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미국 조지아주 카이로에서 태어난 Jackie Robinson은 UCLA 출신으로 미식축구, 농구, 수영, 테니스, 육상 등 모든 종류의 운동에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의 형인 맥 로빈슨 역시 운동 지능이 뛰어나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두 형제 모두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
재키 로빈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장교로 복무하면서 참전하였지만, 이때도 인종 차별 때문에 면직 당하고, 이를 계기로 야구계로 입문하게 된다.
브루클린 다저스의 레전드 재키 로빈슨의 현역시절 모습(출처_LA다저스 홈페이지)
이 시대에는 흑인들만 야구경기를 하는 니그로리그가 존재하였기에 로빈슨은 1945년 니그로리그 소속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에 입단하였다.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는 1946년 인터내셔널리그(현재의 마이너리그 격) 소속 몬트리올 로열스로 팀을 이적하고, 그 이듬해에 메이저리그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했다.
1887년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의 구단주가 흑인을 구단에서 퇴출시키면서 흑인선수를 영입하지 않는 불문율이 계속 이어지다가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리키 단장이 재키 로빈슨의 재능을 보고 흑인을 영입하게 된다. 그렇지만 관중들의 야유와 상대 투수의 빈볼 시위, 팀 동료들과의 부조화 등 온갖 역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심판도 언론도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 ‘검은 파괴자’, ‘검은 타이콥’이라 부르며 그를 조롱했다.
MBC '서프라이즈'에 방영되었던 브랜치 리키와 재키 로빈슨의 세기의 만남 장면(출처_MBC)
그러던 중 팀 동료인 백인 유격수 Harold Henry Reese(애칭 Pee Wee Reese)가 재키 로빈슨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흑인선수를 포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선수들은 물론 팬들도 로빈슨을 포용하게 되면서 결국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유색 인종의 성공사례를 역사상 처음 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2루수로 맹활약하면서 신인상(1947년)과 시즌 MVP(1949년)도 수상했고, 팀의 내셔널리그 우승 및 월드시리즈 우승(1955년)에도 기여하며 다저스의 뉴욕 전성기를 이끌었다.
28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10시즌을 뛰면서 1382경기에 출전해 1518안타 137홈런에 타율 .311, 출루율 .409, 장타율 .474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BB-K가 740:291로 시즌 평균 29개의 삼진 밖에 당하지 않는 뛰어난 선구안과 컨택트를 과시했고, 2루수 수비도 뛰어난 선수였다.
재키 로빈슨의 위대한 삶을 조명한 영화 '42' 포스터(사진_프레인글로벌)
이러한 뛰어난 활약으로 결국 그는 1962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가 되어 첫 해에 77.5%의 득표율로 입성하게 된다.
은퇴 이후에는 사업을 하면서 흑인직원 고용, 직업훈련교육 지원 등 흑인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특히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 당했던 차별 때문에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흑인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면서 미국의 흑인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었다.
이로써 그가 데뷔한지 50년만인 1997년 4월 15일에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42번)이 지정되었고, 이는 20세기 최초 흑인 메이저리그서 그의 업적을 모두 인정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단 영구결번은 NHL의 웨인 그레츠키(99번)와 함께 유이한 기록이다.
매년 '재키 로빈슨 데이'에는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심판까지 모두 42번 저지를 입는다.
과거 선수 시절 살해 위협까지 받으며 어려운 선수 생활을 했던 재키 로빈슨은 경기에 나오면 총을 쏘겠다는 메시지도 받았다고 한다.
이때 같은 팀 동료였던 외야수 진 허만스키가 우리 모두 42번 유니폼을 입으면 누군지 모르지 않을까? 하는 농담을 건내며 그를 위로해준 에피소드가 있어 2007년 켄 크리피 주니어 선수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날로 하자고 제안을 했고, 이후 각 팀의 흑인선수 한 명이 대표로 4월 15일 경기에는 42번 유니폼을 입고 뛰다가 2009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재키 로빈슨 데이’가 지정되며, 모든 구단의 선수와 코칭스텝 그리고 심판까지 모두 42번이 새겨진 저지를 입고 경기에 임한다.
당대 최고의 메이저리거 베이비 루스의 현역 시절 모습.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베이비 루스가 야구를 바꾸었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꾸었다라고 평가한다.
미국 민권법 제정 16년 전, 이미 실력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며 유색인종들의 희망이 되었던 그를 매년 잊지 않겠다는 메이저리그의 정신을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단순히 위대한 선수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유망주들에게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정신은 MLB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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