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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프로야구 탄생(6)

기사입력 [2006-11-14 11:02]

"대한야구협회서 밀려난 뒤 이용일과 나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할 일이 없던 처지라 만나면 잡담을 나누다가 영화관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용일은 야구 선수 출신으로 서울대 상대를 나와 가업에 종사하며 야구 행정에 오래 동안 관여한 탓으로 그에 관한 한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프로야구 창단 작업에 그를 도외시할 수 없어 끌어들였다."


<사진설명> 76년 재미 실업가 홍윤희가 만든 '직업야구창단계획서'를 토대로 81 8월 새로 작성한 '한국프로야구창립계획서' 표지 사본

이용일에게 있어 프로야구 창단 마스터 플랜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우선 76년 홍윤희가 짠 직업야구 창단 계획서를 토대로 새로운 프로야구 창단 청사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날부터 이호헌과 이용일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20여 일간 홍윤희의 직업야구 창단 계획서를 뜯어 맞춘 끝에 18쪽짜리 프로야구 창립 계획서를 만들어 냈다. 이 계획서는 76년부터 대학, 실업 선수들을 출신 고교 별로 묶어 모교 야구의 전통과 기량을 겨루게 한 '야구대제전'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들었다.
이용일은 야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교애 30%, 향토애 70%로 분석하고 있었다. 때문에 프로야구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향토애, 즉 지역 감정을 적극적으로 자극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프랜차이즈(연고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역 감정이 곧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거기서 애국심도 싹 터 정치나 사회적으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설명> 83년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한 해태의 김봉연(金奉淵). 프로야구 창립 당시 선수들에 대한 대우는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몸 담고 있던 김봉연의 연봉(480만원)을 모텔 케이스로 삼았다.

프로야구 참여 기업은 종업원이 3만명 이상, 재무구조가 견실한 대기업을 우선으로 하고 연고지는 그 기업 총수가 태어난 고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역 연고와 기업 연고가 함께 묶어져야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은 물론 지원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방 구장의 조명시설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연고 구단에 맡기면 쉽게 해결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른 문제만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프로야구 창설 움직임이 청와대 11인 수석 비서관들에 의해 거론되기 이전부터 경남고 11회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싹이 텄다는 점이다. 그들 속에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 가운데 한 명인 이학봉 민정 수석도 끼어 있어 눈 길을 끌었다.
"야구대제전 때면 이학봉씨와 장태영씨(작고•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및 박종환씨(전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가 모교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79년부터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우리 프로야구 만들자'며 두서없이 의견을 내놓곤 했다. 특히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난 뒤엔 이학봉씨가 민심을 야구 쪽으로 돌리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마 이 때 이학봉씨 머리 속에 프로야구에 관한 어떤 구도가 자리잡지 않았나 싶다."
이학봉 수석의 경남고 후배인 박영길의 설명이다. 때문에 박영길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모였던 11인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프로야구 탄생 작업이 좀 더 구체적이고 확고하게 논의됐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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