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커미셔너로 추대된 서종철 총재가 82년 1월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활약한 재일동포 장훈을 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사진(위)은 전두환 대통령이 서종철 장군 이름 앞에 ○표로 적임자임을 사인했다.
이용일의 말을 들은 이 수석은 빙긋이 웃으며 "이미 연락을 취해 놓고 있습니다" 한 뒤 "반공연맹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린 뒤 앞으로는 그 분과 상의해서 잘해 보십시오" 라고 했다.
"프로야구 창립 계획서와 정관을 챙겨 서울 장충동에 있는 반공연맹으로 서종철 장군을 찾아갔다. 반공연맹 이사장으로 있는 서 장군은 프로야구 진척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가칭 한국프로야구위원회(KPBO) 사무실도 반공연맹 사무총장 부속실에 차려졌다. 또 이때부터 프로야구 창단 작업은 이상주 교육문화 수석 비서관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커미셔너겸 총재가 확정됨으로써 그 다음 남은 일은 살림살이를 꾸려갈 사무총장의 인선이었다. 사무총장은 커미셔너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였다.
프로야구 정관을 보면 사무총장은 총재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사무총장은 총재의 명을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관리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 감독하며 총재가 없을 때는 총재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런 막중한 자리였던 만큼 청와대의 몇몇 수석 비서관들 사이에서는 총재를 추대하기 전부터 자신들의 측근을 총장으로 앉히기 위해 발벗고 나선 일이 있었다.
특히 이학봉 민정 수석 비서관이 한국아파트관리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박종환 사장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그 만한 까닭이 있었다.
박종환은 앞에서도 말했듯 이학봉 수석과는 경남고 동기 동창으로 자주 어울리는 사이였다. 80년 '전국야구대제전'이 끝난 뒤였다. 이학봉 수석을 비롯해 경남고 11회 동기들이 회식을 같이했다. 화제는 자연 '전국야구대제전'으로 옮겨 갔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