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 박현식 감독. 82년 1월 8일 삼미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관철동 삼일빌딩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4월 26일 춘천에서 벌어진 OB전에서 11-12로 역전패를 당해 3승10패의 전적을 남기고 총감독으로 물러나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단명 감독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김진영 감독이 인하대에 남는 것으로 77년 제일은행 명동지점장을 거쳐 81년에는 부평지점장으로 나가 있어 야구와는 담을 쌓고 있었다. 그것도 정년을 2년8개월 앞두고 있어 야구에 대한 감각이 염려스러웠다.
뜻을 굳힌 뒤였던가? 하루는 박현식을 만나 삼미 감독에 대한 의사를 타진한 일이 있었다. 대뜸 '싫다'는 거였다. MBC라면 몰라도 삼미는 전력이 약해 망신 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행원으로 정년을 맞을 테니 삼미 얘기는 두 번 다시 꺼내지 말라'고 했다."
박현식을 설득하기 위해 그를 만났던 이호헌은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여 갖고 온 셈이 됐다.
이런 박현식의 뜻은 김현철 회장의 귀에 들어갔다. 김 회장이 생각할 땐 큰 일이나 다름없었다. 김진영 감독에 이어 박현식까지 거부하면 인천지역은 감독 공백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들에 버금 가는 인물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김현철 회장은 자존심이 상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생각 끝에 찾아낸 게 간접 공략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삼미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이 제일은행이었다.
김현철 회장은 제일은행 이필선 행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로 했다. 우연스럽게도 이필선 행장은 박현식과 인천 창영국민학교(현 창영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셨더군요. 신문지상을 통해 삼미가 인천을 근거지로 프로야구 야구팀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고향 인천에도 프로야구 팀이 생긴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필선 행장이 김회장의 손을 잡으며 축하의 말을 건냈다. 김 회장은 이때다 싶어 한 마디 했다.
"행장님께서 고향을 위해 꼭 도와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김 회장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내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부평지점장으로 계신 박현식씨를 우리 팀의 감독으로 모셔가야 하겠습니다."
"옛?"
이필선 행장이 깜짝 놀랄 만도 했다. 이 행장은 김 회장이 도와달라고 할 때 자금 지원 아니면 팀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격으로 일선 지점장을 내놓으라 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점장이 된지 겨우 1년이 된 자신의 소꿉친구 박현식을 달라고 하는 데는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