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82년) MBC 감독겸 선수로 국내 무대에 선 보였던 백인천 감독은 83년 4월 24일 가정문제로 해임된 뒤 6년 6개월 만에 MBC 감독으로 복귀 했다. 사진은 백인천 감독(왼쪽)이 89년 11월 7일 MBC와 감독 계약을 끝낸 뒤 이건영 구단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MBC 청룡' 유니폼을 보여 주고 있는 장면
"배 감독더러 잠시 기다리라 해놓고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김병주 관리이사가 급히 찾는다는 전갈이 왔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김 이사 방엘 갔죠. 이용일 총장이 있어요. 반가운 마음에 '웬 일이냐?'고 했더니 백인천이 일본에서 아주 귀국한다는 겁니다."
백인천이 아주 귀국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국내 프로야구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본야구를 청산한다는 뜻이었다.
"조 국장, 이 참에 MBC를 맡기는 게 어때요?"
백인천은 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긴테스(近鐵) 버팔로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런 그가 돌아와 한국 프로야구에 합류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더욱이 백인천을 감독으로 영입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정말 입니까? 백인천일 감독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까?"
조광식 국장은 조금은 흥분한 목소리로 이용일 총장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면서 배성서 감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 국장은 지금 자기 방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배성서 감독과 백인천을 비교해 보았다. 아니었다. 어떻게 뜯어봐도 백인천이 훨씬 커 보였다. 프로야구를 갓 시작하는 마당이어서 백인천이란 인물이 더욱 커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핫핫핫…. 내가 누굽니까? 백인천이 문제는 내게 맡기세요. MBC가 좋다고 하면 당장 불러 들여야지."
이용일 총장이 그 특유의 호기로운 웃음을 흘리며 자신만만해 했다. 백인천은 이 총장의 경동고 후배였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백인천은 선배에게 모든 문제를 일임해 놓고 있었다.
"이래서 MBC 감독은 백인천으로 굳힐 수 밖에 없었어요. 경동고 시절에는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렸고 일본에 진출한 뒤에는 타격왕에 올랐던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지요. 그 보다 프로야구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MBC 감독으로는 금상첨화였죠."
MBC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배성서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가 막일 노릇이었다. 구단주(이진희 사장) 면담을 앞둔 마당에 백인천의 출현으로 운명이 뒤바뀌었으니 가슴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