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버림 받았던 배성서 감독(오른쪽)은 5년 뒤 빙그레 이글스 감독으로 MBC와 일전을 겨뤘다. 사진은 86년 4월 1일 대전 개막전에서 맞붙게 된 MBC 청룡의 김동엽 감독과 꽃다발을 나란히 목에 걸고 화인 플레이를 약속하듯 악수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젠장, 내 그럴 줄 알았다구. 어쩐지 양복 입고 오라고 할 때부터 기분이 찝찝하더라니까. 처음부터 정말 이상했어."
조 국장으로부터 "백인천이 감독으로 오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배 감독은 얼굴이 시뻘개져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떡하냐?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 네가 이해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이, 배 감독! 기회는 또 올 거야. 다음엔 목숨 걸고 널 밀 테니 이번은 없었던 일로 하자."
조 국장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배 감독의 이해를 거듭 구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 국장의 말을 들은 배 감독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형! 내가 MBC 감독을 못해서 환장한 놈 같소? 내가 언제 MBC 감독을 한다고 했어! 싫다는 놈 붙들고 사정 사정하며 억지로 떠맡겨 놓고 이제 와서 뭐요? 백인천이 땜에 안 된다고? 이건 정말 형답지 안잖아! 이게 뭐요? 가만 있는 놈 감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도 유분수지…."
"알았어, 알았어! 모든 게 내 잘못이다. 배 감독 기분 백 번 이해해. 자, 동생. 날 용서해 다오."
조 국장은 두 손으로 배 감독의 손을 움켜잡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배 감독도 자신이 너무했다 싶었던지 목소리를 낮추고 오히려 조 국장을 위로했다.
"잘 됐어, 형! 정말이야. 대학에 있다가 대표팀 감독 한번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오히려 잘 된 것 아니우?"
조광식 국장은 자신의 처지까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배성서 감독이 고맙기 그지 없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