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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파일> 프로야구 탄생(37)

기사입력 [2006-12-22 10:26]

제일은행 이필선 행장 위해 김회장 만나 인품에 반해
김현철 회장, 인천 팬 위해 삼미 감독 맡아 달라 간청

제일은행 부평지점은 박현식이 지점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예금고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박현식이 지점장으로 오고 난 뒤 부터 하루가 다르게 예금고가 늘어나 이필선 행장은 한시름을 놓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야구로 이름을 떨친 박현식의 힘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필선 행장은 이런 박현식을 떠나 보내는 게 옳을지 아니면 붙잡아 두는 게 옳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일개 은행 지점장을 넘어 친구의 앞 일을 걱정하는 마음도 깔려 있었다.

"자네, 삼미에서 감독으로 오라고 했다는데 생각이 어떤가? "

이필선 행장은 생각다 못해 박현식 지점장을 불러 그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그가 감독을 받겠다고 한다면 붙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슨 소리요? 난 은행에서 정년을 맞을 생각이오. 감독은 그 뒤에나 생각할거요."

"잘 생각했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은행에 남는 것으로 하세."

이필선 행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김현철 회장이 마음에 걸려 편치 않았다. 젊은 사람이 열의를 갖고 뛰는 마당에 재를 뿌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박현식을 내주지 않았다간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것도 같았다.

"혹시 나 때문에 입장이 거북해지는 게 아니오?"

이필성 행장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듯 박현식이 입을 열었다.

김현철 회장의 간청으로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사령탑을 맡은 박현식 감독(가운데)이 코치로 이선덕(오른쪽), 이춘근(왼쪽)을 끌어들여  82년 2월 5일 인천에서 창단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이 사람, 거북해질 일이 뭐 있겠나? 김 회장이 모처럼 큰 기대를 걸고 부탁한 일인데 의기를 꺾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일세."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김현철 회장을 내가 한 번 만나보지요. 이 행장이 오해 받지 않도록 내 입장을 말하리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니 내가 이리 불러 보지요."

박현식이 제일은행 행장실에서 김현철 회장을 만난 것은 12월 초순께였다. 말로만 듣던 김 회장을 만난 박현식은 깜짝 놀랐다.

삼미그룹의 회장쯤 됐으니 나이 지긋한 영감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행장이 소개한 김 회장은 새파란 젊은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 회장은 방년 31살의 청년이었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는 오래 전부터 홈런왕 박현식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김현철 회장의 겸손함에 박현식은 또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나이에 회장이 됐으니 아주 거만할 것으로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작 찾아 뵙고 상의를 드렸어야 옳은데 바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결례를 했습니다. 행장님으로부터 대강 말씀을 들어 아시겠지만 어떠십니까? 저와 인천 야구팬들을 위해 감독을 맡아 주십시오."

김 회장의 간곡한 청이었다. 박현식은 할 말을 잃은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 행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저렇게 간청하시니 감독을 한 번 맡아보시지요. 인천 야구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시고 김 회장의 간청을 들어 드리세요."

"인천 야구를 빛내고 싶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전력이 너무 약해요.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어떻게 빛을 냅니까?"

박현식의 말에 가능성을 찾아낸 듯 김 회장은 거침없이 한 마디 했다.

"승패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박 선생님만 와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박현식은 자신도 모르게 김 회장에게 점점 이끌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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