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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탄생(26)

기사입력 [2006-12-08 09:22]

프로야구 얘기는 이때 처음 나왔다. 흥행이나 영리를 추구할 목적이면 프로야구가 탄생해야 한다며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었다. 그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전국야구대제전'이었다. 그 열기를 프로야구에 접목시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때문에 프로야구를 추진할 사람은 힘이 있는 이학봉 수석 밖에 없다며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는 게 박종환의 말이다.

해가 바뀐 81년 청와대 11인 수석 비서관들 사이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 쪽으로 돌려보자"는 차원에서 스포츠의 프로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프로야구 탄생 작업은 이상주 교문 수석 비서관 손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프로야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이 때마다 박종환씨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주곤 했다. 박종환씨도 프로야구 탄생의 숨은 공로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이학봉 수석이 박종환씨를 사무총장으로 밀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호헌의 말이다. 박종환도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사무총장 애기가 나왔을 때 이학봉 수석이 '총장은 종환이가 맡아야지' 불쑥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손을 흔든 일이 있다. 이때가 아마 81년 10월 중순께가 아니었을까? 안될 말이었다.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뛴 사람들을 제쳐놓고 내가 맡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박종환의 말이 정말이었을까? 그 당시 청와대 교문 수석 비서관으로 있던 이상주 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아렴풋이나마 어떤 감을 잡을 수 있다.

81년 청와대에서 프로야구 탄생을 진두 지휘했던 이상주 교문 수석 비서관은 82년 강원대 총장을 거쳐 88년에는 울산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겨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를 만나자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커미셔너는 서종철 장군으로 점 찍어 놓고 있었기에 잡음이나 마찰은 있을 수 없었다. 대신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문제가 생겼다. 커미셔너를 보좌할 사무총장은 야구 행정에 밝은 분을 모셔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학봉 수석이 적임자라며 박종환씨를 추천했다."

프로야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감독자 회의에 참석한 이호헌(왼쪽에서 3번째), 박종환씨(왼쪽에서 4번째). 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청와대 비서관들 사이에서 총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박종환은 이상주 수석도 잘 알고 있었다. 부산사범 병설 중학 후배였다. 그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학봉 수석과 함께 몇 차례 만났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사무총장에 박종환을 적임자로 꼽았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이상주 수석을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무총장은 누가 맡아야 한다고 꼭 집어 정해 놓은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박종환은 아니다 싶었다."

이상주 수석은 이학봉 수석의 말을 듣는 순간, 이호헌과 이용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종환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프로야구를 만들겠다고 뛰어다닌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주 수석은 이때 비로서 사무총장을 맡아야 할 사람으로 이호헌을 점 찍었다. 그래서 이학봉 수석에게 "사무총장은 프로야구를 만들겠다고 뛰어다닌 사람들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 길이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이상주 수석은 다음 날 청와대 비서실로 이호헌을 불러 들였다. 커미셔너가 내부적으로 확정된 상태였으므로 이참에 사무총장도 아예 정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프로야구 창립 총회도 며칠 안 남았는데 사무총장을 누구에게 맡겨야 옳을지 이 선생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이호헌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이 수석은 재촉하듯 "마땅한 분이 없으면 이 선생님께서 맡으시지요" 했다.

이호헌은 다시 한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무총장도 커미셔너의 경우처럼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이용일과 몇 차례 의견을 나눈 일도 있었다.

"사무총장이 위에서 내려 보내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어떤 직책이나 야심을 품고 뛴 것도 아니니 허심탄회하게 받아 들이자. 다행히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고 다짐을 했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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