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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탄생(20)

기사입력 [2006-12-01 08:14]

"두산이 서울을 달라고 한다면서요?"
이호헌을 만난 이진희 사장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서울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니까 함께 관할하자는 겁니다."
이호헌은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진희 사장은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이 보시오! 서울은 처음부터 MBC 연곤데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두산에 가거든 전하시오. 두산그룹쯤은 안중에도 없으니 충청도를 맡고 싶으면 프로야구를 하고, 싫으면 그만 두라고 말입니다. 서울은 절대로 쪼갤 수가 없어요."

너무나 완강한 말에 이호헌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말을 꺼냈다간 욕만 먹고 쫓겨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슬며시 물러나왔다. 하지만 이런 이 사장도 군부 실세인 이학봉 민정 수석에게는 꼼짝 못했다.

두산이 충청 지역을 기피한 것은 무연고인 탓도 있지만 보다 속 깊은 뜻은 야구 취약지역이어서 앞으로 닥칠 불이익을 미리 막아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충청 지역은 팀 구성에 필요한 선수가 서울 지역에 비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선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도 그 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있었다.

야구의 열기는 고교야구의 인기에 편승해 뜨겁게 닳아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충청도 주민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열을 낼 줄 몰랐다. 이런 지역에서 팀을 창단해 봤자 인기는 고사하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불이익을 볼 게 뻔했다. 때문에 두산은 선수 많고 야구에 관심 높은 서울 지역을 탐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두산과 MBC의 틈 바구니에서 그 어떤 결정도 못 내리고 있는데 삼성그룹의 실행위원인 동방생명 김동영 관리이사가 대안을 제시했다. 충청도는 선수가 부족한 반면 서울은 넘치므로 MBC와 두산이 선수를 2대1로 배분하고 3년 뒤에는 서울로 올라올 수 있도록 보장해 주자는 거였다."

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를 지켜보고 있는 이진희 사장(왼쪽). 그는 한 때 프로야구 커미셔너까지 노렸지만 문공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야구와 인연을 끊었다.

무조건 내놓으라는 안 보다 부드러워 MBC 이진희 사장은 물론 두산도 어느 정도 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안이었다. 이호헌은 지체 없이 두산을 찾아갔다. 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수 배분은 만족하지만 3년 뒤 서울 입성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맥이 탁 풀렸다. 은근히 화도 났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던 박용성 기획실장에게 냅다 한 마디 퍼부었다. '도대체 두산은 야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그랬더니 박 실장이 3년 뒤 서울에 올라올 수 있도록 공증을 해 달라고 했다. 확실하게 보장을 받아놓겠다는 거였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싶어 이호헌은 구단주들을 찾아 뛸 수 밖에 없었다. 삼성을 시작으로 롯데, 해태, 삼미로부터 사인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MBC가 문제였다.

"이진희 사장을 찾아갔더니 무슨 짓이냐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 싶어 단념한 뒤 이상주 수석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우리 설명을 다 듣고 난 이 수석은 '잘 알았다'고 한 뒤 자기가 나서서 이 사장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이상주 수석이 이진희 사장에게 전화를 한 것은 12월 11일의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3일 앞둔 12월 9일이었다.

"이호헌씨의 말을 듣고 보니 이진희 사장이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나는 청와대 일을 제쳐놓고 뛰었는데 이진희 사장이 번번히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때는 정말 화가 나서 이진희 사장이 말을 안 들으면 프로야구고 뭐고 다 깨버릴 생각이었다고 이상주 수석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진희 사장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고 봐야 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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