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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탄생(27)

기사입력 [2006-12-09 23:02]

이상주 수석의 제의는 천만 뜻밖이었다. 아니, "총장을 맡아보라"는 이 수석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수석이 의례적으로 흘린 말로 들리기도 했다. 이호헌은 그래도 고마웠다. 프로야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고생한 보람을 찾은 것만 같았다.

이상주 수석이 다시 한번 제의했다. 그러나 이호헌은 그것으로 족했다.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물리치는 것이 이 수석을 마음 편하게 하는 길이라 믿었다.

"뜻은 고맙습니다만 우리들에 대해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총장이 누가 되든 윗분들 뜻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이 수석께서도 부담 갖지 마시고 저희들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중요한 자리는 위에서 결정해 낙하산을 태워 내려 보냈다. 가장 좋은 예가 커미셔너였다. 이미 결정해 놓고 형식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총장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석은 단호하게 한 마디 했다.

"그게 아닙니다. 또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내 생각으로는 프로야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한 분들 중에서 사무총장을 맡아야 잡음 없이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일한 사람을 제쳐두고 엉뚱한 사람이 차고 앉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 드립니다. 사무총장은 이 선생님이 맡으십시오."

이 수석의 말 속에는 간절함이 스며있었다. 그렇지만 총장 선임은 이 수석과 단 둘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같이 고생한 이용일과도 한 번쯤은 상의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아닙니다. 이 수석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사무총장 문제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용일씨와 상의해서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된 이용일씨(앞줄 오른쪽) 90년 12월까지 9년간 재임했다. 사진은 90년 11월 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일본 주니치신문사 가토 미이치 회장(앞줄 왼쪽)과의 한·일 슈퍼게임 조인식 장면.

이호헌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참모는 될 수 있어도 우두머리는 될 수 없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무총장은 자신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호헌이 생각하는 사무총장 적임자는 이용일이었다. 서울상대에서 야구를 함께 하며 우의를 다져온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지만 행정력이나 사무를 처리하는 능력에서는 이용일이 한 수 위였다. 이호헌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용일의 능력은 79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았을 때 실업연맹과 대학연맹 및 고교연맹 등 산하 단체들을 협회 이름으로 통폐합하는 수완을 발휘하여 불협화음을 잠재운 일이 있다.

"이용일은 30대에 경성고무를 맡아 운영한 실무 경험을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나이 적에 야구장만 뛰어다녔으므로 행정력이나 결단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해 조언자로서 한 몫을 했지만 일을 추진하는 데는 이용일을 따라가지 못했다. 때문에 그를 총장 감으로 꼽고 있었다."

이상주 수석과 헤어진 뒤 이용일과 자리를 같이 한 이호헌은 "자네가 총장을 맡고 나는 차장을 맡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운을 떼었다. 이용일도 이의가 있을 턱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이호헌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네. 우리 둘이서 손 잡고 잘해 보세. 그리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다음 총장은 자네가 맡는 것으로 하세."

이용일이 총장직을 수락 함으로써 외부 인사, 특히 박종환이 끼어들 틈이 없어졌다. 또 이 사실은 이상주 수석에게 알려 OK까지 받아냈다. 남은 절차는 프로야구 커미셔너로 내정된 서종철 장군에게 보고한 뒤 총회에서 인준을 받는 일뿐이었다.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며칠 앞두고 이용일과 함께 서 장군을 찾아갔다. 사무총장은 총재의 추천으로 총회에서 인준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총재될 분이 미리 알아야 했다. 또 그 동안 있었던 일도 보고한 뒤 '총장은 이용일씨가 맡기로 했습니다. 마음 속에 꼽아 놓으신 분이 없으시면 저희들 뜻을 받아주십시오' 했다. 서 장군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죄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서종철 장군이 더 반가워 하는 것 같았다. 서 장군은 이호헌과 이용일의 손을 잡고 흔들며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잘해 봅시다." 아주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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