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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프로야구 탄생(7)

기사입력 [2006-11-15 16:09]

"프로야구 창립 계획서가 만들어진 것은 8월 하순께였다. 지체 없이 청와대에 전해 졌다. 곧 만나자는 연락이 올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20여 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우병규 수석에게 '어떻게 돼가는 판이냐?' 고 독촉을 했더니 그 쪽에서 오히려 역정을 냈다. '왜, 계획서는 안 보내느냐?'는 거였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이 계획서는 전달받은 비서관이 대수롭지 않게 책상 서랍에 처박아 둬 우병규 수석이나 이상주 수석을 애타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프로야구 창립 계획서를 뒤 늦게 받아 본 이상주 수석은 "그래, 이 거야!" 하며 무릎을 쳤다. 매우 흡족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프로야구창립계획서를 받아 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수석은 프로야구를 어떤 형태로 출범시켜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는 우리 프로야구도 미국의 경우처럼 지역 연고제를 도입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 팀 수를 몇 개로 할지? 지역 연고는 어떻게 나눌지? 뚜렷한 복안은 없었다. 또 프로야구가 정착하기 위해선 자금력의 뒷받침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한 팀이 한 해 8억원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이 돈의 염출도 문제였다. 대기업이 참여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끌어 들일 지 막막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창립계획서엔 이런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낼 방안이 담겨 있었다.
특히 정부의 지원금 1원 한 푼 없이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마음을 끌었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지원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야간 조명시설에 대한 자금은 5개 구단(서울 제외)에서 2년 거치 3년 분할로 상환할 수 있도록 융자해주고 야구장 입장세(20%) 또한 프로야구가 정착할 때(5년간)까지 유보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의 징집 문제도 아마 선수와 동일하게 혜택을 줄 수 있었다.
프로야구창립계획서를 보면 서울, 부산 및 경남, 대구 및 경북, 광주 및 전남 북, 대전 및 충남 북, 인천 및 경기 강원지역을 한 연고지로 묶어 6개 팀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학 및 실업 선수들을 고교 별로 분류하면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대우가 문제였다.

<사진 설명>프로야구 첫 최우수선수(MVP) 박철순(朴哲淳). 81년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에 몸 담고 있던 박철순은 이적료 3만 달러가 해결되자 82년 2월 19일 6개 구단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특급 대우(계약금 2천만원, 연봉 2천4백만원)로 OB 베어스와 입단 계약을 마쳤다. 그는 이 해 36경기에 등판, 22연승을 포함해 다승(24), 방어율(1.84), 승률(.857) 1위로 투수부문 3관왕을 달성했다.

81년 당시만 해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실업 팀에서 받는 월급은 보너스까지 합쳐 연간 4백80만~5백만원 수준이었다. 프로선수라면 이 보다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했다. 또 하나 실업 선수들은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지만 프로 선수들에겐 이런 보장이 없었으므로 실업 선수가 10년 동안 벌 수 있는 돈을 1년에 벌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었다.
"선수에 대한 대우는 한국화장품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봉연(金奉淵)을 모델 케이스로 삼았다. 그가 실업 팀에서 받는 봉급은 보너스까지 합쳐 연간 4백80만원 안팎이었다. 그러니까 연간 5백만원 이상을 받게 해주면 불만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안이 선수의 능력에 따라 받을 수 있도록 특급에서 F급까지 7등급으로 분류했다. D급을 기준으로 할 경우 계약금 5백만원에 연봉은 6백만원이 됐다. 실업 최고의 선수들을 능가하는 대우였다. 그 뿐이 아니다. 특급 선수로 분류될 경우 거금을 손에 쥘 수도 있었다. 특급 선수의 경우 계약금 2천만원에 연봉 2천4백만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경우도 A급은 계약금 2천만원에 연봉 1천2백만원. 한마디로 말해 파격적인 대우였으니 야구 선수면 누구나 침을 흘릴만했다. 당시만 해도 2천만원은 대단한 금액이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24~28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큰 돈이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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