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베어스를 탄생시킨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왼쪽). 박 회장은 연고지로 서울을 원했다. 사진은 박 회장이 82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초청으로 서울을 찾은 LA 다저스 톰 라소다 감독과 환담하고 있는 모습.
이호헌과 이용일에겐 두산의 프로야구 참여 의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연고지 문제는 추후 조정키로 하고 대구 경북지역의 제1 후보였던 삼성그룹을 찾아갔다.
"청와대라고 하지 않으면 만나줄 것 같지 않아 처음으로 청와대를 팔았다. 그룹 비서실에서 소병해(蘇秉海) 실장을 만나 청와대서 여차여차해 프로야구를 만들라고 한다. 그러니 삼성도 참여하길 바란다고 하자 소 실장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그는 이건희(李健熙) 부회장도 언젠가 지나가는 말처럼 프로야구에 관해 말한 일이 있다며 꼭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했다."
삼성을 찾아갈 때만해도 반신반의였다. 사실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찾아갔다가 의외의 말을 듣자 이호헌과 이용일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석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석호(盧錫鎬) 이사가 기분 잡치는 말을 했다. 그는 비서실에서 농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프로야구를 해라 마라 그런 식으로 강요하면 곤란하다.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니면 무조건 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는 게 좋겠다."
이호헌이 듣기엔 여간 불쾌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만이 있을 이호헌이 아니었다. 성격이 꼬장꼬장한 이호헌은 그 자리에서 노석호 이사의 말을 받아 넘겼다.
"우리가 언제 당신들에게 프로야구를 만들라 마라 강요를 했단 말인가? 우리는 이상주 수석의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다. 싫으면 그만두면 되는 것이지…, 프로야구를 청와대 압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이호헌이 언성을 높이자 당황한 소병해 실장이 끼어 들었다.
"됐습니다. 최종 결정은 위에 계신 분들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대구 경북지역은 우리가 맡는 것으로 하시지요." 라는 말로 분위기를 바꿔 노 이사와의 언쟁은 그 것으로 끝이 났다.
"훗날 들은 얘기지만 노석호 이사가 이상주 수석에게 전화로 사실을 확인했던 것 같다. 삼성을 다녀와서 이상주 수석을 만났더니 '이호헌과 이용일이라는 사람이 프로야구를 만든답시고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니며 공갈치고 있다' 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수석은 '무슨 소리냐? 대 삼성이 청와대 압력으로 프로야구를 만들 기업이냐?' 고 꾸짖은 뒤 '두 번 다시 허튼 소리 하지 말라' 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삼성은 그 뒤 이건희 그룹 부회장의 재가를 받아 대구 경북지역을 연고지로 한 팀을 창단키로 확정을 지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