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를 지켜보고 있는 이진희 사장(왼쪽). 그는 한 때 프로야구 커미셔너까지 노렸지만 문공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야구와 인연을 끊었다.
무조건 내놓으라는 안 보다 부드러워 MBC 이진희 사장은 물론 두산도 어느 정도 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안이었다. 이호헌은 지체 없이 두산을 찾아갔다. 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수 배분은 만족하지만 3년 뒤 서울 입성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맥이 탁 풀렸다. 은근히 화도 났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던 박용성 기획실장에게 냅다 한 마디 퍼부었다. '도대체 두산은 야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그랬더니 박 실장이 3년 뒤 서울에 올라올 수 있도록 공증을 해 달라고 했다. 확실하게 보장을 받아놓겠다는 거였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싶어 이호헌은 구단주들을 찾아 뛸 수 밖에 없었다. 삼성을 시작으로 롯데, 해태, 삼미로부터 사인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MBC가 문제였다.
"이진희 사장을 찾아갔더니 무슨 짓이냐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 싶어 단념한 뒤 이상주 수석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우리 설명을 다 듣고 난 이 수석은 '잘 알았다'고 한 뒤 자기가 나서서 이 사장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이상주 수석이 이진희 사장에게 전화를 한 것은 12월 11일의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3일 앞둔 12월 9일이었다.
"이호헌씨의 말을 듣고 보니 이진희 사장이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나는 청와대 일을 제쳐놓고 뛰었는데 이진희 사장이 번번히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때는 정말 화가 나서 이진희 사장이 말을 안 들으면 프로야구고 뭐고 다 깨버릴 생각이었다고 이상주 수석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진희 사장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고 봐야 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