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구단, 어우홍 감독 불러내어 "팀 맡으라" 간청
정식 계약 하루 전에 "없었던 일로 하자" 전화 통보
한국전력의 어우홍 감독도 야구에 관한 한 부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이름난 인물이었다. 한국전력 전신인 남선전기에서 선수와 코치(59~61년)로 뛴 그는 60년 부산상고(60~62, 65~66년)와 경남고(67~70, 73년)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79년 한국전력 감독으로 대권을 잡은 그는 80년 10월 대망의 국가대표 팀 감독을 맡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82년 9월 서울)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부산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때문에 조동래 부사장이 장태영의 대타로 어우홍 감독을 찍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부사장은 즉각 교섭에 나섰다.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며칠 앞둔 때였던 것 같다. 조동래 부사장의 전화를 받은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나하고는 소학교(현 초등학교) 친구였지만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화 목적은 조용히 만나 상의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약속한 장소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 1층에 있는 중국음식점 '도림'이었다. 저녁 5시에 만나자고 했다. 어우홍 감독은 조 부사장이 소문내지 말고 나와주기를 원했으므로 집에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나갔다.
81년 12월 초 롯데 창단 감독으로 내정됐던 어우홍 감독(왼쪽)과 83년 11월 롯데 전무이사가 된 박종환씨. 어우홍 감독은 87년 10월 29일 롯데 사령탑을 맡아 박종환 전무와 2년간 한 솥 밥을 먹었다.
"집을 나오면서 내 딴에는 롯데가 프로야구를 시작했으니까 국가대표 팀에 묶여있는 투수 최동원(투수)과 심재원(포수)을 끌어가기 위해 양해를 구하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 나더러 감독을 맡으라는 거였다."
어우홍 감독의 입장에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어 감독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조 부사장의 감독 제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사양했다. 하지만 조 부사장의 뜻이 너무나 간곡해 승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 부사장은 아주 기뻐하며 내 손을 잡고 됐다고 했다. 정식 계약은 내일 하자고 했다. 오전 중으로 오너(신격호 회장)의 결재를 받아 즉시 연락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계약금이 얼만지 연봉이 얼마며 계약기간이 언제까지인지도 모른 채 어 감독은 조 부사장과 헤어졌다. 조 부사장이 "대우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해서 느긋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막 돌아왔는데 박종환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롯데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했다. '잘 돼 간다'고 했더니 만나자는 거였다. 바쁜 일도 없고 해서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박종환씨가 이것저것 물어서 조 부사장을 만나 감독을 맡기로 했다는 말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그를 믿었기에 전부 말했는데 그게 내 실수였다."
이튿날 오전 중으로 연락을 주겠다던 조 부사장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어 감독은 일이 심상찮게 꼬였음을 직감했다.
"조동래 부사장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후 4시쯤이었다. 오전 중에 전화하겠다던 사람이 4, 5시간 지나서 전화했으니 뻔한 것 아닌가?"
내용은 간단했다. 어제 있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 감독은 박종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훼방을 놓은 게 아닐까? 그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박종환에 대한 의혹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홍순일/news@phot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