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박건배 구단주(왼쪽)와 김동엽 감독. 이들은 광주일보 김종태 사장이 다리를 놓아 인연을 맺었지만 김동엽 감독은 프로야구 개막 한 달 2일 만인 4월 29일 코치들과 불화로 해태 유니폼을 벗었다.
해태가 프로야구에 뛰어들게 된 것이 김종태 사장의 각별한 권유 때문이었던 것처럼 김동엽도 마찬가지였다. 해태는 프로야구 참여와 함께 김동엽에게 팀 구성에 관해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다.
그런데 프로야구 창립을 추진한 이호헌과 이용일은 해태 감독으로 전남야구의 전설적인 인물인 김양중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김동엽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이어서 연고성이 없어 전라도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전라도에서 김양중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호남야구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김동엽을 젖혀두고 김양중을 해태 감독으로 앉히기 위해 영입 작업에 들어갔다."
김양중의 감독 영입 작업은 이용일이 맡았다. 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봐, 양중이. 자네가 호남지역을 맡았으면 하는데, 어떤가? 부산은 장태영일 앉힐 계획이야. 이리 되면 영호남의 거물들이 감독을 맡게 되는 거니 대단한 인기를 끌 것으로 보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 사람, 나는 안되네. 고혈압으로 사무 보는 것도 힘들어. 마음 같아선 고향(광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네만 몸이 말을 들어야지. 소문을 듣자 하니 동엽이가 맡는다며? 잘 골랐다 했지. 쇼맨십이 강해 인기도 끌고 잘 할거야. 난 뒤에서 돕는 것으로 하세."
김양중은 오래 전부터 고혈압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용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본인의 입을 통해서는 병의 상태가 어떻다고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인이 고혈압을 내세워 사양하는 데는 이용일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래서 호남지역은 김동엽이 자연스럽게 감독을 맡게 됐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