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프로야구 참여를 유보했던 럭키금성은 10년이 지난 90년 1월 18일 MBC 청룡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3월 15일 여의도 동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LG 트윈스 창단식을 가졌다. 사진은 창단식이 끝난 뒤 선수들과 조광식 단장(앞줄 왼쪽) 및 백인천 감독(앞줄 오른쪽)이 창단 축하 함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
현대와 한진에서 물 먹은 이호헌은 한국화장품 임광정 사장을 떠올렸다. 임 사장은 대한야구협회 회장으로 실업야구 팀(한국화장품)을 갖고 있어 프로야구에 뛰어드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봤다. 그러나 임 사장의 요구는 프로야구 창립 취지를 흔드는 것들이었다. 임 사장은 프로야구 팀을 창단하는 조건으로 서울지역을 연고지로 달라고 했다. 선수들도 한국화장품에서 뛰던 기존 선수들을 그대로 안고 가겠다는 거였다. 일종의 특혜를 달라는 것이었다. 모두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이어서 한국화장품의 참여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큰 일이었다. 호남에 이어 경기 강원지역에서도 연고 기업을 찾지 못해 초조하기 그지 없었다.
"기업들이 프로야구 참여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항공의 경우처럼 승산이 없다고 본 탓이다. 시기적으로 기업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때문에 오늘은 이 회사, 내일은 저 회사 하는 식으로 구걸을 하러 다니는 꼴이 됐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이상주 수석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수석은 한참을 생각하다 럭키금성그룹에 전화를 걸었다."
이상주 수석은 기획조정실 이헌조(李憲祖) 실장에게 "프로야구 관계로 사람이 찾아갈 테니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라"고 말한 뒤 우리에게 "럭키금성의 생산품은 소비재가 주류를 이루는 기업이니 프로야구를 만들라고 하면 기뻐할 것이라며 한번 찾아가 보라고 했다."
럭키금성이 참여 한다? 물론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연고지 문제를 놓고 보면 새로운 고민거리였다. 럭키금성의 연고는 서울 아니면 경남이었다. 기업으로 보면 당연히 서울을 연고지로 주장할 것이고 오너인 구자경(具滋暻) 회장은 고향이 경남 진양이어서 연고로 부산 및 경남지역을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는 MBC와 충돌할 게 뻔했고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연고권을 주장하는 롯데와 한 판 싸움이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전혀 생소한 연고지에 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여서 일단 덮어두기로 하고 호남지역 기업을 찾아 나섰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