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회장의 간청으로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사령탑을 맡은 박현식 감독(가운데)이 코치로 이선덕(오른쪽), 이춘근(왼쪽)을 끌어들여 82년 2월 5일 인천에서 창단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이 사람, 거북해질 일이 뭐 있겠나? 김 회장이 모처럼 큰 기대를 걸고 부탁한 일인데 의기를 꺾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일세."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김현철 회장을 내가 한 번 만나보지요. 이 행장이 오해 받지 않도록 내 입장을 말하리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니 내가 이리 불러 보지요."
박현식이 제일은행 행장실에서 김현철 회장을 만난 것은 12월 초순께였다. 말로만 듣던 김 회장을 만난 박현식은 깜짝 놀랐다.
삼미그룹의 회장쯤 됐으니 나이 지긋한 영감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행장이 소개한 김 회장은 새파란 젊은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 회장은 방년 31살의 청년이었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는 오래 전부터 홈런왕 박현식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김현철 회장의 겸손함에 박현식은 또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나이에 회장이 됐으니 아주 거만할 것으로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작 찾아 뵙고 상의를 드렸어야 옳은데 바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결례를 했습니다. 행장님으로부터 대강 말씀을 들어 아시겠지만 어떠십니까? 저와 인천 야구팬들을 위해 감독을 맡아 주십시오."
김 회장의 간곡한 청이었다. 박현식은 할 말을 잃은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 행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저렇게 간청하시니 감독을 한 번 맡아보시지요. 인천 야구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시고 김 회장의 간청을 들어 드리세요."
"인천 야구를 빛내고 싶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전력이 너무 약해요.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어떻게 빛을 냅니까?"
박현식의 말에 가능성을 찾아낸 듯 김 회장은 거침없이 한 마디 했다.
"승패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박 선생님만 와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박현식은 자신도 모르게 김 회장에게 점점 이끌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