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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탄생(44)

기사입력 [2007-01-03 10:42]

어우홍 감독, 재고 요청하자 "없었던 일로" 묵살
구단주, 경남고 동기인 박영길을 감독으로 확정

"조동래 부사장이 통화하는 내용을 듣다 보니 상대가 어우홍 감독임을 알게 됐다. 어 감독은 무언가 다시 한번 검토해주기를 요청하는 것 같았고 조 부사장은 '구단주의 결심이 너무나 확고해 어쩔 수 없다'며 아주 미안해 했다. 이때 나는 어 감독이 롯데와 감독 교섭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나는 어 감독에게 배신 당한 느낌을 받았다."

어우홍 감독은 프로야구 창립이 무르익어 갈 무렵만 해도 후배들에게 "프로야구는 언제 망할지 모르니까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사실을 박영길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뒤로는 롯데와 감독 교섭을 벌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박영길 감독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어우홍 감독을 프로야구에 합류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었다.

"어 감독이 자의든 타의든 롯데와 감독 교섭을 벌였다는 사실은 그분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낸 예였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부산야구의 대선배인 어우홍 감독이 고향을 위해 일해 주기를 원했다."

박영길 감독이 조 부사장을 찾아간 것도 자신을 포함해 어 감독의 거취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조 부사장과 어 감독은 소학교(현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어서 어 감독 거취문제라면 조 부사장도 외면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감독문제를 놓고 교감을 주고 받았으니 박 감독은 할 말이 없게 된 셈이었다.

롯데 창단 감독으로 확정된 박영길 감독. 그러나 83년 롯데에서 중도 퇴진, 한을 남겼던 박영길 감독은 87년 삼성 감독을 맡아 전 후기리그를 석권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패해 천추의 한을 남겼다.

사진은 88년 9월 13일 박영길 감독이 플레이 오프 진출이 확정되어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게 또 패해 11월 삼성을 떠났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총회가 있기 전 박영길 감독은 어우홍 감독을 만난 일이 있다. 그때 박 감독은 어 감독에게 롯데구단 이사를 맡아 달라는 뜻을 내비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 감독은 말이 없었다.

박영길 감독은 그때만해도 어 감독이 프로야구 탄생을 앞장 서서 반대하던 분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 감독 마음 속에는 롯데 이사가 아닌 감독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박 감독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사실이라면 어 감독은 두 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한 마리도 못 잡는 신세가 된 것이다.

어우홍 감독이 노렸던 '롯데 감독' 자리는 박영길 감독에게 돌아갔고 박영길 감독이 추진하던 구단 이사 자리는 롯데그룹 홍보실의 정학재 부장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박영길 감독이 롯데 창단 감독에 발탁된 것은 그의 개인적인 능력도 참작됐지만 그 보다는 경남고 동문들의 지원 사격이 절대적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박영길 감독이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그룹 내 몇몇 임원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팀이 속해 있던 롯데제과의 민제영 전무는 노골적으로 박 감독을 싫어했다.

"사생활 문제나 인간 됨됨이가 온전치 못하다"는 게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때문에 이런 인물이 프로야구 롯데 감독을 맡아서는 안 된다며 반대에 앞장 섰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감독으로 발탁된 것은 청와대 이학봉 수석 비서관의 힘이 크지 않았던가 싶다. 나는 박종환씨가 이학봉 수석을 움직여 박영길이 감독이 됐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하룻밤 사이에 감독이 뒤바뀔 수는 없다고 본다."

어우홍 감독의 말이다. 그러나 롯데 창단 코치를 맡았던 김명성은 다른 말을 했다. "장태영씨가 거절하고 어우홍씨가 비토 당한 상태에서 감독할만한 인물이 없다 보니 신준호 구단주는 차선책으로 경남고 동기동창인 박영길 감독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영길 감독은 어부지리로 롯데 자이언츠의 대권을 잡은 셈이다. (홍순일/news@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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