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들의 등번호는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간의 구분을 위해 시작됐지만, 이제는 단순히 구분의 의미로만 인식되지는 않는 것 같다. 종목마다 개인마다 등번호에 대한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배번(背番)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없다. 그러나 각종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축구의 경우 1928년 영국에서 처음 등번호가 등장하였는데, 골대를 기준으로 골대에서 멀어지는 순서대로 등번호를 달았던 전통이 있었고, 야구에서는 MLB 리그에서 1929년 처음으로 뉴욕 양키스 팀이 등번호를 달기 시작하여 확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영문 표기로는 유니폼 넘버(uniform number) 또는 저지 넘버(jersey number)가 일반적인데 주로 쓰이는 용어는 저지 넘버(jersey number)이고, 흔히 우리나라에서 백 넘버(back number)라고 부르는 용어는 일본식 영어인 재플리시(Japlish)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올스타전’ 경기에서 나눔올스타가 드림올스타에 10-5로 승리를 거뒀다. 경기 종료 후 올스타 선수들이 우정을 다지고 있다.
먼저 축구의 등번호 역사를 살펴보면, A매치 경기에서만 의무적으로 등번호를 부여했던 축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처음 등번호가 등장했는데 이때는 각국 선수들의 이름 순서대로 등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각국 축구협회에서 선수들의 등번호를 미리 정해 FIFA에 알리도록 제도를 변경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당시 슈퍼스타였던 브라질의 펠레 선수는 브라질 축구협회에서 등번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FIFA 직원이 부여해 주었다. 브라질 축구협회에서 행정착오로 선수들의 등번호를 보내지 않아 우루과이 출신의 FIFA 직원이 펠레의 등번호를 10번으로 임의 배정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축구에서 10번은 각 팀 최고의 선수들에게 부여되는 상징적 숫자가 되었다. 이때 FIFA 직원이 다른 번호를 주었다면 그 번호가 최고 선수의 상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각국의 스타 선수들이 10번을 달고 뛰게 되었는데,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등의 전설은 물론 지네딘 지단(프랑스), 마이클 오언(잉글랜드), 호나우지뉴(브라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까지 그 전통은 이어오고 있다.
축구 전설 펠레의 어린시절 모습
또한 특급 골잡이이자 팀 내 득점이 가장 많은 선수들은 주로 9번의 배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까지 등번호 10번 선수가 넣은 골은 총 232골이었고, 9번 선수들은 총 255골을 기록해 10번 선수들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나우두(브라질), 웨인 루니(잉글랜드, 크레스포(아르헨티나), 토니(이탈리아), 반니스텔루이(네덜란드) 등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11번은 보통 가장 스피드가 빠른 선수들을 거론하곤 한다. 11의 의미가 100m를 11초 안에 달릴 수 있는 선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차범근 선수를 비롯하여 클로제(독일), 라르손(스웨덴), 테베스(아르헨티나), 조 콜(잉글랜드) 등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팀의 상징이자 미드필드 에이스는 7번의 스타선수들이 많다.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라울 곤잘레스(스페인), 세브첸코(우크라이나), 박지성(대한민국) 선수 등이 있는데 특급 골잡이로 유명한 호날두(포르투갈)는 9번보다 7번을 선호하는 선수이다. 최근 이적설이 있는데 유벤투스의 7번으로 새 둥지를 마련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의 모습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지네딘 지단의 모습
야구의 경우 뉴욕 양키스 구단에서 1929년 처음 시작되었는데, 등번호가 그냥 타순이었기 때문에 베이브 루스가 3번, 루 게릭이 4번으로 지정된 것이다. 또한 루 버뎃(33번), 조 디마지오(5번), 요기 베라(8번), 놀란 라이언(30번), 샌디 코팩스(32번), 마리아노 리베라(42번), 데릭 지터(2번), 페드로 마르티네스(45번), 알렉스 로드리게스(13번) 등 야구는 축구처럼 번호를 1~23번 정도로 한정하지 않고, 00~99번 까지 자유롭게 지정하면서 선수들의 선호에 맞게 배번이 이루어졌다. 박찬호 선수의 경우 16번을 선호하였으나 LA다저스 시절 입단 시 노모 히데오 선수가 이미 배번을 받아 61번으로 정하였다고 알려져 있고, 류현진 선수의 경우는 한화 시절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로 99번을 선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 김병현(49번), 서재응(40번), 추신수(17번), 오승환(26번), 강정호(27번), 이대호(10번), 박병호(52번), 김현수(25번) 등의 한국 메이저리그들도 다양한 번호를 부여받아 활약하였다.
