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OB 베어스 감독을 맡아 우승을 뽑은
"우리가 한 발 늦었어요. 김 감독에게 전화를 했더니 '무슨 일이냐?'고 해요. 여차여차해서 MBC 감독을 맡기려고 하니 자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아이구! 하루만 일찍 연락을 주시지요. 지금 막 두산에 계신 분들과 OB 감독을 맡기로 약속하고 돌아온 길입니다' 하며 아주 애석해 합디다. 김 감독은 신문 지상에 MBC 감독 설이 나돌자 연락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가족들이 서울에 살고 있으므로 프로야구 감독을 한다면 MBC에서 하고 싶었대요."
그건 사실이었다. 프로야구 창립 소식이 나돌면서 자신이 MBC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영덕은 판세의 흐름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한국화약으로부터 입은 은혜, 특히 천안북일고 감독으로 이끌어준 김종희(金鍾喜) 회장에 대한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했을 뿐이었다.
OB 베어스 감독을 맡은 지 한참 뒤 김영덕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로 천안북일고와 김종희 회장을 못 잊어했다.
"77년 9월 말 천안북일고 감독으로 옮겨 4년을 재직하며 김 회장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은혜를 입었다. 보수도 후했다. 세금 제하고 95만원을 받았으니까 프로야구 부러울 게 없는 대우였다."
'프로야구창립계회서'를 보면 감독의 보수로 A급인 경우 계약금 2천만원에 연봉은 1천2백만원으로 나와있다. 그러니까 A급 감독인 경우 연봉만을 놓고 보면 천안북일고와 막상막하였다.
"김 회장님을 생각하면 프로에 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보수가 문제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놔두질 않았다. 신문에 MBC 감독 설이 나돌면서 전화통에 불이 났다. 받아 보면 "MBC 감독으로 간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게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학교 관계자들까지 프로 감독을 맡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참 답답했습니다. 누가 물으면 '나더러 프로로 가라는 것이냐?'고 화를 냈지만 나도 자신이 없었어요. 그때는 누가 나서서 '프로에 가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막아주길 바라는 마음과 '빨리 떠나라'는 마음이 반반이었다고 할까요? 내 자신을 컨트롤할 수가 없었어요."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며칠 앞둔 때였다. 김영덕 감독이 천안북일고에서 서무를 맡고 있는 유 국장 집 돌잔치에 갔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두산에서 전화가 왔는데 최인철 회장이 아침 식사를 같이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김영덕 감독은 '올 것이 왔구나' 했다.(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