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김현철 회장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창단 감독으로 내정됐던 김진영 인하대 감독(왼쪽). 김 감독은 82년 11월 11일 삼미 사령탑을 맡아 뒤 늦게 합류했다. 사진은 82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 부문 수상자 오대석(오른쪽)에게 축하 악수를 건네는 장면.

김현철 회장은 불만을 속으로 삭이며 돌아가는 판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김 회장의 심중을 알길 없던 신문들은 김진영이 삼미 감독으로 내정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진영 감독 영입은 이용일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이용일이 김 감독을 프로야구에 끌어들이기 위해 기자들에게 흘린 게 기사화됐을 뿐이었다.

"이용일을 만났더니 프로야구에 꼭 참여해서 인천야구를 중흥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무렵 내 입장에선 프로에 뛰어들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학교(인하대)에 남아 좀 더 지켜본 뒤 참여해도 늦지 않다고 보았다."

김진영 감독의 말이다. 김 감독은 인하대를 맡을 때 프로야구와 맞먹는 대우를 받은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러니 프로야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프로야구 참여를 거부한 속사정은 엉뚱한데 있었다.

프로야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진영 감독은 따돌림을 받았다는 서운한 감정을 안고 있었다. 원인은 이러했다. 삼미가 인천 및 경기 강원지역을 연고지로 팀을 창단하기로 결정하자 김 감독은 삼미나 프로야구 추진위 쪽에서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코치의 선발은 물론 선수 스카우트 등 숱한 난제들을 찾아와 상의할 줄 믿었다. 그러나 삼미와 추진위 쪽에서 계속 침묵을 지키자 서운한 감정이 싹터 끝내는 프로를 부정적으로 대하게 됐다.

김진영 감독이 이런 감정을 깔고 프로야구 참여를 거부하는 바람에 삼미 감독은 자연스럽게 박현식에게로 기울 수 밖에 없었다.

"프로야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이씨(이호헌, 이용일)의 생각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감독을 맡아야 권위가 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MBC 감독으로 추천했던 것 같다. 그러나 MBC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고 엉뚱하게 삼미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박현식 역시 삼미 감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삼미 김현철 회장은 김진영 감독이 감독 제의를 거부했다는 말만 듣고 박현식을 감독으로 지명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