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호텔 신라에서 열린 구단주회의는 MBC, 해태, 삼미만 오너가 직접 참석했을 뿐 삼성, 롯데, 두산은 대리인이 참석해 토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회의는 몇 개의 안건을 통과시킨 뒤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롯데제과 민제영 전무가 해태제과의 참여를 놓고 동일 업종은 피한다는 원칙을 위반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린 뒤 프로야구 불참을 선언한 탓이다.
프로야구창립계획서를 보면 '구단 선정 및 권한 지역' 난에 "경쟁 대상인 같은 업종은 가급적 피한다"는 조항이 있다. 롯데그룹을 대표해서 참석한 롯데제과의 민제영 전무가 해태제과의 참여는 이 조항을 위반했다며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해태제과가 참여할 경우 호남지역에서 롯데제과는 발 붙일 곳이 어려워진다는 단순한 논리를 앞세워 프로야구 참여 포기를 선언했다. 참으로 낭패스런 일이었다."
롯데의 불참 선언은 다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었다. 이호헌은 가까스로 6개 기업을 꿰 맞춰났더니 롯데가 깽 판을 놓은 것 같아 울화가 치밀었다. 다혈질인 이호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마디 쏘아 붙였다.
"당신이 뭐요! 오너도 아닌, 제과회사 전무가 대리로 참석해서 어떻게 하고 안 하는 것을 마음대로 결정합니까? 가뜩이나 호남을 푸대접한다 해서 욕을 먹고 있는 마당에 롯데와의 경쟁을 피한다는 이유로 해태를 빼버리면 그게 잘 될 것 같습니까?"
81년 11월 25일 호텔 신라에서 열린 프로야구 창립 구단주회의는 해태의 참여에 롯데가 반발, 실행위원회 구성과 창립 총회 외엔 이렇다 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났다. 사진은 당시 프로야구 첫 구단주회의와 삼미의 참여를 보도한 신문들
그러나 민제영 전무의 고집도 대단했다. 주위에서 전무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구단주와 잘 상의해서 결정하라는 타협안을 내놨지만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아 회의는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구단주회의는 프로야구 창립을 주도할 7인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7인 실행위원회는 6개 구단 구단주가 임명하는 중역 6명과 실무를 맡은 사무총장 등 7명으로 구성, 프로야구 중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였다.
첫 실행위원회는 11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MBC 회의실에서 롯데가 불참한 가운데 열고 프로야구창립준비위원회(위원장 김병주 MBC 관리이사)를 출범시켜 프로야구 창립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의하기로 했다. 또 실행위원회는 프로야구 정관을 손질하고 프로야구 창립 일자도 12월 3일로 확정한 뒤 프로야구를 이끌어 갈 커미셔너 선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프로야구 창립 총회는 12월 11일로 연기됐다. 연고지 문제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두산과, 해태 참여를 문제 삼아 프로야구 동참을 포기한 롯데에게는 12월 2일까지 태도를 명확히 결정, 답변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차일 피일 시간을 끌어 어쩔 수 없이 연기한 것이다.
이호헌은 11월 25일 구단주회의가 끝난 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용일을 만나 두산과 롯데 문제를 놓고 상의를 했었다. 결론은 단 한 가지, 롯데건설 신준호(辛俊浩)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짓는 수 밖에 없다고 뜻을 맞췄다. 신 사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으로 롯데 구단이 창단되면 구단주를 맡기로 내정된 실세였다.
"딴 방법이 없었다. 롯데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신준호 사장을 만났지만 민제영 전무와 입을 맞췄는지 똑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 신 사장도 고집을 꺾었다. 자기 선에서 확답할 수 없으니 일본에 있는 신격호 회장의 의사를 들어본 뒤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48년 롯데를 설립한 뒤 69년 프로야구 롯데 오리온스를 인수해 구단주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프로야구의 위력과 인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훗날 롯데 관계자에게 들은 얘긴데 신준호 사장이 해태 참여를 놓고 신격호 회장에게 프로야구 불참 의사를 비치자 신 회장이 '무슨 소리냐!'고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프로야구는 무조건 참여하되 연고지로 서울 지역을 요구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프로야구가 탄생한 뒤 사무총장을 맡아 구단주들과 수시로 접촉했던 이용일이 들려준 말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호헌이 다시 찾아가자 신준호 사장은 해태 참여를 묵인하는 대가로 연고지를 부산 대신 서울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은 서울보다 인구가 적어 승산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