뉴욕양키스의 전설 베이브 루스(등번호 3번)의 모습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루 버뎃 선수(등번호 33번)의 역투하는 모습
한편 MLB의 역사가 워낙 길어 특별한 등번호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것은 바로 재키 로빈슨의 42번이다. 1887년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의 구단주가 흑인을 구단에서 퇴출시키면서 흑인선수를 영입하지 않는 불문율이 계속 이어지다가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리키 단장이 재키 로빈슨의 재능을 보고 흑인을 영입하게 된다. 관중들의 야유와 상대 투수의 빈볼 시위, 팀 동료들과의 부조화 등 온갖 역경 속에서도 그는 내가 좋은 성적을 내야 흑인 선수들이 이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10년 간 무려 리그 6회 우승에 이바지 하였고, 1955년에는 팀 창단 최초로 월드시리즈 정상에도 올랐다. 이후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선수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1962년 흑인 최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은퇴 후 흑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헌신하다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97년 MLB 사무국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42번을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고, 4월 15일(브루클린 다저스 입단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하여 모든 선수와 코치진 그리고 심판까지 42번을 달고 뛰게 되었다. 이 번호가 MLB 야구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등번호가 된 것이다.
캔자스시티 로얄즈 홈구장에서 재키로빈슨 데이를 맞아 선수들이 모두 42번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출처 : MLB 홈페이지)
이 밖에 국내에서는 야구선수 중 왼손 간판타자들은 10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설의 재일동포 4할 타자 장훈 선수의 영향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장효조, 양준혁, 김기태, 이숭용 선수 등이 10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또한 농구에서도 10번은 3점 슈터들이 주로 선호하는 번호로 김현준, 조성원, 문경은, 김병철, 우지원 선수가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사연의 번호들은 롯데 공필성 선수는 자신의 성을 따 0번을 달았고, 수비위치 번호인 7번을 선호했던 김재박 감독은 박진만 선수가 입단하자 7번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차범근 감독의 11번은 차두리 선수가 국가대표시절 부여 받았던 번호였고, 삼성의 배영수 선수는 고졸 선수로 25살까지 최고의 투수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25번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국내 야구의 한 획을 그은 이승엽 선수는 36번이었는데, 이유는 당시 홈런왕이었던 장종훈 선배(35번)를 뛰어 넘겠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연습생 출신 홈런왕의 신화를 쓴 한화 이글스 장종훈 선수의 타격 모습
이제 스포츠에서 등번호는 선수들의 제 2의 이름처럼 상징적 의미가 되었고, 종목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역시절 상징적 번호를 부여받는 것도 중요한 가치가 있고, 그 번호를 부여 받고 많은 업적을 쌓아가는 것이 선수들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 바람의 종착역이 바로 전설의 선수로 인정받는 영구결번은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종목마다 다른 방식으로 스타 선수들을 기념하지만, 보통 영구 결번은 성적도 중요하고, 선수의 사생활과 프랜차이즈 스타 여부도 함께 평가가 되기 때문에 결코 아무나 영예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등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거나, 새로운 선수나 상대 팀 선수의 등번호를 보면 보다 흥미로운 관람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진국 전문기자 / navyj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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