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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탄생(21)

기사입력 [2006-12-02 09:44]

이진희 사장은 역시 호락호락 양보하질 않았다. 이상주 수석은 안되겠다 싶어 언성을 높였다. 고분고분 말을 해선 이 사장이 꿈적도 안 할 것 같아서였다.

"이 사장! 정말 이러실 겁니까? 대세가 MBC 양보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뻗대고 있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좋습니다. 이 사장이 양보 안 하면 프로야구고 뭐고 다 깨버릴 테니 혼자서 하든가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수석은 전화기를 내동댕이치듯 던져버렸다. 이진희 사장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기 그지 없는 전화였다. 그렇지만 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주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대 강단에 섰던 학자였다. 여간 해서 큰 소리 칠 줄 모르는 호인이었다. 이런 사람을 화나게 한 것이 마음을 꺼림직했다. 이 사장은 할 수 없이 청와대를 향해 전화를 돌렸다.

"전화는 왜 끊는 거요? 이 수석, 좋소. 서울은 할애할 수 없지만 선수는 3분지1쯤 양보하겠소. 그러니 공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이진희 사장 입장에서는 대단한 양보였다. 그러나 이 수석은 받아 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경한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안 됩니다. 선수도 반분하고 3년 뒤에 두산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도록 공증까지 서 주십시오. 월요일까지 끝내야 합니다!"

또 전화를 끊었다. 속이 뒤집힐 일이었다. 참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주 수석과 전화 통화하고 난 다음 날(12월 10일) 이진희 사장은 이학봉 민정 수석으로부터 아주 불쾌한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학봉 수석은 처음에는 예의를 갖춰 조용조용 설득조로 말했다. 하지만 이진희 사장이 끝끝내 굽히지 않자 화를 벌컥 내며 기를 꺾듯 크게 소리쳤다.

"이 사장! 하라면 하지, 웬 말이 그리 많소? 내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보낼 테니 동의서에 도장을 찍으시오."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막후에서 알게 모르게 힘을 쓴 박종환씨(오른쪽). 그는 83년 롯데구단 전무, 96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 3년간 재직했다.

이학봉 수석의 말은 아예 명령이었다.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이학봉 수석이 누군가? 전두환 대통령의 오른 팔이나 다름없는 실세 가운데서도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이 당시의 이학봉 수석은 제5공화국을 창출한 주체 세력의 일원으로 그의 말 한 마디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좀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는 이학봉 수석이 언성을 높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전 날 청와대에서 이상주 수석을 만나고 나온 이호헌은 훗날(96~98년)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종환(朴鍾煥)을 찾아갔다. 이학봉 수석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박종환은 경남고에서 이학봉 수석과 동문 수학한 사이였다. 때문에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웠고 모교의 야구 행사에는 누구보다 한 발 앞서 참석했다.

경남고를 졸업한 뒤 이학봉 수석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걸었지만 박종환은 동아대와 기업은행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해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한번은 꼭 만났다. 모교의 재학 선수와 졸업 선수가 혼성 팀을 만들어 출전하는 '전국야구대제전'을 위해서였다. 이들은 선수보다 후원자로 한 자리에 앉았다.

"80년 야구대제전 때부터 박종환씨가 경남고 총감독을 맡아 진두 지휘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프로야구 탄생의 싹은 이때부터 움텄다. 이학봉 수석을 비롯해 경남고 야구 원로들이 모이면 프로야구가 생겨야 야구가 산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해댔다. 또 이학봉 수석도 국민 화합 차원에서 야구의 프로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프로야구 창립을 추진한 청와대 11인 수석 비서관 중에 한 명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어 이진희 사장을 고압적으로 밀어붙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박영길의 설명이었다.

박영길은 경남고 출신으로 이학봉 수석의 후배가 됐다.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가 태동 움직임을 보일 때 음으로 양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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