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인 카르텔(Kartell)은 원래 동일 업종의 기업들이 이윤의 증대를 위해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해 협정을 맺는 일종의 시장 독점 연합 형태를 의미한다.
미디어에서 종종 보도가 되는 ‘담합’이라는 용어가 바로 카르텔과 같은 의미로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로 규정한다. 이러한 카르텔은 기업 간 경쟁으로 인한 이익을 소비자들로부터 박탈하고, 기업에게는 경쟁 유인을 줄여 경쟁력 제고의 노력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OECD를 비롯한 세계 경쟁 당국에서는 카르텔을 경쟁법 위반행위 중 가장 나쁜 죄질의 행위로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카르텔은 주로 파벌이라는 의미로 많이 통용되는데, 정치, 언론, 경제 전 분야에서 흔히 학연, 지연 등의 명분으로 집단적 이기적 군집체를 형성하여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최강 쇼트트랙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는 정보의 공유가 일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잘못된 일들을 알리는 채널이 그만큼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디어 이론 중에 하나인 침묵의 나선이론처럼 잘못된 일임에도 다수가 찬성하는 여론이 형성되면 소수의 반대의견을 가진 집단들은 점점 침묵을 지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분야 중에서 강한 집단 응집력을 요구하거나 그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네트워크가 강한 조직일수록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 체육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 투(me too) 운동으로 불거진 사회 곳곳의 사건들을 보면 과거부터 이어온 침묵의 카르텔이 주요 원인이 되는 사례가 대다수이다. 분명 시장경쟁체제에서도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 카르텔이 굳건하게 형성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구조적인 문제가 큰 이유가 된다. 체육계의 지도자와 선수는 너무나 강한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한다. 선수의 진로에 막강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아무리 부당한 일들을 겪게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또한 용기를 내어 갑질을 한 지도자가 징계를 받더라도 상당수는 솜방망이 처벌로 다시 복귀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수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도 쉽게 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로 걱정하게 될 가족 생각과 엄중해질 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혼자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맘 편히 털어놓으려 해도 마땅한 기구가 별로 없다.
최근 여자배구 대표팀 내에서도 신동인 코치가 진천선수촌에서 음주 후 여성 재활 트레이너를 성추행하여 영구제명 되었다.
그 이유는 더 큰 조직구조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데, 지도자들 위에 절대 권력자가 보통 존재한다. 보통 절대 권력자는 인사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통 식구라고 불리는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잘 따르는 사람들로 조직원을 구성하기 때문에 선수의 입장보다는 조직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게 되는 카르텔이 형성된다. 또한 절대 권력자는 자신의 체제에서 보다 큰 성과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과만을 강요하면서 지도자들에게 또 갑질을 하게 된다. 지도자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실직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이고, 동종업계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영영 그 세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이니 선수들의 경우는 정말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업계로 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입을 열기가 어렵고, 실제 유명선수가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다.
미국체조협회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를 지속적으로 성폭행 및 추행한 혐의로 징역 360년 형을 선고하였다(JTBC 뉴스 캡쳐).
구조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잘못된 악습을 전통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빠른 성장과 단기간의 성과를 목표로 해왔던 대한민국 체육계의 생태계에서 웬만한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이 당연시 여겨졌다. 자신이 선수였을 때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시대가 변화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전통으로 여기고 우리의 목표만을 위해 정진해 가자는 만연된 인식은 이런 잘못된 악습에 심하게 빠져 있는 늪과 같은 구태(舊態)이다. 최근 몇 년간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 인권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 건수는 약 200여 건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과도한 사적대화 금지, 신체 및 외모 언급 금지, 둘만의 차량 동승 금지, 학교 밖 1대1 만남 금지 등의 학교운동부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지키고 있어 성폭력 예방 환경을 조성하였다. 또한 처벌 역시 강력하다.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이자 미시간주립대학교 교수였던 래리 나사르 30년간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300여명의 선수를 성폭행, 성추행한 혐의로 도합 징역 360년 형을 받은 것은 물론 미시간대 총장, 미국올림픽위원장, 미국체조협회장 및 이사진 모두가 물러났으며, 피해 보상액만 해도 5억$에 이르는 강력한 처벌을 하였다. 대한체육회도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최근 선수들을 대상으로 대면조사를 하여 얻은 성폭력 감소 추이 결과는 신뢰성에 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체육계의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지도자와 선수의 존중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사진_www.freeqration.com).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악습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성폭행으로 인해 아주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심석희 선수의 시발점이 체육계의 큰 경종을 울린 만큼 체육계의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이제 잘못된 인식을 스스로 바꾸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심선수와 조 전 코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유도의 신유용 선수가 그 동안의 성폭력을 폭로했듯이 조만간 다른 종목으로 미 투(me too) 운동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체육계에 대한 불신이 점차 커질수록 그 부정적 영향의 범위는 너무나 넓어질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국가대표 조직에서도 이런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데,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운동을 권하겠는가? 또 사회에서 스포츠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되겠는가? 금번 사태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큰 파장이 예상된다.
2019년 기해년을 알리는 첫 태양처럼 체육계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해 본다.
이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관행 또는 관습처럼 이어온 구조적인 문제 역시 철퇴를 가해 체육계 내에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극복 사례를 통해 폐쇄적인 구조에서 개방적인 구조로 과감하게 개혁을 단행해야 시점이라 생각한다. 성폭행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되는 범죄자는 단순 영구제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강도 높은 처벌 수위가 필요하다. 또한 피해자들이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 마련 역시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우리 사회 인식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야 오랜 악습은 점차 없어질 수 있다. 체육계의 침묵의 카르텔을 개혁하지 않고는 더 이상 발전은 없다는 것을 반드시 잊지 말고, 모두가 위치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로 만들어 더 이상 망우보뢰(亡牛補牢;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디 2019년은 체육계의 새로운 희망이 솟는 원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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