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야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MLB(Major League Baseball)는 National League(내셔널리그)와 American League(아메리칸리그)를 운영하는 조직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내셔널리그의 시작은 빌 길스 커미셔너가 1876년 설립하여 15개 팀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첫 해 우승팀은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 구단이었다. 물론 내셔널리그의 창설 전에 1870년 시카고 컵스, 187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882년 신시내티 레즈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88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의 전신 구단들이 창설되어 무려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시기쯤 우리나라는 신미양요(1871년), 강화도조약(1876년), 갑신정변(1884년) 등의 조선 말 혼란의 시대임을 감안하면 MLB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들이 다시금 대단해 보인다.
1930년대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루 게릭은 2,130경기 연속출전의 메이저리그 신기원을 이룩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원인 모를 병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훗날 루 게릭 병으로 명명)으로 사망한다. 팀동료 베이브 루스가 은퇴식이 끝난 뒤 루 게릭과 우정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또한 아메리칸 리그는 프랭크 로빈스 커미셔너가 1901년 창설하였고, 15개 팀으로 시작하였다. 불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시카고 화이트 삭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미네소타 트윈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초창기 창설과 함께 만들어진 구단들이다. 1973년부터 지명타자제를 실시하고 있어 내셔널리그와 달리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 지명타자가 타순에 배치된다는 점이 다르다. KBO리그도 아메리칸리그처럼 지명타자제를 실시하고 있어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다.
버뎃은1950년 밀워키 브레이브스에 입단하면서 메이저리그 구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버뎃은 슬리이더와 싱커를 주무기로 1967년 은퇴하기까지 18년 동안 통산 203승 144패, 평균 방어율 3.66을 기록했다.
MLB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 감독이 판정에 불복하여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초창기 내셔널리그는 미국의 동부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북부지역의 독립리그였던 웨스턴리그가 1901년 아메리칸리그로 확대 개편되어 비로소 양대리그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백인들의 잔치인 화이트리그였다가 1947년에 비로소 흑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리그이기도 하다. 이후 1957년 브룩클린 다저스(현재 LA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각각 LA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동, 서부에 구단들이 정착하여 실질적으로 미국 대표 프로리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한 1969년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구단이 창단하면서 미국을 벗어나 아메리카 대륙을 포괄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난 계기는 1995년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부터 이다. 물론 1960년 최초의 동양인 메이저리거인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을 했던 사례는 있으나 성공적인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노모 히데오의 성공으로 아시아라는 시장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후 전설이 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등의 붐을 조성한 일본 파워에 주목하여 MLB의 대표 구단인 뉴욕 양키스 역시 전통을 고수하는 입장을 바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존재인 마츠이 히데키를 영입하면서 일본 시장을 공략하였고, 왕치엔밍 등의 타이완 선수를 영입하여 최대 시장인 중국까지 진출하여 중국 내 야구 아카데미 설립 등 각 구단별 세계화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노모 히데오는 한국전에 선발로 나와 승리 투수가 되었다. 2년후 노모는 긴데스 버팔로스에 입단을 했고, 1994년부터 LA 다저스의 박찬호 선수와 함께 팀을 이끄는 주축 선수로 성장하면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 야구의 전설 스츠키 이치로가 WBC 한국전에서 안타를 치고 1루에서 한국의 김태균선수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다.
MLB도 리그 통합 후 전 세계에 야구를 보급하고, 시장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막전을 해외에서 개최하는 이벤트이다. 1999년부터 기획된 이 이벤트를 통해 어느 정도 야구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를 대상으로 해외 야구팬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도 활용하고 있는데, 한 편으로는 꿈의 무대에 대한 희망을 청소년들에게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 박찬호 선수는 고등학교 시절 국제 대회 참가를 위해 미국 LA다저스 구장에 처음 방문하여 꿈을 키우기 시작해 결국 국내 1호 메이저리거가 되어 꿈에 그리던 LA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선발투수로 큰 활약을 하였다.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 선수가 콜로라도 로크스의 간판타자인 토드 헬튼과 맞대결을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스프링캠프 훈련첫날 이상훈선수가 자신과 모양새가 비슷한 로드벡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있다.
1999년에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2000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그리고 2001년에는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에서 각각 빅 이벤트가 벌어져 해당 국가의 야구 팬들은 꿈의 리그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큰 행운을 갖게 되었다. 개최지 선정에 있어서 가장 큰 기준은 바로 각 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인기가 있는 선수가 MLB에서 큰 활약을 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1999년 멕시코 개최는 당시 멕시코 야구 우상이었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카스티야 몬테레이가 있었고, 2001년 푸에르토리코가 선정된 이유는 당시 시카코 컵스의 홈런타자 새미소사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2004년, 2008년, 2012년에는 일본 도쿄돔에서 열렸는데, 이 역시 뉴욕 양키스 마쓰이, 보스턴 레드삭스 마쓰자카, 시애틀 마리너스 이치로가 활약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2014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LA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개막전을 가져 시장 개척에 나섰는데, 이때 우리나라 류현진 선수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기록이 있다. 또한 2019년에는 이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시애틀 마리너스의 개막전이 일본 도쿄돔에서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오클랜드 구단의 외국 개막전 선호 경향과 맞물려 시애틀의 전설 스츠키 이치로의 은퇴와 맞물린 행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야구의 강타자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간판이었던 히데키 마쓰이 선수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모습. 이후 마쓰이는 MLB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여 활약하게 된다.
2014년 LA 다저스에서 활약한 류현진은 이번 시즌 총 26경기에 출전해 14승 7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하고, 한국에 입국하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울러 MLB는 야구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WBC(World Baseball Classic)를 통해 실질적으로 야구의 세계화, 정확하게 얘기해서 메이저리그가 지배하는 세계 야구시장 점유를 위한 공략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송중계권, 입장 수익, 광고 수익 등의 재원 확대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당시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은 “야구는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이제는 세계의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야구 시장 지배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세계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여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고의 리그를 만들고, 올해 NC 다이너스에 입단한 대만의 왕웨이중 선수의 사례처럼 아시아 국가의 유망 선수들을 국내 리그로 영입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대만 선수의 영입으로 대만의 방송국과 중계권 판매, 대만 기업 광고 유치 및 관광객 유치 등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보다 좋은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국 전문기자 / navyj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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