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감독자 회의에 참석한 이호헌(왼쪽에서 3번째), 박종환씨(왼쪽에서 4번째). 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청와대 비서관들 사이에서 총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박종환은 이상주 수석도 잘 알고 있었다. 부산사범 병설 중학 후배였다. 그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학봉 수석과 함께 몇 차례 만났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사무총장에 박종환을 적임자로 꼽았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이상주 수석을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무총장은 누가 맡아야 한다고 꼭 집어 정해 놓은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박종환은 아니다 싶었다."
이상주 수석은 이학봉 수석의 말을 듣는 순간, 이호헌과 이용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종환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프로야구를 만들겠다고 뛰어다닌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주 수석은 이때 비로서 사무총장을 맡아야 할 사람으로 이호헌을 점 찍었다. 그래서 이학봉 수석에게 "사무총장은 프로야구를 만들겠다고 뛰어다닌 사람들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 길이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이상주 수석은 다음 날 청와대 비서실로 이호헌을 불러 들였다. 커미셔너가 내부적으로 확정된 상태였으므로 이참에 사무총장도 아예 정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프로야구 창립 총회도 며칠 안 남았는데 사무총장을 누구에게 맡겨야 옳을지 이 선생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이호헌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이 수석은 재촉하듯 "마땅한 분이 없으면 이 선생님께서 맡으시지요" 했다.
이호헌은 다시 한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무총장도 커미셔너의 경우처럼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이용일과 몇 차례 의견을 나눈 일도 있었다.
"사무총장이 위에서 내려 보내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어떤 직책이나 야심을 품고 뛴 것도 아니니 허심탄회하게 받아 들이자. 다행히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고 다짐을 했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