 얻었다. 두산 벤치에선 무사 1루에서 2번 정은원의 타석 때 김강률 대신 왼손 마무리 함덕주를 올려 불을 끄려 했다. 정은원은 1루 땅볼 아웃.
3번 김태균은 고의 4구로 1사 1, 2루. 한화는 1루 주자로 김태균 대신 이동훈을 투입했다. 여하튼 병살은 막자는 뜻이었다. 4번 호잉은 함덕주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2루수 인필드 플라이 아웃.
2사 1, 2루. 점점 승리와 멀어지는 듯 했다. 무승부로 끝나면 연패는 그대로 이어지는데.
5번 노태형이 타석에 들어갔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는 볼, 3구와 4구는 파울. 과연 노태형이 함덕주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5구째 폭투가 나왔다. 주자들이 2, 3루로 각각 진루했다.
2사 2, 3루. 짧은 안타에도 승리가 가능하다. 노태형은 방망이를 짧게 잡았다. 6구째 바깥쪽 공이 들어오자 짧게 밀어쳤다. 유격수 김재호가 따라갔지만 잡을 수 없었다. 좌익수 앞으로 타구가 굴렀다. 올 시즌 16번째 끝내기 안타.
모두 환호했다. 벤치에서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노태형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틀 동안 이어진 긴 승부가 끝났다.
# 1, 2군 물갈이 통한 변신과 한화의 연승, 그리고 구단의 사과
노태형(25)은 2014년 북일고를 거쳐 2차 지명 10라운드에서 지명돼 한화에 입단한 육성 선수다. 올해 연봉 2700만원. 늘 2군에 있었다.
올해도 2군에서 시작했다. 지난 10일 충남 서산에서 열린 LG와의 퓨처스 경기까지 총 19게임에 나가 타율 2할9푼리를 기록 중이었다. 1군 경기는 5월 20일 KT전이 유일했다.
2군 LG전 이후 다시 1군에서 부르자 급히 부산으로 이동해 곧바로 롯데전에 교체 출전했다. 8회말 수비부터 2번 2루수 정은원을 대신했다. 노태형은 한화 팬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 연패가 길어지면 괴롭다. 한화의 간판 선수 김태균(왼쪽 가운데)이 14일 두산전에서 9회말 노태형이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자 더그아웃에서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최원호 감독 대행(오른쪽 왼쪽)은 이어 벌어진 두산전에서 다시 3-2로 승리, 2연승을 올린 뒤 타석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인 포수 최재훈을 격려하고 있다.
김태균과 이용규 등 고참들도 특타를 자원했던 덕이었을까. 한화는 연패 탈출의 기세를 몰아 14일 두산전에서 다시 3-2로 이겼다. 연승이다.
선발 서폴드가 6이닝 동안 8안타와 볼넷 2개를 내주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2실점(비자책)으로 역투했고, 8번 최재훈이 3회말 1사후 결승 좌월 1점포를 포함해 2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최원호 감독 대행은 “일단 연패 탈출과 함께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들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15일 현재 9승 27패.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한자리수 승리다.
한화 구단은 18연패에서 벗어난 뒤 임직원 일동 명의로 홈 페이지에다 사과문을 올렸다.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의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빠른 시일 내 팀의 정상화를 위한 재정비와 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시즌 투혼을 불사르는 변화된 이글스가 될 것을 약속했다.
최원호 감독 대행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변화를 시도했다. 김태균과 이용규만 빼고 이성열, 장시환, 송광민 등 9명의 고참 선수를 2군으로 내렸다. 그리고 빈 자리는 무명의 2군 선수들로 대신했다.
일단 발등의 불을 껐다. ‘꼴찌’ 한화는 다시 시작한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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